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럭·돌문어 가공부터 유통까지 주민 손으로

2024-09-03 13:00:00 게재

양식어종 기반 섬 특화상품 개발

주민결속력 높아 장기 구상 가능

섬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영토적·지정학적 가치를 넘어 경제적 가치, 환경적 가치까지 주목받고 있다.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하지만 이 같은 다양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소멸 위기는 육지보다 더 심각하다. 불편한 생활여건과 줄어드는 일자리, 지리적 고립성 때문에 주민들이 섬을 떠나고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더 이상 섬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안전부가 한국섬진흥원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섬 지역 특성화사업’은 어쩌면 작은 희망일 수 있다. 특히 개발 중심의 토목사업이 대부분인 기존 정책과 달리 주민들 스스로 섬 마을이 지속가능하도록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의미를 둔 사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에 내일신문은 모두 5회에 걸쳐 섬 특성화사업과 현재 사업이 진행 중인 권역별 대표 섬들을 통해 지속가능한 섬 마을의 가능성을 점검한다. <편집자주>

화태도는 전남 여수시 돌산도와 금오도 사이에 있는 섬이다. 돌산과는 화태대교로 연결돼 있다.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며, 특히 가두리양식 어가가 많다. 여수에서 생산하는 우럭의 50% 이상을 이곳에서 양식할 정도다. 통발로 잡은 문어·장어도 화태도의 주요 산물이다.

화태도는 가두리양식 덕분에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젊은 주민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급격한 인구감소로 마을의 소멸을 우려해야 할 처지가 됐다.

하늘에서 바라본 화태도 전경. 오른쪽 보이는 다리가 2015년 개통된 화태대교다. 사진 한국섬진흥원 제공

◆인구감소율 여수 평균의 5배 = 화태도 인구는 120가구 210명이다. 2020년에는 285명이었으니 줄어드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여수 전체의 인구감소율은 –2.8%인데 화태마을은 이보다 다섯배 가까이 높은 –12.5%를 기록했다. 여수 전체에서 인구 감소율이 가장 높다. 고령화도 심각하다. 주민 210명 가운데 노인회에 가입돼 있는 주민, 즉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110명이다. 초등학교는 2022년 폐교했다. 어린이는 유치원생을 포함해 3명 남았다. 윤정임(69) 부녀회장은 “불과 2~3년만 지나면 주민 80%가 노인회원이 될 판”이라며 “이러다 마을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양식업도 지속가능할지 걱정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기 때문이다. 수온이 30도를 넘어서면 양식이 불가능하다. 현재 수온은 턱밑까지 올랐다. 해마다 적조 피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주민들이 마을의 변화를 모색해봐야겠다고 나선 이유다.

◆‘반건조 우럭’ 대표상품 = 주민들은 섬 지역 특성화사업 선정을 계기로 생산 위주의 어업을 수산물 제조·가공과 유통·판매까지 확장해보겠다고 나섰다. 1차산업을 2차산업과 3차산업과 연계하는 이른바 6차산업화를 꾀해보려는 것이다.

그동안은 생산한 수산물을 생물로 판매하다보니 가격이 들쑥날쑥했고 계절별 수익도 고르지 않았다. 어획량이 많으면 제값을 받지 못했고, 반대로 어획량이 줄어도 매출이 감소했다. 6차산업에 대한 도전은 이런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시도다.

주민들은 우선 지역의 주 산물인 우럭과 돌문어를 특화상품으로 개발해볼 계획이다. 상품 브랜드도 만들고 포장 디자인에도 나섰다. 다른 지역의 수산물 가공공장 등을 둘러보며 구체적인 운영계획도 다듬고 있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생산물의 판매·유통이다. 우선 여수를 비롯한 이웃 산업단지 기업들을 1차 목표로 삼았다. 대규모 산단 구내식당에만 납품해도 어느 정도 매출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개별 소비자를 위한 개별상품도 개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주민들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도시의 대형마트다.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지부터 알아보겠다는 뜻이다. 특성화사업을 지원하는 자문단 ‘오롯 지역콘텐츠연구소’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에 아직까지는 진행이 순조롭다.

섬 특성화사업을 1단계부터 4단계까지 진행하는데 9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주민들에는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다. 주민들은 이 기간동안 다른 지역의 사례를 검토해보고, 전문가 도움도 받아볼 계획이다, 무엇보다 끈기를 갖고 시행착오를 각오하며 긴 호흡으로 해보겠다는 생각이다.

화태도 주민들은 섬특성화 사업 현장교육을 위해 지난해 10월 부산 영도구 부산관광지원센터에서 진행한 현장포럼에 50여명이 참여했을 만큼 마을 일에 적극적이다. 사진 한국섬진흥원 제공

◆수산물 6차산업 전진기지 꿈꿔 = 비록 200여명 남짓 사는 작은 섬이지만 화태도 주민들은 섬 특성화사업을 계기로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수산물을 생산하는 1차산업에서 벗어나 보관·제조·가공에서부터 판매·전시·유통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수산물 6차산업의 전진기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다행인 것은 화태도 주민들의 결속력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하면 주민들이 똘똘 뭉쳐 돕는다. 섬 지역 특성화사업을 시작하며 현장견학을 가는데 50명 가까운 주민들이 참여했을 만큼 적극적이기도 하다.

황광현 어촌계장은 “인구도 줄고 소득도 불안정하지만 주민들이 한 마음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 희망이 있다”며 “주민 공동소득을 만들어 떠나간 사람들이 돌아오는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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