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한동훈, 시간끌기 ‘한계’
제3자 추천 방식 가미한 특검법에도 선 긋기
“고민하는 시간 길어지면 진정성 의심받아”
채 상병 특검법 발의를 약속하고 당 대표에 당선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시간끌기 전략이 한계에 다다랐다. 야당이 ‘한동훈안’을 가미한 특검법까지 발의하며 압박을 높여가는데 언제까지 “내 입장은 변함없다”는 말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당내 주류의 반발을 신경쓰다가 가장 중요한 국민의 지지를 잃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개혁신당을 제외한 야5당이 공동발의한 네 번째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한 대표의 일성은 “바뀐 게 별로 없더라”였다. 한 대표는 3일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나 “제 입장은 그대로”라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 대표가 전당대회 출마 당시 제시했던 제3자 추천 방식이 이번 법안에 반영됐기는 했지만 특검 추천 명단에 대한 ‘야당 비토권’ 등이 추가된 것 등을 문제삼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이번 특검법의 문제점을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나섰다. 전당대회 때 한 대표와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던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4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야권이 발의한 특검법과 한 대표 제안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며 “무늬만 한동훈표” “수박 특검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특검) 기간도 더 늘리고 국회가 요구하면 와서 다 얘기할 수 있게 하고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거 (중략) 등이 결국 여론 재판을 하겠다는 취지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친한동훈계라고 하는 의원들도 (야당 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1도 없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공수처 수사 후 특검 발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공수처 수사 결과를 보고 채 상병 특검법 발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대통령실 입장과 똑같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실제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까지 다 감안해서 당내 여론을 모아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당대회 전에는 공수처 수사와 무관하게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야심찬 약속을 했지만 결국 현실에 발목잡힌 셈이다.
그렇다고 한 대표 자체 특검법안 발의가 구체화된 상황도 아니라는 점에서 야권의 ‘말바꾸기’ 공세는 점차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측 인사는 “민주당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건 확실하다”면서도 “언제까지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버틸 수 있을지는 고민”이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선 한 대표가 딜레마적 상황에서 탈출하려면 결단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정적인 당내 여론에 발목잡혀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뭉갰다가는 국민 지지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을 더이상 끌었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
채 상병 특검법을 공개 찬성해 온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에서 “한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 추진 의지가 있어보인다”면서도 “다만 고민하는 시간이 좀 길어지면 국민들께 진정성을 의심받는 거는 곤란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