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범죄 전담수사 인력 확충되나

2024-09-05 13:00:14 게재

경찰청, 소극적 수사 비판에 “적극 검토 중” … 법무부, 딥페이크 관련 예산 확대

불법촬영물 30%, 삭제 못해 2차 피해 우려 … 플랫폼 기업 의무로 제도화 필요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해 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허위영상물이 확산하자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법무부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분석장비 도입 예산을 증액했다.

김병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국장은 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딥페이크 성범죄 현안질의에 참석해 “접수되는 사건의 규모를 보고 전담 수사팀 확충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현재 시도청 사이버수사대 중 일부를 성폭력 전담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필요하면 사이버수사대 인원 중 일부를 전담으로 추가 투입하는 방안과 추적이 어려워 고도의 수법이 필요한 사건을 일선서에서 시도청 전담팀으로 옮기는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추적하겠다”고 덧붙였다.

◆“못된 짓 하면 처벌 받아야” = 김 국장의 발언은 경찰의 디지털 성범죄 수사 인력 부족과 이에 따른 소극적 수사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은 “가해 학생들이 ‘내가 잘못하면 처벌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어떤 위화감이 있어야 한다”며 “흐지부지하지 말고 딥페이크 성범죄를 척결하려는 의지로 특단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피해자들이 경찰에서 ‘(텔레그램) 서버가 해외에 있어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목숨 끊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겠나”라며 “안일하게 볼 것 없다. 10대라도 못된 짓을 하면 처벌받아야 한다”라고 단호한 단속과 처벌을 촉구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 전국 18개 시도 경찰청 디지털 성범죄 전담수사 인력은 총 25개팀, 127명이다.

디지털 성범죄가 2019년 9043건에서 지난해 2만127건으로 증가하는 사이 경찰의 전담수사 인력은 같은 기간 21개팀, 99명에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 및 근본적 종합대책 마련 촉구한다!’ 학부모단체가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 및 근본적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음란물 유통 사이트 수사 중 = 경찰이 텔레그램을 상대로 수사 협조 요청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경찰이 구글, 메타 등에는 1년에 1만건 정도의 수사 협조 요청을 해서 90% 이상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며 “그런데 텔레그램에는 1년에 20건 정도만 수사 협조 요청을 했다. 협조가 안 되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요청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국장은 “여러 사건으로 텔레그램에 연락을 많이 해왔다. 그동안 답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있을 것도 같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국장은 딥페이크 허위영상물을 비롯해 불법 음란물 등이 유통되는 통로로 알려진 ‘야X코리아’ 사이트에 대해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법무부는 딥페이크 분석장비 도입 예산을 12억여원 증액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인공지능(AI) 기반 딥페이크 음성·영상 위변조 분석장비 도입에 올해보다 12억2900만원 늘어난 122억5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단속·처벌 강화와 함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음란물이 발견돼 삭제 요청을 받은 플랫폼운영 기업에 이행을 강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2020년 이후 94만건 삭제 요청 =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이 여성가족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가 접수한 딥페이크와 성적 모욕 이미지 등 불법촬영물 삭제 요청은 93만8651건이다. 이 가운데 삭제하지 못한 건수는 26만9917건으로, 전체 요청 건수의 28.8%에 해당한다.

삭제 요청 건수는 2021년 16만6000여건, 2022년 20만6000여건, 2023년 24만3000여건으로 매년 최소 3만건 이상씩 불어났다.

올해도 6월까지 작년 한 해의 68% 수준인 16만5000여건의 삭제 요청이 접수됐다.

미삭제 건수는 2021년 4만2000여건에서 2023년 7만5000여건으로 증가하며, 2년 만에 79.7% 불어났다. 올해 1~6월엔 전년의 56%에 달하는 4만2000여건을 지우지 못했다.

연간 미삭제 비율은 2021년 25.3%, 2022년 24.4%, 2023년 31.2%, 2024년(6월 기준) 25.6%로, 25%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플랫폼 자율규제 강화’ 한계 = 미삭제 비율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로는 부족한 디성센터 인력과 함께 불법촬영물이 발견된 플랫폼 기업에 이를 지우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점도 큰 걸림돌이다.

디성센터는 24시간 상담과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피해자로부터 삭제 신청이 접수되면 불법촬영물이 발견된 플랫폼 기업에 이를 지울 것을 요청하고, 이후 조치 결과를 확인한다.

3일 국회에서 열린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대응책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불법촬영물을 근절하기 위해 과징금 부과나 서비스 운영 정지 등 플랫폼 기업을 제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이들에게 삭제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수사 기관과 협조를 의무화해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남희 의원은 “불법촬영물 10건 중 3건을 삭제하지 못하면서 재유포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플랫폼 자율규제 강화’에 대한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 만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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