김가진 서예전

글씨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김가진

2024-08-22 13:00:01 게재

동농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 … 임시정부로 망명할 때 지은 시 등 만날 수 있어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의 서예전 ‘백운서경’이 9월 1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김가진은 대한제국의 고위 관료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또한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기도 하다. 그는 비밀 항일독립운동단체인 조선민족대동단을 조직해 총재를 지냈고 74세에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으로 항일투쟁을 했다. 그가 남긴 글씨를 통해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만나본다.

13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동농 김가진의 서예전 ‘백운서경’에 들어섰다. 자신의 이름을 박연폭포 인근 바위에 새긴 ‘김가진’이라는 큰 글씨와 김가진이 청렴하게 살아왔고 창덕궁 비원(지금의 후원) 증축을 위해 애쓴 공로로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서울 백운동 골짜기 터의 바위에 새긴 ‘백운동천’이라는 글씨의 탁본이 관람객들을 환대했다. 이번 전시는 대한제국 말기에 대신을 지냈고 이후 상해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김가진의 서예가로서의 면모에 주목한 첫 전시다.

13일 관람객들이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동농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 이의종

전시는 (재)동농문화재단이 주최했으며 동농 김가진 서예전 추진위원회(추진위)가 기획, (재)동농문화재단과 (사)한국고간찰연구회가 진행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추진위 위원장을 맡았으며 위원으로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임형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장명국 내일신문 대표,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이동국 경기도박물관 관장, 임재완 한국고간찰연구회 회장, 김가진의 증손인 김선현 동농문화재단 이사장이 이름을 올렸다.

전시는 9월 19일까지 계속되며 매주 화요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현장 강연이 진행된다. 김채식 경운초당 대표가 27일과 9월 10일에, 이 관장이 9월 3일에 진행한다. 이 외 유 전 청장이 2차례 현장 강연을 진행했다.

동농 김가진의 서예 중 박연폭포 인근 바위에 새긴 글씨 ‘김가진’. 사진 이의종

◆대한제국 고위 관료, 항일투쟁 = 김가진(1846~1922년)은 병자호란 때 순절한 선원 김상용의 후손으로 대한제국의 대신이자 독립운동가다. 비밀 항일독립운동단체인 조선민족대동단을 조직해 총재로 활약했다. 대한제국 대신으로는 유일하게 74세에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고문으로 항일투쟁을 했다. 아들 김의한, 며느리 정정화, 손자 김자동까지 뜻을 이어 집안의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당대부터 명필가로 이름을 날려 많은 글씨를 써왔으며 1918년 최초의 근대적 미술단체로 창립된 서화협회의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전시에서는 독립운동가로서의 김가진에 비해 다소 주목받지 않았던 서예가로서의 김가진에 주목한다.

전시 제목인 ‘백운서경’은 ‘김가진의 서예 경지’를 뜻한다. 이는 김가진이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백운동 골짜기에 백운장이라는 집을 짓고 스스로 ‘백운동주인’이라고 한 일을 기린 것이다. 전시 초반에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탁본 ‘백운동천’은 백운동 골짜기 암벽에 새긴 글씨로 서울 자하문 터널 위쪽에 지금도 남아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서예에 심취해 한국과 중국의 역대 서예가들의 글씨를 두루 학습했다. 이후 자신만의 ‘동농체’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로 정국이 혼미하며 일제강점기로 들어가는 시대 상황에서 그는 글씨 본연의 가치에 주목해 흔들림 없는 정통적인 서풍을 추구했다. 힘이 살아 있으며 무게감이 느껴지는 글씨다. 전국의 사찰과 사대부 집안, 창덕궁 후원 등에서 그의 글씨를 만날 수 있다.

◆독립운동가의 삶이 담긴 서예 = 전시는 7개의 주제로 나뉘어 김가진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망한다. 서예를 통해 독립운동가로서의 김가진을 돌아볼 수 있다. 제1부 ‘세독충정, 대대로 지켜온 충심과 절개’에서는 주요 출품작으로 △김가진이 상해에서 대동단의 군자금을 요청하기 위해 쓴 편지 △김가진이 상해에서 대한민국 개국 2주년을 기념하며 쓴 시 △김가진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망명할 때 지은 시 ‘상하이로 출발하는 날 읊다’ 등을 선보인다.

제5부 ‘전명천년, 천년 뒤에도 이름이 전해지리’에서는 대한제국 고위 관료이자 당대 명필가로 그가 쓴 비문과 현판 글씨를 만날 수 있다. 그는 1903년 창덕궁 후원의 전각과 정자들을 중건하는 총감독인 비원(지금의 후원) 감독으로 임명됐다. 유 전 청장에 따르면 김가진은 당대 최고의 명필 서예가로 한자를 쓰는 이웃나라까지 이름을 알렸고 창덕궁 후원 13종 대부분의 현판과 전국의 여러 관아 사찰과 명소의 현판을 썼다.

또한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독립문의 한자와 한글 역시 김가진의 글씨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그의 글씨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유 전 청장의 설명에 따르면 전시에 출품된 글씨들과 유사해 김가진의 글씨로 인정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전시에서는 김 구 등 독립운동가들과 김가진이 교류하며 썼던 글, 아들의 돌을 기념해 써준 천자문, 아들의 한글 교육을 위해 만든 교재 등을 만날 수 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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