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36년'과 '35년' 사이

2024-08-22 13:00:02 게재

윤석열 정권의 유일한 치적으로 ‘만(滿) 나이’ 법제화를 꼽는 이들이 있다. 출생일을 0살로 시작해 생일이 지날 때마다 1살씩 더하는 나이 계산법이다. 관련 민법과 행정기본법이 2023년 6월28일부터 시행됐다. 그러자 시민들은 “깨어보니 한 살이 젊어졌다(혹은 어려졌다)”고 했다. 글쎄다. 가는 세월이 야속한 이들은 즐거웠을까. 하루 빨리 성년이 되고 싶은 청소년들은 어땠을까.

만 나이가 정착하는 한편에선 “갓난아이가 0살이 뭐냐, 몇달 몇일로 나이를 계산해야 하느냐” 볼멘 소리도 없지 않다. ‘우리 나이’와 헷갈리면서 만 나이인지 확인해야 했다. 자연히 나이 대신 “xx년생”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늘었다. 만 나이가 불편한 이들은 선대의 생명존중 프로라이프(pro-life) 정신 때문일 것이다. 잉태된 순간부터 생명체로 인식한 사고체계 말이다. 태교(胎敎)를 중시하고 태명(胎名)도 지은 선대들이다. 그래서 280일이 지나 세상에 나온 아이를 1살로 여긴 거다. 그런 점에서 태어난 순간 0살로 보는 것은 프로초이스(pro-choice) 정신일 수 있겠다. 사실 프로초이스와 프로라이프 모두 대표적인 완곡어법이다. 낙태반대 운동을 “생명 지지”로 완화한 거다. 그들은 낙태라는 용어도 태아살해의 범죄성을 짐짓 숨기려는 의도로 본다. 여기에 ‘생명’을 앞세우면 이를 반대할 경우 “생명 반대”로 인식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이에 ‘낙태 허용’도 “선택 지지”로 표현을 바꾼다. 태아의 생명과 죽음에 대한 논란을 피하면서 여성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을 내세우는 거다. 이들에게는 태어나면서 1살이란 인식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프로라이프와 프로초이스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관과 가치관에 따른 갈래이겠다. 현재로선 생명과 선택을 모두 존중해 “인간 지지”로 통섭하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상해 임시정부’로 지칭한 경축사

만 나이를 거론한 이유가 있다. 이번 반쪽짜리(혹은 3분의1쪽짜리)로 거행된 광복절 경축행사에 소소한 관심을 가졌다. 바로 일제강점 기간을 어떻게 언급할까 하는 거다. “일제 36년”이라 할지 “일제 35년”으로 만(滿) 햇수로 할지 궁금했다. 만 나이를 법제화한 대통령 아닌가. 경술국치일(1910년 8월29일)부터 광복까지 만 35년에서 2주가 모자라니 혹시 “일제 35년”이라고 하지 않을까.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 언급조차 없었다. 느닷없이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했다”고 말했다. 일본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했다. 독립투사와 순국선열에 대한 고마움 표현은 없었다.

올해 쪼개진 경축식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아닌 ‘상해 임시정부’로 지칭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고 강조했다. 그러잖아도 이종찬 광복회장이 “정부 내 일본 밀정” “건국절 추진세력” 운운하는 가운데 듣기에 따라서 찜찜한 구석이 있는 대목이다. 관심을 가졌던 일본강점기간 언급은 여전히 없었다.

요즘 오히려 때아닌 역사 논란으로 시끄럽다. 대한민국 독립과 정부수립은 헌법 전문에 있지 않나.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로 규정돼 있다. 미국도 독립기념일이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1776년 7월4일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로 시작하는 독립선언문이 국가의 기초이다. 영국과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파리조약이 체결된 1783년이나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1789년 4월30일이 아니다. 이를 대입하면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1919년 3월1일 독립선언이 대한민국의 실제적 시발점이다. 같은 해 4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수립돼 국가체제를 갖췄다. 이승만 대통령도 취임식에서 “대한민국 30년 7월24일 대통령 리승만”이라고 명확히 했다. 대한민국의 생명이 1919년부터라는 인식이다. 일주일 후면 국치일(8월29일)이다. 일제강점기를 (햇수로)36년에서 (만으로)35년으로 1년 줄인다고 치욕스러움이 줄어들겠나. 만 35년에 미치지 못하는 기간을 36년으로 한다고 더 주먹을 불끈 쥐겠나. ‘일본의 마음’도 36년이 더 뿌듯할지 35년이 덜 미안할지 모르겠다. 하기야 식민 착취를 개발로, 수탈을 수출로 여기는 이들에게 햇수가 의미 있겠나.

1919년 3월1일 대한민국의 시발점

요즘 어이없게도 날강도 칭송이 들려온다. 강도가 나쁜 게 아니라 당한 자가 잘못이고, 외양간 고친 새집도 날강도 덕분이라 한다. 어이없다. 오늘의 번영은 재봉틀을 적신 눈물, 사막에 흘린 땀, 피 묻은 외화, 보릿고개를 넘으며 내일을 꿈꾼 선배들 덕분이다. 중요한 건 우리의 마음이겠다.

치욕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34년 11개월17일 하루하루 세어 기억해야 하지 않겠나. 차제에 만 햇수로 “일제 35년”이 어떨까. 내친 김에 날짜로 기념하는 3.1절도 ‘독립절’로 하고 말이다.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