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해 ‘오징어 전쟁’ 끝낼 평화협정 맺었다
오징어 놓고 다투던 근해채낚기·자망, 쿼터 주고받기 시범사업
해수부·어업인, 시범사업 통해 연안어업 TAC 전면시행 준비
조업구역을 놓고 다투던 어업인들이 서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며 손을 잡았다.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오징어(살오징어)를 잡기 위해 충돌하던 ‘근해채낚기’ 어업인들과 ‘근해자망’ 어업인들이 자신들에게 할당된 어획량을 댓가를 지불하고 주고 받는 식으로 상생할 방법을 찾아보자며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상생협약식을 맺었다.
어업인들이 자신들에게 할당된 어획량(쿼터)을 주고 받으며 거래하는 ‘양도성개별할당제’(ITQ) 사업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조업구역 침범하며 갈등 격화 = ‘엉킨 실타래는 풀어도 엉킨 노는 못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업구역을 두고 벌이는 어업인들의 경쟁과 갈등은 치열하다.
동해에서 오징어를 주로 잡는 ‘근해 채낚기’ 어업인들과 서·남해에서 참조기 갈치를 주로 잡는 ‘근해 자망’ 어업인들이 서로 동해와 서해 조업구역 넘어 오징어잡이를 하다 갈등이 커졌다. 이들이 양도성개별할당제 사업에 나서게 된 것은 이대로 가면 어업을 지속하기 어렵겠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반영됐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오징어는 대표적인 대중성 어종 중 하나로 동해안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다. 오징어 습성을 이용해 밤에 집어등을 켜고 낚시와 비슷한 방식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근해채낚기 업종에서 주로 잡았다. 근해자망 어업인들과 갈등은 2020년부터 시작됐다. 서·남해에서 참조기·갈치를 주로 잡던 근해자망이 참조기 금어기를 틈타 동해안 오징어조업에 나선 것이다.
오징어는 잡을 수 있는 어획량을 정해두고 조업하는 총허용어획량(TAC) 대상어종으로 지정돼 있었고 근해채낚기를 포함 대형선망 대형트롤 동해구중형트롤 쌍끌이대형저인망 등 5개 업종에서 주로 어획했다.
서남해에서 참조기를 잡던 근해자망은 ‘오징어 TAC’ 적용을 받지 않았다. 동해안에서 오징어를 잡기 시작했지만 어획량 규제는 받지 않았다.
근해채낚기와 근해자망 어업인의 분쟁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해수부는 2021년 1월 근해자망을 ‘오징어 TAC’ 대상 업종에 포함시켰다. 또 같은 해 12월부터 근해자망은 동경 128도 30분을 넘어선 동쪽 해역에서 오징어 조업을 할 수 없게 금지했다.
근해자망 어업인들은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정부의 조정안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해안 오징어 자원이 급격히 줄어들고 서해안에서 오징어가 잡히면서 두 업종의 갈등은 더욱 커졌다. 근해채낚기 어업인들이 서해 어장에 형성된 오징어잡이에 나서면서 주 어장이 서해인 근해자망과 ‘오징어전쟁’이 벌어졌다.
◆해수부 중재로 갈등해소 나선 어업인들 = 오징어를 둘러싼 어업인들 갈등이 증폭되면서 다시 정부가 나섰다. 해수부 어업정책과는 양도성개별할당제를 통해 두 업종 어업인들의 갈등을 줄여보기로 하고 4월 이후 10여 차례 이들을 만나 해법을 모색했고, 상생을 위한 시범사업에 이르렀다.
양도성개별할당제는 TAC를 기반으로 개별 업종에 부과된 할당량 범위 안에서 할당량을 거래할 수 있는 제도다. 지난해 기준 근해채낚기에 할당된 오징어 TAC는 1만7434톤, 근해자망에 할당된 오징어 TAC는 4359톤인데, 이 범위 안에서 서로 할당량을 거래할 수 있다. 양도성개별할당제는 1972년 캐나다에서 처음 시행된 이후 미국 뉴질랜드 아이슬란드 등 대부분의 어업 선진국에서 적용하고 있다. 해수부는 우리나라도 모든 연근해 어선에 TAC가 적용되는 시점(2028년 목표)에 맞춰 이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오징어를 두고 갈등이 커진 근해채낚기와 근해자망은 상생의 방법을 찾다 양도성개별할당제를 시범 운영해보기로 합의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근해채낚기는 낚시와 비슷한 방식으로 조업하는 어법 특성상 어획 강도가 낮고 오징어 자원이 줄어들어 배정받은 할당량만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근해채낚기의 오징어 어획량은 TAC 할당량 1만7434톤 중 16%인 2790톤에 그쳤다.
