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중대재해법, 우물에 갇힌 산업안전 건져내야(2)

2024-08-30 13:00:09 게재

현재 중대산업재해 발생율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제정 당시의 10% 대로 감소했다. 산안법의 역할도 있겠지만 ‘까마귀 날자 떨어진 배’처럼 그 효과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 하지만 20배에 달하는 경제적 성장과의 상관관계는 통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법규와 규제 방식이 다른 경제 선진국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기업의 재정이 안전한 생산 조건과 환경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면 그와 같은 중대재해 감소는 어려웠을 것이다. 기업의 재정 상황 악화는 1984년 보팔 참사의 중요한 배경 요인이었다.

1996년에 금강을 건너는 경부고속철도 교량 시공 중에 발생한 사망사고를 조사했다. 시공 중 교각들 사이의 교량 상판 받침용 구조물을 생략하는, 당시 신공법인 ILM(Incremental Launching Method)공법으로 시공 중인 교량이었다.

교량 시작 지점인 교대의 후방에서 제작한 교량 상판을 건너편 교각 위로 밀어내는 중에 교량 상판의 처짐을 해결하기 위해 설치되는 Nose(첫 상판 앞에 설치되는 걸침용 철구조물)를 공중에서 조립하던 작업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당시 조립 중인 Nose는 공사여건 상 추락사고 위험이 없는 지상 조립이 가능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정체

작업방법을 사고원인으로 한 것에 대해 사건 담당 수사관과 논쟁하게 됐다. 수사관은 입건·송치를 위해 사고원인에 해당하는 법규 위반이 필요하니, 사고원인을 안전대와 같은 법적 의무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 수사에서 안전대 미사용에 위반 적용은 타당하나, 사고조사 면에서는 부당한 요구다.

사고와 재해는 다른 문제다. 재해는 사고에서 발생된 결과적 손실이다. 사고조사는 미래의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사고위험을 야기하는 요인을 조사하는 것이다. 안전대와 같은 추락사고 결과에서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 경감 수단은 추락사고의 원인에 해당되지 않는다. 안전대 착용으로 추락 자체를 막을 수 없고 추락 시 지면 충돌은 피하더라도 충격에 따른 부상은 빈번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산안법규의 주된 역할은 법 제1조에 드러낸 근로자 보호, 즉 사고의 결과인 재해, 그것도 인적손실 경감이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 않은 사고는 산안법규로 문제 삼지 않는다. 산안법규는 사고의 결과인 인적재해 경감을 위한 사업장 전체의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기준이다. 이것이 산안법규의 정체다. 재해 예방은 산안법규 준수가 전부라는 생각에 매몰된 산업안전 분야는 사고예방이 아닌 사고결과인 재해, 그것도 인적손실 경감 수준에 머물고 있다.

법규 일부에 사고예방을 염두에 둔 조항들이 있기는 하지만 작업과 여건의 다양성 때문에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진 못한다. 그저 사고 후에 결과적 처벌 근거로 쓰이고 있어서 그 역기능은 사고예방 효과를 무시할 정도로 크다. 그 중 위험성평가는 결과적 처벌의 역효과를 고려해 기업 벌칙을 정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과거에 많이 발생했던 디젤 항타기 등 장비 전도사고를 계기로 도입된 작업계획 규정은 최초 제정 배경과 취지를 망각한 무분별한 적용 확대로 인해 폐해가 심각하다. 정작 제정 당시 문제 장비였던 디젤 항타기는 현재 구경조차 힘들고 같은 공사 공법과 설비 안전은 당시와 비교불가 수준으로 발전했다. 위험이 충분히 고려된 적절한 작업계획은 중요한 사고예방 수단이다. 그러나 현장 여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내용을 구체적인 강제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현재의 규제 방식과 역량으로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중재재해법으로 사고예방을

중대재해가 추세적으로 감축되려면 기업 안전이 재해를 넘어 사고예방 단계로 나가야 한다. 사고예방은 위험이 생성되지 않을 생산 조건·방식과 설비에 달려 있다.

이는 생산 특성과 규모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어서, 적절한 사고예방 체계는 산안법규와 같은 공통적, 기본적인 강제 기준의 한계 너머의 사안이다. 이런 상황에 제정·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으로 그 장을 열어줘야 한다.

그런데 그 시행령은 중대재해법을 산안법의 맥락에 다시 가두고, 그 수사는 이중적 인과관계라는 묘한 통로까지 만들게 해서 법 제정으로 형성된 커다란 사회적 관심과 귀한 자원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산안법규도 버거운 관계 부처로 하여금 중대재해법을 다루게 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지 싶다. 폐해가 더 커지기 전에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필요한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준비되지 않은 자의 일반이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