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노믹스 ‘백악관 입성 티켓’ 될까

2024-08-30 13:00:07 게재

“중산층강화 & 물가안정” 내건 해리스 공약에 엇갈린 평가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사진 오른쪽)이 조지아주 서배너의 한 식당을 찾아 손님들과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선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이 한마디로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을 꺾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부시 대통령은 냉전 종식과 걸프전 승리 등의 업적으로 한때 89%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경기침체와 만성적인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재선에 실패했다. 당시 클린턴의 이 말 한마디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 선거에서도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고 있다.

과연 카멀라노믹스(Kamalanomics)는 첫 흑인여성 미국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카드가 될 수 있을까? 카멀라노믹스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이름과 경제(이코노믹스)를 합친 말이다.

카멀라노믹스의 윤곽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 주 롤리에서 발표한 ‘취임 100일 경제구상’에서 드러났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중산층의 경제적 안정성을 진전시키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계 물가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의 경제’를 앞세운 카멀라노믹스의 핵심은 ‘중산층 강화’와 ‘생계 물가 안정’이다.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카멀라노믹스와 관련해 서로 다른 논조의 글을 실었다.

WSJ “베네수엘라식 좌파 포퓰리즘”

보수성향의 WSJ는 16일 ‘카멀라 해리스가 닉스노믹스를 지지한다(Kamala Harris Endorses Nixonomics)’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해리스 부통령의 경제공약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닉스노믹스란 1970년대 초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물가를 잡기 위해 임금과 생필품 가격을 통제했던 정책을 말한다.

WSJ는 “닉슨 대통령의 임금 및 가격 통제 정책은 공급부족과 시장혼란을 불러왔을 뿐”이라면서 “정부의 통제가 폐지되자마자 시장은 질서를 되찾았다”고 지적했다.WSJ는 “만일 해리스 부통령이 진정으로 가격 통제를 신봉한다면 이는 경제의 기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WSJ는 “해리스 부통령이 베네수엘라 스타일의 물가 통제를 하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WSJ는 “바이든-해리스 콤비의 경제 정책은 물가상승과 실질소득 감소를 불러왔다”면서 “특히 식료품물가 상승이 아픈 부분이었다”고 꼬집었다. WSJ는 “해리스 부통령의 대응이 문제를 악화시켰다”면서 “베네수엘라 스타일의 좌파 포퓰리즘에 기대겠다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롤리에서 식품과 주거, 의료, 보육비용을 낮추는 민생경제 공약을 발표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연방정부 최초로 식료품 바가지 가격에 대한 금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어 과도한 가격을 매기는 기업들을 처벌하는 새로운 권한을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주(州) 법무장관에 부여하겠다고 말했다.

WSJ은 “슈퍼마켓 등 식품소매점들이 바가지를 씌운다는 증거는 없다. 슈퍼마켓 판매 마진율은 대략 2% 정도로 다른 분야 마진율 8%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준”이라면서 해리스 부통령의 식료품 바가지 주장을 반박했다.

WSJ는 “가격통제는 공급자들의 의욕을 떨어트린다”면서 “가격통제를 한 모든 나라들이 공급부족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WSJ는 그런 나라의 사례로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를 들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아동 세액공제 3600달러와 신생아 세액공제 6000달러를 신설할 계획도 밝혔다. 10년 동안 1조2000억달러의 재원을 필요로 하는 계획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구조계획법(ARP)에 따라 무자녀 가정에 대한 근로소득 세액공제를 현행 600달러에서 1500달러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WSJ는 “세액공제를 통해 근로의욕을 고취할 수 있다는 주장은 여러 연구를 통해 허구임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WSJ는 생애 첫 주택 매입자에게 계약금 용도로 2만5000달러를 지원하겠다는 해리스의 공약에 대해 “이런 정책은 주택 가격만 올려 놓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NYT “생활비 낮추는 정책 강구”

반면 진보성향의 NYT는 16일 칼럼니스트 피터 코이의 ‘해리스의 경제 계획이 많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고 있다(Harris’s Economic Plan Could Impress a Lot of Voters)’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해리스의 경제공약들이 11월 대선의 승리를 가져올 승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칼럼은 “해리스는 롤리의 연설에서 (민주당 정부 아래 일어난) 인플레이션 문제를 잠재적 강점으로 바꾸는 작업을 아주 매끄럽게 해 냈다”고 평가했다. 칼럼은 “만일 해리스의 메시지가 유권자들에게 잘 먹힌다면, 오는 11월 대선에서 그가 승리할 가능성은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칼럼은 “해리스가 제시한 계획은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방법이 아니라 생활비를 낮추는 방법에 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은 광범위한 경제현상이다. 더군다나 인플레이션 정책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관할이고, 글로벌 경제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대통령이 쥐고 있는 칼은 여럿이다. 칼럼은 “생활비는 정부 정책의 개입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서 “이를 테면 인슐린 가격의 상한선을 정하거나 주택건설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칼럼은 이어 “기업 지주(corporate landlords)와 대형 슈퍼마켓 체인, 대형 제약사들을 단속하거나 자녀 세액공제나 무자녀 가정의 근로소득 세액공제를 확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FT “중산층 집중 공략 전략”

중도적 논지를 견지하는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28일 ‘미국 중산층을 겨냥한 해리스의 경제 비전 ‘카멀라노믹스’(Kamalanomics: Harris’s economic vision for America’s middle class)’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 중산층을 집중 공략하는 경제정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달 23일 경합주인 위스콘신주 최대 도시인 밀워키에서 “중산층 강화가 대통령 임기 중 중요한 목표가 될 것”이라며 “중산층이 강할 때 미국이 강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가장 인기있는 정책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바이든의 중점 정책인 제조업 투자와 인프라 개선, 친환경 에너지 확대 등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해리스는 이른바 ‘돌봄 경제(care economy)’에 바이든보다 강한 방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FT는 “육아와 유급휴가, 교육 지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어니 테데스키 예일대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은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 동안 일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파블로프 효과’처럼 해리스 부통령과 연관 짓는다”면서도 “이는 전적으로 온당치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권자들이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하는 만큼 해리스 부통령 탓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리스 부통령은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과 민주당 상원의원을 지냈다. 경제 분야에는 뚜렷한 배경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의 주요 경제 자문으로는 마이크 파일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딘 밀슨 포드자동차 수석이사 등을 꼽을 수 있다. FT는 “바이든정부의 관리들은 해리스 부통령이 중도좌파 주류의 시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면서 “바이든 대통령과는 다른 점보다는 연관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달 2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가치들을 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옐런 장관은 “해리스 부통령은 중산층 가정을 지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해리스는 중산층이 미국 경제력의 핵심임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루스벨트 포워드(Roosevelt Forward)’의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펠리시아 웡 전 바이든 대통령 인수위원회 자문역은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정부 시절보다 노조를 더 강력하게 옹호할 것으로 전망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달 25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미국교사연맹 행사에서 “미국이 앞으로 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트럼프와 공화당은 노동자를 위하는 당으로 비춰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면서 “해리스 부통령의 과제는 이런 트럼프 측의 허구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썼다. 트럼프는 법인세·소득세 인하와 일괄관세, 대규모 이민자 추방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FT는 “해리스 부통령은 이미 트럼프의 정책들이 노동자 계층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카멀라노믹스는 백악관 입성 티켓이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중산층 강화와 물가안정 등 미국민만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보이는 정책들도 세계경제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처럼 대미 통상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게는 그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 경제는 독감에 걸린다. 우리 정부가 트럼프노믹스는 물론 카멀라노믹스 대응책도 열심히 세우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