반면, 근해자망은 오징어가 주 어종이 아니어서 배정받은 할당량은 적은데 어획 강도는 높다. 쿼터를 초과해 잡힌 오징어를 바다에 버리거나 헐값에 불법으로 유통하는 일도 생겼다. 지난해 기준 근해자망는 배정된 오징어 쿼터 4359톤 중 76%인 3313톤을 잡았다.
근해자망 소속 어업인 중 전남과 제주지역에서 주로 오징어를 잡는데, 전남지역 자망어업인들은 1535톤의 TAC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전남지역 자망어업인들의 단체인 전남근해유망협회가 시범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양도성개별할당제 시범사업은 근해채낚기 오징어 할당량 중 400톤을 근해자망 중 시범사어에 참여를 희망하는 어선에 배정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참여하지 않는 어선은 할당량 거래가 허용되지 않는다.
김월광 전국근해채낚기선주실무자연합회장은 “쿼터를 나누고 협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언제까지 서로 불신하고 바다에서 싸움만 할 수는 없다”며 “양도성개별할당제 시범사업을 계기로 서로 상생하면서 우리 스스로 탈법 불버조업 단속 관리도 하고 귀한 오징어가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지역 근해자망 어업인 단체인 전남근해유망협회의 명성환 회장은 “오징어 때문에 생긴 갈등인데 동경 128도 30분을 기준으로 바다를 갈라놓고 우리는 조업을 못하게 해 화가 많이 났다”며 “해수부가 추진하고 있는 2028년 연안어업선진화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시범조업을 해보면서 문제점을 보완해 가기 위해 한 번 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어업인 사이 불신 극복할 신뢰경험쌓아야 = 해수부 중재로 시범사업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회원들의 불만도 있었다.
명 회장은 “200여명 근해자망 어업인들 중에는 양도성개별할당제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며 “그래서 더욱 시범사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회원들을 설득하면서 먼저 함께 할 사람이 해보고 안 할 사람은 지켜만 봐달라고 해서 40~50명이 시범사업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범사업도 안해보고 정부가 모든 연근해업종에 TAC를 적용하는 연안어업선진화사업을 하게 되면 많은 문제점이 생기고, 그때 가서 법을 보완하려면 분쟁만 생길 것”이라며 “해수부가 규제 단속하는 기관이 아니라 어민들이 상생할 수 있게 어민들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했고, 해수부는 현실성 있는 정책을 한 번 해보자고 해서 시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반대 목소리는 쿼터를 일부 내놓기로 한 근해채낚기에서 컸다. 김 회장은 “오징어 자원을 고갈시키는 자망이 없어져야 하는데 같이 손잡고 조업하면 자망을 인정하는 것 밖에 안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며 “정부가 자망을 없앨 수도 없고, 바다에서 무분별하게 조업하던 것을 제대로 질서 지키며 하도록 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며 채낚기 어업인들을 설득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망은 돈을 주고 우리 쿼터를 받아서 더 잡으면 되지만 채낚기는 쿼터를 포기하고 주는 입장이니 어려움이 많았다”며 “합의에 이르기까지 해수부 역할이 많았고, 자망 회장도 진정성을 갖고 이야기해 믿음을 갖고 해보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확한 어획량 파악이 성공여부 전제 조건 = 양도성개별할당제 시범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업인들이 어획한 양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전제조건이다. 할당된 어획량을 넘어서 조업하게 되면 수산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어렵고 자원을 남획하면서 부당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어업인들은 정확한 어획량을 보고하기 위해 △어선에 위치발신장치를 상시 작동하고 △전자어획보고시스템을 통한 어획·전재(옮겨싣기)·양륙보고 등 어획증명제를 지켜야 한다. 오징어를 잡다가 의도치 않게 딸려온 부수어획물을 바다에 버리는 해상투기도 금지된다. 어업인들은 부수어획물을 정상 어획물과 시장을 분리해 판매한 후 수익금을 조성하는 ‘부수어획은행’(바이캐취뱅크) 시범운영에도 참여한다. 해수부는 부수어획 수익금을 공공사업에 활용할 계획이다.
어업인들의 상생협약에 참여한 강도형 해수부 장관은 “이번 상생 협약이 한정된 수산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어려운 국내 어업 현실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