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경제 부활 ‘눈에 띄네’

2024-08-27 13:00:03 게재

GDP 성장률, 기업 수익률 등

미·중에 가려 진면목 부각 안돼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들 경제가 호황을 구가할 채비를 차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투자기업 ‘록펠러 인터내셔널’ 회장으로 최근 ‘자본주의 무엇이 잘못됐나’ 책을 출간한 루치르 샤르마는 2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신흥국 경제의 대대적인 반등이 진행중”이라며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차린 관찰자는 거의 없고 이 중대한 변화에 행동에 나선 외국인 투자자도 여전히 적다”고 지적했다.

신흥경제국들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에 대한 성장주도권을 다시 회복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인당 GDP가 미국보다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흥경제국 비율은 지난 5년간 48%에서 향후 5년 내에 88%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 비중은 2000년대 신흥국 호황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당시는 중국경제의 급격한 부상, 원자재 가격의 급상승, 서방 중앙은행들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신흥국 경제가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들어 신흥시장은 암울한 시기를 겪었다. 반면 미국 등은 기술기업들을 앞세워 호황을 누렸다.

샤르마 회장은 “하지만 지금은 많은 신흥국들이 미국보다 훨씬 더 탄탄한 재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미국은 기록적인 재정적자에 의존해 성장동력을 얻는 반면 신흥경제국들은 예산과 경상수지 적자를 건전하게 운영하면서 투자와 미래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여력을 쌓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튀르키예와 아르헨티나 등 과거 재정이 방만한 국가로 알려진 국가들도 경제정상화로 돌아섰다.

현재의 부흥은 중국을 제외한 다른 신흥국들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인구 감소부터 막대한 부채에 이르기까지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이 민족주의로 돌아서고 서방과의 관계가 점점 더 악화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은 중국을 떠나 다른 신흥국들에 속속 공장을 설립하고 있다.

샤르마 회장은 “향후 10년간은 주로 신흥국들의 친환경 기술이나 이에 필요한 구리·리튬 같은 원자재 수출이 특히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AI 붐은 이미 한국과 대만 등 AI 관련칩과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전자제품 공급업체의 수출을 늘리고 있다. 인도의 대규모 내수 시장, 말레이시아의 데이터센터를 위한 비옥한 환경, 멕시코의 미국과의 근접성 등 여러 신흥시장의 강점에 이끌려 많은 신흥시장에서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회복되면 기업수익도 뒤따르는 경향이 있다. 올해 2분기 중국을 제외한 신흥시장의 기업들 수익은 전년 동기 대비 19% 늘었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10%의 속도로 성장했다. 중국을 제외한 신흥시장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보다 더 큰 폭으로 수익률을 기록한 건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신흥시장 기업 수익률은 18개월째 개선되고 있는 반면, 미국기업들의 경우는 정체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들에 매료된 글로벌 주식시장 투자자들은 아직 이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신흥국 증시 거래량이 20년래 최저치에 근접하는 등 투자열기는 거의 식어버린 상태다.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국내 투자자 기반이 탄탄하고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몇 안 되는 신흥시장에서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샤르마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무책임한 적자 지출국이자 기축통화 지위를 당연시하는 금융제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되면서 달러 위상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며 “최근 달러는 마침내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신흥시장으로의 자본 이동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그늘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신흥시장은 점점 더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고 있다. 다시 빠른 수익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에 비해 기록적으로 낮은 밸류에이션으로 거래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미국경제는 주로 빅테크 기업이 주도했지만 이제 그 흐름도 바뀌고 있다. 미국 ‘7대 기술기업’의 수익성장률은 내년 절반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샤르마 회장은 “신흥시장에 대한 기대치는 여전히 낮고 두려움은 너무 커, 글로벌 투자자들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 있다”며 “하지만 이것이 바로 재도약의 본질이다. 컴백은 어둠 속에서 나타난다. 그 그림자가 깊을수록 신흥국 경제를 둘러싼 더 많은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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