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혁으로 ‘용돈 국민연금’ 벗어날까
4월 급여자 71%가 60만원 미만 … 지급보장 ‘긍정’ 보험료율 인상 차등 ‘모호’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연금개혁 방향과 일부 안을 제시했다. 노인은 가난하고 청년은 믿지 못하는 지금의 연금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단된 연금개혁을 다시 논의의 장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제시 안으로 들어다 보면 국민적 공감과 국회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올 4월 기준 국민연금 급여자 가운데 71.5%가 60만원 밑으로 연금을 받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정부 개혁안으로 용돈 수준의 보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연금 개혁의 3대 원칙으로 △지속 가능성 △세대 간 공정성 △노후 소득 보장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 모수 조정과 함께 기금 수익률을 높이고, 자동 안정장치를 도입해 연금의 장기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기금 소진 연도를 8~9년 늘리는 모수 조정만으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청년 세대와 중장년 세대의 ‘연금 보험료 인상 속도를 차등화’와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제시했다. 가장 오래, 가장 많이 보험료를 내고, 연금은 가장 늦게 받는 청년 세대가 수긍할 수 있는 연금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필요성을 설명했다. 더불어 출산과 군 복무로 인해 연금 가입 기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크레딧도 더 확대할 것을 덧붙였다. 크레딧 제도는 출산·군 복무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를 보상해주는 차원에서 국가가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해 준다.
노후소득 보장에 대해 윤 대통령은 다층 보장을 강조했다. 기초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을 함께 개혁하고 혁신해 서민과 중산층의 노후가 두텁게 보장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초연금은 공약대로 임기 내 월 40만원을 목표로 인상하고 기초연금을 받는 기초생활보장 대상 노인에게 생계급여를 감액하지 않고 추가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개인연금은 ‘세제 인센티브’를 확충한다. 퇴직연금이 현재 임의적으로 돼 있는데 가급적 모든 기업이 채택할 수 있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연금 개혁은 법률 개정으로 완성되는 만큼 국회도 논의구조를 조속히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국민연금 지급보장을 명문화하는 것, 출산 군복무 크레딧 확대, 기초연금 감액 없애기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다음주에 발표될 구체적인 정부안에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노후소득보장을 높이는 합리적인 내용을 담길 지 주목된다.
일단 윤 대통령이 밝힌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화’는 세대 공정을 이룰지 모호하고 의문이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세대를 구분할 기준이 모호하고 해외사례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컨대 50대 이상은 매년 1%p 보험료를 올리고 20대는 0.5%p씩 적게 올린다하더라도 10대들이 성장해 20대가 되면 이미 올라간 보험료를 처음부터 내야 하는 문제가 있다. 50대에도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보험료 인상 자체가 부담스럽다. 연령에 의한 보험료 기준 차등화는 세대간·세대내 형평성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제시된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은 연금 자체 재정이 부족해지면 결국 보장성을 줄인다는 방안이다. 다른 목적세 도입이나 일반예산 투입 등에 대한 방안이 보완되지 않는다면 결국 지금의 용돈 수준의 연금을 더 낮추게 되는 셈이다. 용돈 수준의 연금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국민연금 가입자의 노후소득은 방치될 수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금이 고갈될 상황이면 자동으로 납부액을 올리고 수급액은 줄이는 장치를 연금시스템에 마련한다는 것인데, 미래에 보험료를 못올리면 보장성을 깎겠다는 것”이라며 “연금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지난 국회에서 합의를 보지 못한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그리고 보험료를 내는 국민연금과 아무런 기여없이 받는 기초연금과의 관계 설정 등 구조개혁 논의도 난항이었다.
이에 정부의 재정안정화 방안 등이 더해졌다. 이번에는 사회적합의의 길에 국회와 정부가 제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