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부진에 바이든 반도체법 '흔들'
블룸버그 “인텔, 정부에 자금 집행 요구하면서도 계획이행 정보공유 거부"
미국 반도체 르네상스를 이끌어달라며 인텔에 거액을 베팅한 미국정부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인텔의 재정상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다. 블룸버그통신은 4일 “잠재적으로 미국의 야심찬 반도체정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3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애리조나 인텔 공장을 방문해 200억달러에 육박하는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반도체과학법에 따른 것으로, 인텔은 보조금으로 85억달러를, 대출로 110억달러를 받기로 돼 있다. 조건은 핵심 이정표를 맞춰야 하고, 실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 이는 반도체법 수혜를 받는 미국 안팎의 모든 기업에게 적용된다. 즉, 기업들은 미국내 반도체 제조 약속을 지킬 때에만 지원을 받는다. 인텔은 물론 다른 모든 기업들도 아직 실제로 돈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인텔의 매출과 현금흐름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인텔이 지난달 초 충격적인 손실과 암울한 전망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수십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신용평가사 2곳은 인텔 채권을 정크등급에 가깝게 내렸다. 인텔은 1만5000명을 해고하는 수순에 착수했다. 반도체법에 따라 미국 내 반도체 인력을 육성키로 약속한 기업으로선 재앙적인 상황 전개다. 인력감축 계획은 미의회로부터 거센 비난을 자아냈다.
블룸버그는 익명의 취재원들을 인용해 “인텔이 ‘신속하게 자금을 지원해달라’며 미정부 지속적인 협상을 벌이고 있다”며 “하지만 인텔의 제조 관련 로드맵을 들여다보려는 미정부의 정보공유 요청을 인텔이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인텔은 이달 중순 이사회를 열어 경영 관련 조치들을 평가할 예정이다. 인텔이 미국 내 프로젝트를 축소한다면, 보조금 패키지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인텔의 실적부진은 기념비적인 민관 파트너십으로 평가 받는 반도체법을 정치적 골칫거리로 만들 리스크가 있다는 지적이다. 반도체법 지원에 따라 인텔과 TSMC,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기업들은 4000억달러 이상을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인텔의 투자금은 약 1/4에 달한다.
문제는 인텔 등 반도체기업들의 확장계획이 정부에 한 약속이 아니라 시장조건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인텔 CEO 팻 겔싱어의 최근 설명에 따르면 인텔은 반도체법에 따라 일단 공장 규모를 늘린 뒤 ‘제품 수요증대가 명확해질 때’ 값비싼 장비와 설비를 들이는 전략을 갖고 있다.
사례가 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듬해 개장 예정이었던 애리조나주 인텔 공장에서 축하연설을 했다. 하지만 해당공장이 완전가동에 돌입한 건 2020년이었다. 인텔은 2021년 애리조나공장의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 확장시설이 언제 가동될지는 불분명하다.
반도체법을 관장하는 미 상부무 반도체 담당 마이크 슈미트는 지난달 초 인터뷰에서 “반도체산업이 전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면서도 주기를 타는 업종임을 잘 알고 있다”며 “인텔은 미국 확장계획과 그 이정표에 대해 자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미정부와 인텔의 단계적 이정표는 예비 거래조건각서에 명시돼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텔은 ‘이미 상당한 투자를 했고 정부와의 초기 협상에서 전반적인 로드맵에 대한 확신을 줬다’고 주장하면서 가능한 한 빨리 첫번째 보조금을 지급 받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최첨단 반도체 생산과 관련해 TSMC, 삼성전자에 밀리는 인텔은 업계와 투자자들에게 제조역량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인텔은 “브로드컴과 미디어텍,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기업들이 우리 공장에 반도체 제조를 맡길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아직 어떤 기업도 인텔에 본격적인 생산을 맡긴 곳은 없다.
블룸버그는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이 엔비디아와 AMD 경영진에게 ‘인텔이 확장하는 오하이오공장이 가동되면 이곳에 생산을 맡겨달라’고 독려했지만 두 기업 모두 그같은 계획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TSMC와 삼성전자에 생산을 맡기는 엔비디아는 인텔을 잠재적 공급업체로 활용할지 여부를 평가하는 가장 초기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AMD CEO 리사 수는 ‘인텔을 고려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 “현재 계약중인 TSMC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