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일레븐 인수전, 일 M&A시장 바뀔까

2024-09-04 13:00:01 게재

‘주주가치 제고’ vs ‘국민 인프라’ 팽팽 … M&A 활성화 천명한 일본정부 결정 주목

‘서클K’ 브랜드로 잘 알려진 캐나다 유통기업 ‘알리멘타시옹 쿠시타르(ACT)’가 최근 일본 세븐일레븐의 모기업 세븐&아이홀딩스에 인수를 제안했다. 시장은 잠재적 인수가를 약 500억달러로 보고 있다. 세븐&아이는 일본의 외환·대외무역법에 따라 정부에 보호조치를 요청했다.

아직 세븐&아이 주주들이 검토할 만한 구체적인 제안서는 없다. 하지만 많은 은행과 투자자, 변호사, 정부 관계자들이 일본 역사상 중요한 인수합병(M&A) 제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세계 최대 투자펀드 중 하나이자 현재 세븐&아이 주주인 한 펀드매니저는 “ACT 입찰로 게임은 시작됐다. 향후 10년간 일본이 전세계 M&A 거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ACT 인수 제안에 대해 서구 투자자들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며 “ACT는 지난 20년 동안 세븐일레븐에 관심을 보였지만 여러 가지 요인으로 번번이 좌절됐다”고 전했다. 피인수에 대해 일본 기업들이 본능적으로 저항한다는 점, 역사적으로 주주이익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부재했다는 점, 포이즌필 등 여러 경영권 방어수단이 갖춰졌다는 것 등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일본 경제산업성이 ‘주주친화적 M&A 가이드라인’을 도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정부는 기업들에게 선의의 인수 제안을 무작정 무시하지 말고 진지하게 검토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방침을 변경했다고 해서 일본정부가 세븐일레븐의 외국인 소유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또 외국인이 일본적인 특색을 가진 기업을 잘 운영할 수 있는지도 관심사다.

편의점은 일본이 가장 잘하는 것을 대표하는 업종이다. 신선한 도시락, 합리적인 가격의 다양한 상품들이 즐비하다. 고객들은 물품 구입뿐 아니라 세금을 납부하거나 은행 업무를 볼 수도 있다. 편의점은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달성했다. 그 이면에는 자동화, 로봇, 정교한 공급망, 효율적인 유통물류가 있다.

한 고객은 FT에 “외국인도 일본 기업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외국인이 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이 가장 잘하는 것을 대표

당초 세븐일레븐 편의점은 1927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시작됐다. 모기업은 사우스랜드 코퍼레이션으로 일주일 내내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한다고 해서 ‘7-7-7’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븐&아이 전신인 일본 슈퍼마켓 체인 ‘이토요카도’는 1973년 사우스랜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사우스랜드가 파산신청을 했고, 결국 1991년 이토요카도가 계약기업 전체를 장악할 기회를 잡았다.

이후 편의점은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소비 소매혁신의 통로로 발전했다. 수년간 통합을 거쳐 현재 일본에는 3개의 주요 경쟁업체가 있다.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로손 3개 기업은 일본 내 총 5만개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거의 절반을 세븐&아이가 차지한다. 하루 고객만 2200만명이다. 이 그룹은 해외에서도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미국 정유사 매러선 페트롤리엄이 소유한 주유소 겸 편의점 체인 ‘스피드웨이’를 현금 210억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일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업계 지배력과 운영 노하우가 주주수익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세븐&아이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여러 측면에서 일본 최고이면서 최악의 기업”이라고 말한다.

