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젓갈, 주민소득 올릴 대표상품으로
술뚱장터·술뚱부엌으로 사업기반 조성
독살체험·둘레길정비 통해 관광객 유인
섬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영토적·지정학적 가치를 넘어 경제적 가치, 환경적 가치까지 주목받고 있다.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하지만 이 같은 다양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소멸 위기는 육지보다 더 심각하다. 불편한 생활여건과 줄어드는 일자리, 지리적 고립성 때문에 주민들이 섬을 떠나고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더 이상 섬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안전부가 한국섬진흥원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섬 지역 특성화사업’은 어쩌면 작은 희망일 수 있다. 특히 개발 중심의 토목사업이 대부분인 기존 정책과 달리 주민들 스스로 섬 마을이 지속가능하도록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의미를 둔 사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에 내일신문은 모두 5회에 걸쳐 섬 특성화사업과 현재 사업이 진행 중인 권역별 대표 섬들을 통해 지속가능한 섬 마을의 가능성을 점검한다. <편집자주>편집자주>
충남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는 연간 3만명 이상 찾는 서해안 대표 관광지다. 대천항에서 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섬인데다 4개의 해수욕장(거멀너머·진너머·수루미·밤섬)을 비롯한 다양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숙박시설 상당수는 외지인들이 성수기에만 운영하고 있고, 관광객을 상대로 한 음식점도 많지 않다. 지역 특산물 판매시설도 없다. 섬이 갖고 있는 뛰어난 관광자원이 주민소득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고 수산물 판매 중심의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불규칙한 생산량과 어획량 감소, 줄어드는 인구와 고령화 등으로 성장·발전의 한계에 직면해있다. 인구·경제·관광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술뚱장터 상설화로 소득 확대 도전 = 삽시도는 한국섬진흥원이 2022년 섬 지역 특성화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가장 먼저 시범사업을 실시한 곳이다. 그만큼 사업 성공 가능성이 높고 특성화사업을 추진할 자원이 풍부하다는 얘기다.
소득증대를 위해 주민들이 선택한 첫 사업은 장터 개설이다. 장터 이름은 술뚱장터라 지었다. 술뚱은 삽시도에 있는 지명으로 해류나 파도에 운반된 모래가 쌓여 생긴 모래섬을 일컫는다.
주민들은 특성화사업 추진조직을 구성하는 등 1년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처음 술뚱선착장 앞에 장터를 열었다. 마을 주민들이 바지락 낙지 고사리 고구마 등 직접 채취하거나 기른 농·수산물들을 가지고 나와 관광객들에게 판매했다. 부녀회가 주축이 돼 잔치국수 파전 등 먹거리도 팔았다.
3일간 운영해 얻은 수익은 600만원이다. 주민들은 짧은 기간이지만 장터를 운영하며 마을 공동소득 창출의 가능성을 봤다. 강동철 이장은 “주민들이 직접 수확한 바지락 한 종지, 낙지 한 마리도 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섬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도 줄 수 있는 삽시도다운 장터를 만들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술뚱장터를 상설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선착장 앞에 있는 젓갈가공공장을 개조해 장터와 식당 등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 공장은 보령시가 2018년 국비 지원을 받아 건립한 시설인데 지금까지 한번도 가동하지 않고 방치돼 있다. 특수목적으로 건립돼 2028년까지는 용도변경을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주민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충남도와 보령시에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 중이다.
◆술뚱부엌 조성해 전통주·젓갈 생산 = 본격적인 소득사업은 술뚱부엌에 담겨있다. 대표상품은 젓갈과 전통주다. 젓갈은 주민 누구나 담가먹는 음식이지만 집집마다 맛이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균일한 염도와 맛을 낼 수 있도록 주민들을 교육하고 공동 가공설비도 갖출 계획이다. 전통주 제조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삽시도가 흥했을 당시를 상징하는 전통주를 되살려 지역의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을 생각이다. 젓갈과 전통주를 삽시도의 대표상품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다음 단계는 한상차림이다. 삽시도에서 생산한 다양한 농·수산물을 재료로 만든 상차림을 관광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섬에 식당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 관광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김성배 삽시도 개발위원장은 “전체 주민 240여 세대 가운데 30여 세대가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며 “이 주민들이 힘을 모으면 관광객들의 입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살체험·둘레길 활성화 나서 = 주민들은 관광객 증가에 대비해 다양한 즐길거리를 마련할 생각이다. 그 중 독살체험은 가장 섬 다운 체험행사다. 계절별로 낙지 해삼 소라 우럭 광어 숭어 등 다양한 어종을 잡아볼 수 있도록 하면 가족단위 관광객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삽시도 둘레길은 2008년 조성 초기부터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전체 6.2㎞ 구간 중 8개 코스, 5.5㎞가 조성돼 있다. 둘레길은 삽시도의 3가지 보물이라고 불리는 물망터 면삽지 황금곰솔도 만날 수 있다. 물망터는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만 나타나는 천연 샘물이고, 면삽지는 조수에 따라 하루 두번 삽시도와 이어지는 무인도다. 또 보령시 보호수인 황금곰솔은 잎이 짧고 연한 황금빛을 내며 솔방울을 맺지 않아 번식이 이루어지지 않는 희귀종 소나무다
주민들은 섬 안쪽 저수지 인근에 수루미정원을 만들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바다·해변에 더해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또 관광객 이동을 도울 전동카트도 운영해보려 한다.
◆특성화 하나하나가 일자리 사업 = 주민들은 구상 중인 특성화사업 하나하나가 주민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독살체험·장터 안전관리자, 둘레길 관광해설사, 한상차림 식당 운영자 등 추진하는 사업 대부분이 일손을 필요로 한다. 주민들이 어업이나 농업 외에 제2, 제3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강동철 이장은 “주민들은 물론 삽시도에 귀어·귀촌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다”며 “먹고 살 일자리가 생기면 청년들의 유입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