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칼럼
8월의 역사 쿠데타에 일그러진 우리들의 광복절
광복의 달 8월, ‘친일의 진격’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한일협력을 강조하면서 출범한 정부이지만 정권 핵심인사들의 친일 행보, 식민사관 옹호가 넘어서는 안될 선을 한참넘어서다. “이완용이 비록 매국노였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의 궤변이다.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도 가능하다”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최근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는 망언을 내놓았다. 친일의 ‘신념’이 넘치는 언사들이다.
눈여겨 볼 것은 그동안 집권세력이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한 25개가 넘는 역사관련기관에 친일 뉴라이트계 인사들을 꾸준하게 꽂아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급기야 광복절 직전 국민적 반대를 뿌리치고 뉴라이트계 김형석씨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했다. 정부가 “우리도 다 계획이 있다”는 듯 친일의 학문 체제를 굳히겠다는 결의를 밀어붙인 셈이다.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친일의 약진, 역사쿠데타라 할만한 ‘사변’이다.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여 공간으로 확대 심화되는 심적(心的) 과정이다.” 국권회복의 일념으로 역사연구에 매진했던 단재 신채호의 역사 정의다. 먹은 고기가 일본산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다 토해버렸다는 일화를 남길 정도로 일본에 준엄했던 그였지만 그런 그도 일본 내의 아(我), 즉 일본 양심세력과의 연대까지를 금기시하지는 않았다.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세력과 제휴해 불의를 타파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일본과 잘 지내자는 주장 자체를 반대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일부 친일세력이 한반도 강점을 정당화하고 한국의 실존을 부정하는, 심지어 한반도 개입 의도를 숨기지 않는 일본 극우의 주장을 맹종하고 이런 사고를 정책으로 구체화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용산에 일본 ‘밀정’이 암약하며 대통령의 눈귀를 가리고 있다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경고는 그래서 아프고 두렵다.
내년 광복절도 올해처럼 할 것인가?
올 광복절은 오랫동안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친일논쟁이 불거지면서 정부와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단체들이 따로 기념식을 치르고, ‘반국가세력’ 논쟁으로 불붙으면서 또 하나의 갈등선이 불거진 탓이다. 이런 소동 속에서 국민들은 친일 뉴라이트 사관이 얼마나 심각하게 국민적 자존감 정의감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지를 깨치게 되었다. 친일극우의 역사인식이 일본의 개입을 부르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갖게 되었다.
교조적 이념외교는 현실 공간전략이라는 측면에서도 이미 심각한 손실을 자초해온 터다. 실용보수를 추구했던 노태우정부 이래의 북방정책 자산은 이미 알뜰하게 탕진한 상태이고, 북방경제권과 조선족 고려인을 아우르는 한민족공동체 비전도 더 이상 논의할 수 없게 되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김태효 차장은 19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친일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한미일 협력을 통해 얻는 혜택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지금 정부가 대일외교에서 거둔 성과가 과연 무엇인지를 따져 묻고 있다.
위안부・징용공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과정 등 끊임없는 저자세를 댓가로 무엇을 얻었는가? 독도방어훈련 비공개, 전쟁박물관 등에서의 독도 조형물 철거로 7광구 공동개발을 시작하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우리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어음이라도 받았다는 것인가?
내년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다. 한일국교 정상화 60년, 을사늑약 1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정부가 내년 우리들의 광복절을 어떻게 기념할 생각인지 알 수 없지만 국민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친일 인사들이 포진한 집권여당 수뇌부가 일제 침탈과 친일인사를 두둔하며 다시 국민들의 염장을 지르지는 않을까, 그들은 일본이 한국을 다시 그 영향권에 넣고 ‘1905년 체제’의 부활을 꿈꾸는 시나리오를 계산에 넣고 있기는 한 걸까. 독도는 안녕할 수 있을까, 천공이 2025년 통일을 예언했다는데 불길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 2025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에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다.
격동의 시대, 집권자들도 어리석지 않아야
“어리석은 자가 사악한 자보다 훨씬 나쁘다. 사악한 자는 멈출 때가 있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한 프랑스 철학자는 이렇게 갈파했다. 불과 5년 전 2부작 다큐 ‘밀정’을 제작했던 공영방송이 이번 광복절에는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송출했다고 한다. 이런 공영방송의 타락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권력이 왜 그토록 방송을 장악하려 안달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격동의 시대다. 집권자들은 어리석지 않아야 하며, 제국의 사악한 기도를 알아차려야 한다. 권력이 친일화의 마지막 수순으로 방송을 통해 투항적 역사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 한다면 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권력의 무지와 밀정들의 꼼수를 가려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