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사건’ 수사속도 못내는 공수처
여당, 9월말 10월초 수사결과 보고 특검 검토한다지만
공수처 고질적 인력부족으로 연내 처리도 불투명
야당이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법안을 재발의하면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관심이 모아진다.
여당은 공수처의 수사 결과를 보고 특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공수처 안팎에서는 연내 처리도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 4당이 발의한 채상병 특검법을 놓고 여야가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야당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주장해온 ‘제3자 추천방식’을 반영한 만큼 여당이 수용할 것을 압박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야당이 재발의한 법안에는 채상병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를 제3자인 대법원장이 추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야당에게 대법원장 추천 4명 중 2명을 선정하는 권한과 ‘비토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주당은 제3자 추천안을 수용하겠다는 대승적인 결단을 했으니 이제 한동훈 대표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차례”라며 국민의힘의 ‘채상병 특검법’ 수용을 촉구했다.
반면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야당에 비토권을 부여하면서 ‘무늬만 제3자 추천’으로 전락했다”며 “특검 권한, 수사 대상과 범위, 증거수집 기간 등 주요 내용도 이전 법안과 판박이”라며 특검법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은 공수처 수사 후에도 의혹이 남을 경우 특검을 추진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여당의 입장과 달리 한 대표는 공수처 수사와는 무관하게 특검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친한(친한동훈)계에서도 기류변화가 감지된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4일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 대표가 공수처와는 무관하다고 얘기는 했지만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해 볼 때 공수처가 수사 결과를 9월말이나 10월초에 내놓을 것으로 내부적으로 보고 있다”면서 “공수처 수사결과가 예를 들어 ‘대통령이 직무유기했다,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보낸다’고 했을 때 국민 여론이 어떻게 되는지 보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 때 당내 여론을 모아서 특검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조만간 공수처의 수사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를 놓고 여론을 반영해 특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공수처 안팎에서는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가 조만간 나오기는 힘들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은 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채상병 사건 공수처 수사에 대해 “일단 조사가 끝나야하고 그 다음에 기록 정리, 법률 검토, 공소심의위 등 필요한 절차에 한두달은 걸리는 데 조사 대상자가 좀 많이 남은 것 같다”며 “올해 안에 끝날 수 있을지 저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사범위는 넓어지고 인원은 없어서 힘겹게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일부러 질질 끄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는데 공수처 조직을 이끌어본 입장에서 현재 그런 여건이 아니다”고 했다.
실제 공수처는 고질적인 인력부족 문제로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수처의 정원은 처장과 차장을 포함해 25명으로 일개 청 수준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정원이 모두 채워진 적이 없다.
지난달 인사위원회를 통해 이대환 차정현 부장검사와 수사3부 송영선 최문정 검사 연임을 의결했지만 여전히 공수처 재직 검사는 19명으로 유지되고 있다. 공수처는 조만간 인사위를 열고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3명 등 신규 검사 4명을 추천할 예정이지만 검증과 윤석열 대통령의 임명 절차 등을 고려하면 실제 업무 투입까지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보니 공수처는 채상병 사건 관련 윤 대통령의 통화기록 등을 확보해 놓고도 대통령실 관계자를 비롯한 주요 인사에 대한 소환조사 등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며 “아직 주요 인사에 대한 소환조사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분량도 분량이지만 수사팀 인원이 많지 않다”며 “공소부도 따로 없어 이전에 넘겼던 사건 공판에도 출석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인력문제를 고려하면 채상병 사건에 대한 공수처 수사 결과가 9월말~10월초에 나오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법조계 한 인사는 “정치인보다는 공수처장을 지냈던 분이 사정을 더 정확하게 알지 않겠느냐”며 “현재까지 수사상황을 볼 때 올해 안에 끝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공수처의 수사지원 예산을 올해 17억1950만원에서 내년에는 14억3000만원으로 16.8% 삭감했다. 집행 실적에 맞춰 조정했다는 게 예산당국의 입장이지만 공수처 안팎에선 인력과 시설 부족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공수처 수사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