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감세 유지하고 예산지출만 억제…‘성장 걸림돌’ 우려

2024-08-27 13:00:01 게재

2025년도 예산안 살펴보니

내년 총지출 증가율 3.2%, 역대 4번째로 낮아 … 적자 줄여 재정준칙 준수

경기침체 국면서 정부재정역할 ‘내려놔’ … “건전재정도 민생도 실패” 비판

윤석열 정부가 2년 연속 총지출 증가율을 3% 내외로 묶으면서 재정 허리띠를 조였다. 재정 준칙 약속은 지키게 됐지만 세수펑크와 부자감세로 인한 총수입 감소 여파로 총지출 증가율은 당초 계획에 크게 미달하게 됐다. 이 때문에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정부 재정이 제 역할을 못할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정 건전화 노력은 긍정 평가하면서도 세수 기반 고민 없이 지출만 줄이는 예산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3년간 총지출 증가율 ‘역대최저’ = 정부가 27일 발표한 2025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은 3.2%로 지난해 발표된 중기계획(4.2%)에 못 미친다. 총지출 개념이 도입된 2005년 이후 올해(2.8%)와 2010·2016년(각 2.9%)에 이어 4번째로 낮다.

이때문에 윤석열정부 첫 3년간 총지출 증가율(본예산 기준)은 연평균 3.9%를 기록, 4%에 미달하게 됐다. 문재인정부(8.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명박(6.3%)·박근혜(4.2%)정부보다도 낮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총지출 증가율이 작년보다는 증가했지만 높은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라며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크게 약화했고 이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최소 10조원 이상의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법정 의무지출과 연구·개발(R&D) 예산 증액, 의료개혁 등 최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재정 적자를 늘리거나 씀씀이를 줄여야 했다.

하지만 정부의 선택은 ‘지출 증가율 감속’이었다. 결국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묶는 ‘재정 준칙’은 지킬 수 있게 됐지만 당초 중기 계획 대비 ‘긴축 재정’은 불가피해졌다.

◆“경기침체기 대응예산으론 역부족” = 문제는 올해와 내년 경기 전망이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경기침체기에 긴축예산만 고집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반도체 업황 회복으로 수출은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고금리·고물가, 실질임금 감소 등으로 내수는 여전히 바닥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이어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최근 가계부채 급증세로 통화정책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재정 역할에 대한 기대감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소폭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 역시 내년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한국은행이 전망한 내년 성장률은 2.1%로 올해(2.4%)보다 낮다. 정부 전망치 역시 올해 2.6%, 내년 2.2%로 비슷한 흐름이다.

정부는 내수 부진 장기화 조짐에도 내년 재정 역할을 ‘인센티브’ 중심의 간접 지원에 한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내수 예산으로 꼽히는 사회간접자본(SOC·25조5천억원) 분야 지출은 올해보다 3.6% 줄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 소비가 좋지 않고 실질소득도 부진한 상황인데 대부분 기관이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재정을 묶어두고 내수를 활성화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긴축에 복지 지출 증가율 하락 = 내년 예산이 초긴축을 선택하면서 저출생 대응 등 복지예산도 충분하지 않게 됐다. 정부가 밝힌 저출생 대응 예산은 올해보다 약 3조6000억원 늘어난 19조7000억원이다. 하지만 육아휴직 급여 인상(월 150만→250만원)을 위해 약 1조4000억원을 증액한 것을 제외하고는 굵직한 증액 사업을 찾기 어렵다.

돌봄서비스 확대, 배우자 출산휴가 급여 인상, 대체인력 지원금 인상 등 기존 대책을 확대한 것들이 대다수이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자영업자는 상당수가 여전히 지원 사각지대에 방치돼있다. 청년 일자리 예산은 4조원에서 4조1000억원으로 1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내년 R&D 예산(29조7000억원)은 11.8%나 늘지만 총량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29조3000억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올해 일방적인 삭감의 후유증을 호소하는 현장 목소리가 계속되면서 예산 증액에 대한 기대감은 다소 반감된 분위기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 인상 등을 부각하며 ‘민생’에 중점을 두고 예산안을 편성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정 여력이 줄면서 전체 보건·복지·고용 분야 지출 증가율(4.8%)은 올해 증가 폭(7.5%)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2023년(4.1%)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거시 경제 부작용 우려” = 정부가 부족한 재원에도 약자 복지·의료개혁 등에 중점을 두면서 재정 적자를 줄인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세수 기반 확충에 대한 고민 없이 지출만 줄이는 방향의 건전재정은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부는 2년째 계속된 세수 펑크에도 대기업·고소득자 중심의 감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뚜렷한 세수 기반 확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감세 정책과 낮은 공공지출을 유지하면서 민생경제 회복과 복지 확대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한 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기침체 상황에서 재정지출 감소에 집착하면 내수는 악화되고, 이는 다시 세수 부족과 재정 위축으로 악순환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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