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인플레이션의 정치와 경제 데이터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지난달 23일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금리인하의 시간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방향은 명확하며 금리인하 시기와 속도는 경제 데이터, 전망, 리스크의 균형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기준금리를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5.3%로 1년 넘게 유지해온 연준은 마침내 9월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연준 인사들은 경제를 냉각시키고 이를 통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높은 금리를 적용해왔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이 크게 둔화되고 고용시장이 흔들릴 조짐을 보임에 따라 연준은 더 이상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관심은 9월 금리인하 폭이 얼마나 클 것인지, 그리고 연준이 향후 몇달 동안 차입 비용을 얼마나 빠르게 낮출 것인지다. 파월 의장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명확한 윤곽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고용시장이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할 경우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하하기보다는 빠르게 인하할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시사했다.
파월 의장은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상방 위험이 줄어들었지만 고용에 대한 하방 위험이 증가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노동시장 상황의 추가 냉각을 환영하지 않는다”며 “정책 긴축의 적절한 후퇴를 통해 강력한 노동시장이 유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파월의 연설은 철저하게 비정치적이었지만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인플레, 데이터와 정치영역에서 사라져
연준이 금리를 얼마나 인하할지, 그리고 9월 이후 얼마나 신속하게 금리인하를 진행할지에 대한 결정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순간에 이뤄지고 있다. 연준은 11월 대통령 선거를 불과 몇주 앞두고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렇게 되면 백악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독립을 강력히 옹호하는 연준 관리들이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수 있다.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유세에서 연준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는 연준이 선거를 앞두고 금리를 인하하는 일이 정치적인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이 연준의 정책에 대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경제에 대한 여론은 특이하다. 미시간대학의 소비자 심리조사는 상당히 낮은 인플레이션과 낮은 실업률임에도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예상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가 보다 정상적인 패턴으로 돌아갈 긍정적인 가능성이 가시화되면서 인플레이션은 데이터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제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의 정치적 중요성은 줄어들고 있다. 전반적으로 미국은 다른 부유한 나라들에 비해 높은 인플레이션 없이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이뤄냈다. 인플레이션의 정치가 바뀌는 이유는 인플레이션이 바이든 정책이 아니라 주로 팬데믹에 기인한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하 점치게 만든 개인소비지출 지수
연준이 가장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수치는 개인소비지출(PCE) 지수다. 7월 PCE결과를 보면 연간 인플레이션은 2.5%로 나타났다. 식품과 연료 가격을 제외한 근원지수는 1년 전보다 2.6%p 상승했다. 7월 물가를 6월과 비교했을 때 인플레이션은 헤드라인 지표와 근원 지표 모두에서 0.2%p로 소폭 상승했다.
연준 관리들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인플레이션이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있어 9월부터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간 수치는 연준의 목표치인 2%를 여전히 상회하지만 2022년 7%를 상회했던 정점에 비하면 크게 하락한 수준이다.
이 데이터에는 연준에 대한 또 다른 희소식이 포함되어 있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했을 때 7월 개인지출은 경제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약간 더 많이 증가했으며 이는 미국 소비자가 점차 냉각되는 경제와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회복력을 보여줬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연준은 9월 17~18일 정책회의 전 마지막 보고서인 8월 소비자물가지수 보고서를 9월 11일에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연준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할지는 인플레이션 데이터보다는 9월 6일 발표될 8월 고용 보고서에 더 많이 좌우될 것이다.
미국 경제 데이터의 신뢰성 하락
연준 관리들은 “연준은 정치로부터 독립적이기에 금리를 정할 때 정치를 완전히 무시하고 경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준 관리들은 정부 데이터를 사용해 금리를 인상하거나 인하할 시기를 결정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해당 데이터의 신뢰성이 점점 더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위험에 처한 국가 데이터’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정부 통계가 신뢰할 수 있고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법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통계협회가 발표한 보고서는 정부 통계가 현재로서는 신뢰할 만하다고 결론지었지만 예산 축소, 설문조사 응답률 하락, 정치적 개입 가능성 등의 요인을 들어 상황이 곧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 데이터의 대부분은 가계 또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기반한다. 정부 조사에 대한 응답률은 최근 몇년 동안 급락했다. 이는 민간 여론조사의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실업률과 기타 노동통계의 기초가 되는 약 6만가구를 대상으로 한달에 한번씩 실시하는 현재 인구조사 응답률은 10년 전 거의 90%에서 최근 몇달 동안 약 70%로 떨어졌다.
문제는 더 악화될 수 있다.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데 드는 비용이 증가했지만 관련 예산을 증액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한 노동통계국은 최근 “10월에 시작되는 다음 회계연도에 현재 인구조사 규모를 약 500가구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금, 구인 및 소비자 지출에 대한 데이터를 생성하는 설문조사를 포함한 정부의 다른 설문조사 응답률도 팬데믹 기간 동안 급격히 하락했다가 부분적으로 회복됐다. 물론 미국 경제지표가 질적으로 하락했다는 증거는 없다. 통계기관들은 응답률 하락이 편향된 결과로 이어진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정기적으로 데이터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노동통계국을 이끌었던 윌리엄 비치는 노동통계국이 아시아계 미국인과 청소년과 같은 더 작은 인구 집단이나 인구가 적은 주에 대한 고용 및 실업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월간 데이터를 더 이상 발표할 수 없는 지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통계국과 인구조사국의 대표자들도 응답률 하락이 도전과제라는 점을 인정했다.
통계기관과 외부 전문가들은 연방 통계가 궁극적으로 전통적인 조사와 함께 민간 출처 및 행정 기록에서 얻은 더 많은 데이터를 통합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혁신을 위한 자원은 부족했다. 노동통계국에 대한 자금 지원은 2009년 이후 인플레이션 조정 기준으로 18% 감소했다고 미국통계협회 보고서는 밝혔다.
이 보고서는 의회가 통계 기관에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하고, 기존 데이터의 지속적인 신뢰성을 보장하며, 전통적인 통계로 잘 측정되지 않는 경제 부분에 대한 적용 범위를 확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자금문제가 유일한 도전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기관들이 서로 데이터를 공유하기 쉽도록 의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리고 통계기관이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보다 명시적인 보호를 요구했다.
보고서 저자 중 한 명인 포톡은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통계기관의 자율성을 위해 규범에 의존해 왔지만 때로는 규범이 뒤집히기도 한다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회가 이 직업적 자율성 문제를 법으로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