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 활성화 '민간플랫폼'에 달려

2024-09-05 13:00:01 게재

지정기부 안착 예상보다 더뎌

민간플랫폼·홍보자율화 전환점

전남 곡성군에서 한해 태어나는 신생아는 40명 남짓이다 인구 2만7000명인 곡성의 15세 이하 소아·청소년은 1800여명 정도다. 수익성이 없다보니 소아과 병·의원이 사라진지 오래다. 곡성군은 소아과 병·의원이 없는 전국 58개 지자체 중 1곳이다.

이런 곡성에 지난달 소아과가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병·의원은 아니고 군이 운영하는 옥과보건지소에서 지난달 27일부터 주 2회 소아과 진료를 시작했다. 의사는 광주의 한 병원에서 출장 진료를 온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아프면 50㎞ 떨어진 광주나 순천까지 가야 했다. 왕복 이동시간이 2시간, 병원 대기와 진료시간까지 더하면 3시간은 족히 걸린다.

이 작은 소식이 반가운 건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곡성군은 올해 초 ‘곡성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 지정기부 사업을 시작했다. 고향사랑기부 공공플랫폼인 고향사랑e음에 지정기부 창구가 생기기 전이다. 정부 정책보다 앞서 스스로 대안을 찾아나선 셈이다. 홍보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전남대 어린이병원에서 ‘찾아가는 고향사랑기부 팝업스토어’를 개최해 소아과 지정기부 사업을 홍보했다. 누리소통망(SNS) 등을 통한 온라인 홍보도 적극적으로 했다. 곡성군의 이런 노력 덕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고 목표액 8000만원을 계획보다 일찍 달성했다.

현재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 사업은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사업을 추진 중인 지자체는 전국 243개 지자체 가운데 11곳 뿐이다. 이들이 고향사랑e을 통해 내건 사업은 24건이다.

모금액 또한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다.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지정기부를 통한 모금액은 3억1000만원 정도다. 모금 목표액을 달성한 곳은 2곳 뿐이다. 충남 청양군이 정산초·중·고 탁구부 지원사업 목표액 5000만원을, 전남 곡성군이 소아과진료 사업 목표액 8000만원을 각각 달성해 모금을 종료했다. 그나마 모금률이 높은 곳은 서울 은평구의 소아암 환자 의료용 가발 지원사업(목표액 2000만원, 모금률 47.1%)과 전남 목포시의 보호종료아동 자립준비 교육비 지원사업(목표액 2000만원, 모금률 39.7%) 정도다. 모금액을 기준으로 보면 경남 하동군 유기·피학대 동물 구조·보호 지원사업(목표액 2억원, 모금액 3482만원)과 광주 남구의 시간우체국 조성사업(목표액 4억원, 모금액 2214만원), 충남 서천군의 서천특성화시장 재건축 사업(목표액 5억원, 모금액 2023만원) 정도가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정기부가 주목받는 이유는 확장 가능성 때문이다. 실제 곡성군은 1차 모금을 마친 뒤 2차 모금을 준비 중이다. 목표는 올해 말까지 2억5000만원을 모금해 상주 전문의를 채용하는 것이다. 지난해 지정기부를 통해 성과를 확인한 광주 동구(발달장애 청소년야구단 지원사업, 광주극장 보존사업)는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목표한 두 개 사업을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 같은 기대는 기부자의 효능감에서 나온다. 지정기부에 참여한 지자체가 없는 강원도의 경우가 역설적으로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도와 시·군이 모금한 53억원 중 대부분을 금고에 고스란히 쌓아두고 있다. 사업을 시작한 곳은 강릉·횡성 등 5개 시·군 뿐이다. 기부금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강원도의 올해 기부금은 지난 5월 기준 11억9000만원으로 지난해의 2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정기부에 기대를 거는 또 다른 이유는 행안부가 모금 활성화를 위한 민간플랫폼 개방과 홍보 자율성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행안부는 공공플랫폼인 고향사랑e음에서만 가능했던 기부금 접수, 답례품 관리, 기부 홍보 업무를 민간플랫폼을 통해서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현재 이를 위해 참여 기업을 모집 중이다. 홍보도 자유로워진다. 지난 2월 고향사랑기부금법 개정과 8월 시행령 개정으로 향우회 등 사적모임이나 자치단체 주최 행사에서 모금을 할 수 있게 됐다. 문자메시지 등을 통한 모금도 가능해졌다. 자치단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더 자유롭게 모금 활동을 펼칠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정기부 가능성도 확인했고, 민간플랫폼을 통한 적극적인 홍보도 가능해졌다”며 “올해 하반기부터는 고향사랑기부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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