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칼럼
과학자를 바라보는 이중적 시선
어린 시절 경험 중 아직도 납득이 안되는 것이 단체기합이다. 그 당시 신체적 고통보다 괴로웠던 건 ‘내 잘못이 아닌데 처벌받는다’는 억울함이었다. 지난해 R&D 예산 삭감이라는 이름으로 과학기술 연구자들에 대한 연구비 삭감 통보를 받았을 때 떠오른 단어가 바로 단체기합이다. 잘못한 친구가 누구인지, 카르텔이 무엇인지 이름도 존재도 알지 못해 억울함이 더했다.
요즘엔 연구비 삭감 조치가 사실은 ‘재조정’이었고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의사들과 달리 별 저항없이 고분고분했으니 내년부터는 본래 수준의 연구비로 ‘재-재조정'해준다는 말도 들려온다. 억울하게 단체기합을 받은 게 아니라 그 동안 문제가 많았던 과학기술 연구자들의 느슨한 정신상태를 바싹 조이는 재조정 과정을 한번 거친 뒤 연구비를 복원해준다는 말로 들린다.
소설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이 사육되던 공간의 이름이 ‘매너농장' 에서 ‘동물농장'이 되었다가 다시 ‘매너농장'이 되고,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는 구호가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 좋다'는 것으로 바뀌는 장면으로 빨려들어간 것만 같다.‘삭감'과 ‘재조정’은 다른 단어인 줄 알았는데 이제부터라도 말을 다시 배워야하나 싶다.
연구비 삭감 조치로 과학기술 분야를 지망하는 청년들의 급감을 염려하자 문제는 과학 대중화에 무심한 기존 과학자들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학문화 진작을 통해 젊은이들이 스스로 과학자의 길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며 ‘과학은 쉽고 재미있어요!’를 표방하는 유튜버를 육성한다고 한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국가를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과학을 해야만 한다’는 집단강박증이 ‘과학은 누군가 하고 싶어할만큼 재미있어야만 한다’는 새로운 강박증으로 대치된 느낌이다.
과학은 쉽고 재미있는 학문이 아니다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점 하나’라는 말로 지구에 붙박힌 인류의 시선을 우주로 돌리게 만든 과학 대중화의 원조 칼 세이건(Carl E. Sagan)도 “과학은 재미있다, 과학은 쉽다”라는 말을 쉽사리 꺼내지 않는다. 대신 과학의 ‘흥미로움 아름다움 경이로움’을 설파한다.
과학을 문화현상의 일부로 진작하고 싶다면 더 수준높은 영상이나 글을 제작하게 해야지 쉽고 재미있다고 호도해서는 안된다. 물리학 수학 분야에서 1000만유튜버로 이름난 미국인 베리타시움처럼 유익하고 흥미로운 영상을 만들어 구독자들 스스로 과학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과학은 쉽지 않다. 쉬우면 과학이 아니다. 필자가 체험한 일급 과학자들은 먹잇감이 될 좋은 질문이나 연구주제를 만났을 때 맹수로 돌변할 줄 알았다. 그들에게 문제 풀기는 재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사냥에 가까웠다. ‘과학은 재미있어요'를 표방하는 유튜버조차 유튜브 작업을 재미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의 재미와 쉬움이 무엇인가 그 의미를 고심해본다.
갑작스런 정부의 의대생 증원조치에 맞서 수업을 거부하거나 휴학한 의대생들에게 방학 중 특별수업 등 제때 졸업할 수 있는 각종 조치를 제공한다고 한다. 일반 대학생은 상상도 못할 특별과외까지 제공하면서 의대생을 보호하려는 노력 뒤엔 의술이 ‘공공재’이고 의사가 배출되지 않으면 국민생활 자체가 무너진다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는 과학 역시 공공재란 인식이 없지 않았다. 처음엔 중공업, 나중엔 반도체 산업으로 국가경제를 키우던 시절엔 당연했던 인식이 이젠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과학은 예능이나 체육처럼 개인적 선택의 영역이 됐다.
만약 과학기술예산 삭감에 항의해 이공계 대학생들이 동맹휴학이라도 했으면 어떤 구제책이 나왔을까? 그건 그들의 개인적 선택이니 국가가 나설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을 것이다. 현실은 더이상 이공계 젊은이를 공공재로 대우하거나 보호하지 않는데, 그 껍데기만 유령같은 언어로 남아 우리 주변에 어른거리다가 이번 예산 삭감을 통해 비로소 소멸된 느낌마저 든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론 물리학자 한명이 정년을 맞아 국내에서 더 이상 연구할 둥지를 찾지 못해 중국의 유수 연구소로 이적하게 돼 매우 안타깝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보다 석달 전에는 국내 대학에서 데이터 과학을 연구하는 젊은 교수가 독일의 막스 플랑스 연구단장으로 이적하게 되었다며 찬사가 이어졌다.
과학자가 해외 유수 연구기관으로 이적할 때 나이나 이적하는 국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야 하는가? 만약 두 과학자의 행선지가 바뀌었더라면 대중과 언론의 반응도 뒤바뀌었을까? 독일은 과학 선진국, 중국은 한국보다 기초과학이 한수 떨어진 곳이란 낡은 인식이 국위선양과 인재유출이라는 엇갈린 반응의 원인일까? 궁금하다. 중국은 이미 독일에 버금가는 기초과학 선진국이다.
양면성 지나치면 이중잣대 되고 위선 돼
시대와 세대의 빠른 변화 속에서 과학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낡은 것과 새 것이 중첩되고 뒤섞여 있다. 국가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일꾼이란 전통적인 공공재적 관점이 남아있으면서 인류 전체의 지적 재산을 쌓아올리는 영웅이란 낭만적 관점도 강하다. 업적이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의 양면성이야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존재할 테지만 양면성이 지나치면 이중잣대가 되고 나중엔 위선이 될까 두렵다.
공자께서 정치를 맡으면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하셨다는 말씀의 가치가 새삼 다가오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