편의점이라는 핵심사업 뒤에는 슈퍼마켓과 레스토랑, 그리고 서로 관련이 없는 사업들이 자리잡고 있다. 비핵심 사업들은 수익이 들쭉날쭉해 오래 전부터 매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헤지펀드 ‘서드포인트’가 주도한 행동주의 캠페인으로 2016년 ‘편의점의 제왕’으로 불리던 세븐&아이 회장 겸 CEO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 겸 최고경영자가 축출됐다. 그 뒤를 이사카 류이치가 이었다. 이사카 CEO는 지난 수년 동안 이사회를 개편하고 진보적인 국제위원회를 설치했다. 일부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한편 해외진출을 가속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이런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고 비판한다. 니폰액티브밸류펀드의 이사이자 일본 지배구조개혁 전문가인 알리샤 오가와는 “새로운 사외이사 중 상당수가 세븐&아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공급업체나 회사 출신으로 독립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ACT의 제안이 공개된 이후 급등세를 고려해도 세븐&아이 주가는 올해까지 5년 넘게 일본 벤치마크인 토픽스에 뒤처져 있다.세븐&아이에 투자한 아티산 파트너스의 벤자민 헤릭은 “이사카가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엔화기준으로는 그대로, 달러기준으로는 줄었다”며 “이 기간 총주주수익률(TSR)은 마이너스 1%인데 ACT의 TSR은 191%”라고 지적했다.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

일본이 기업지배구조와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지 거의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진전이 있었지만 당초 기대했던 것만큼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실망감도 있다. 하지만 ACT 인수제안이 알려지면서 일본 금융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FT가 일본 은행과 법무법인, 펀드업계, 정부관리 등과 인터뷰한 결과 대다수는 “이번 인수제안 결과는 일본이 그동안 기피해온 주주자본주의를 수용하는지 여부를 살피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입을 모았다.

아티산 파트너스의 헤릭은 “세븐&아이는 주주들에게 제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주 아티산은 세븐&아이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투자자들에게 인수 제안의 최신내용을 언제까지 알릴지 정해야 한다. 만약 경영진이 인수 제안을 거부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의 많은 이들은 이와 비슷한 상황이 일본 전역의 기업에게도 닥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의 한 베테랑 변호사는 “실적이 저조하거나 주가가 미국이나 유럽 경쟁사에 비해 현저히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는 일본 기업들 중 상당수가 적극적인 인수 제안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십년 동안 일본에 투자해온 한 글로벌펀드의 대표는 “지난해 발표된 새로운 M&A 가이드라인의 첫번째 사례가 국내 통합을 원하는 일본 기업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제산업성이 의도한 것도 그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CT 인수 제안은 그같은 예상을 깬 것이었다. 이는 다른 수많은 외국기업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스낵 제조업체인 가루비, 소비재그룹 카오, 비디오게임 개발사 스퀘어 에닉스, 스포츠웨어 브랜드 아식스, 맥주회사 삿포로 등이 해외 대형 라이벌기업에게 인수 제안을 받을 수 있는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일본 M&A시장이 공격적인 인수전술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본다. 일본 기업들은 방어전을 펼치는 데 익숙하지 않고 외부의 인수 시도가 있을 때 반사적으로 자국내 우호적인 ‘백기사’를 찾는다.

CLSA증권 애널리스트 나이젤 머스턴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설령 ACT 인수 제안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세븐일레븐 주가가 인수 제안 이전의 낮은 가격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계속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기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전문가들은 세븐일레븐의 오랜 역사와 일본 서민의 일상생활 중심이라는 이미지가 이번 인수전을 가름할 핵심요소라고 본다. 또 해외에서는 일본 유명기업이 외국 손에 넘어가더라도 일본정부가 글로벌 M&A 활동의 중심지가 되는 것을 더 우선시할지 주시하고 있다.

JP모간체이스는 세븐&아이가 정부의 보호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진과 쓰나미, 열대성 폭풍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본에서 정부가 편의점을 외국인 소유주가 통제해서는 안되는 ‘중요 인프라’로 인식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미 LA 소재 코즈웨이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엘렌 리는 “세븐&아이 이사회가 정부의 보호를 받으려 해서는 안된다”며 “주주가치 극대화가 핵심기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무시하면 세븐&아이 지배구조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와 일본 기업 지배구조 개혁의 실효성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경제선진국들은 주주가치 우선순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일본에선 여전히 논쟁거리다. 니폰액티브밸류펀드의 오가와는 “일본 기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라는 질문이 중요하다”며 “많은 일본인에게 이번 인수전은 한가지로 요약된다. ACT의 목표가 마진을 늘리는 것이라면 고객들이 손해를 보지 않고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 한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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