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자 급증에 커지는 불만
경기침체 맞물려 정치경제 쟁점 … 연방정부 “유학 와도 영주권 못 받을 수도”
최근 차량점검 때문에 우버를 이용할 일이 있었다.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우버 운전사는 “언제 이민을 왔느냐” “어느 나라 출신이냐” 등 짧은 인사를 몇마디 건넨 뒤 이민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역시 영어 억양으로 보아 캐나다 태생은 아닌 듯했다. 그럼에도 최근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에게 반감을 보이며 “트뤼도 총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런 식으로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난민정책에 대해서도 “캐나다 경제에 기여하기는커녕 세금만 낭비하는 한심한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최근 캐나다정부로부터 영주권을 받는 이민자는 한해 50만명 가까이 된다. 코로나 대유행 이전에는 30만명 수준이었다. 지난해 캐나다에 정착한 영주권자 가운데 인도 출신이 약 14만명으로 가장 많았다. 두번째로 많은 나라는 중국인데 3만2000명 수준이다. 아프가니스탄이 2만여 명으로 뒤를 이었다. 한국은 10위권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민문제는 최근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캐나다의 정치경제적 논쟁의 핵심 쟁점이 됐다. 지난 7월 실시된 레거(Leger)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는 ‘이민자가 너무 많다’고 답했다.
임시노동자와 유학생 제한 나선 퀘벡주
캐나다 안에서도 이민문제를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는 곳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주다. 프랑수아 르고 퀘벡 주총리는 임시외국인근로자 비자신청을 6개월간 동결한다고 최근 발표했는데 이는 비영주권자를 줄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연방정부에 보여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캐나다통신에 따르면 퀘벡주정부는 특정 학교의 유학생수를 제한할 수 있는 법안까지 상정할 계획이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퀘벡주에 있는 맥길대 등 영어권 대학이 타깃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르고 주총리는 “이 두가지 법안이 주택 교육 의료서비스 문제를 완화하며, 몬트리올에서 프랑스어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르고 주총리는 “지난 2년 동안 퀘벡의 임시이민자 수가 30만명에서 60만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며 “망명신청자를 포함해 퀘벡에 있는 임시이민자의 2/3가 연방정부를 통해 들어오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퀘벡주 주택문제는 전적으로 비영주권자의 증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퀘벡주는 그동안 연방정부를 향해 퀘벡에 정착하려는 비영주권자를 절반으로 줄이라고 촉구해왔다. 이런 요구에 랜디 부아소노 연방노동부장관은 퀘벡주의 임시비자 6개월 동결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시노동자 축소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몬트리올 상공회의소는 “이 정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유동성 위기와 자금조달, 인력문제를 겪고 있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퀘벡주는 연방정부를 향해 망명신청자를 캐나다 전역에 균등하게 분배하기 위한 쿼터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퀘벡주 이민국은 6월 말 현재 퀘벡주에 거주하는 비영주권자 60만명 가운데 19만명이 망명신청자라고 밝혔다. 이는 캐나다 전체 망명신청자 36만3000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르고 주총리는 퀘벡주에 망명신청자가 몰리는 데 대해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이라며 더 이상 난민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고 털어놨다.
“유학이 영주권 보장 못할 것”
트뤼도 총리가 취임한 이후 대학졸업자에게 부여된 취업허가증은 거의 4배 증가했다.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에 2만7200건의 취업허가증(PGWP, Post-Graduate Work Permit)이 발급된 반면 2022년에는 13만2000명이 PGWP를 받았다.
자유당정부의 이민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지난 1월, 연방이민부는 앞으로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데 상한선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2024~2025년 학기에 2023년보다 35% 감소한 36만건의 유학 허가를 예고한 것이다.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임시근로자와 유학생은 약 80만명가량 입국했다. 연방정부 관계자는 “캐나다에서 교육을 받는 외국 학생들에게 시민권과 영주권이 결코 약속처럼 여겨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마크 밀러 이민부장관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외국인들이 캐나다에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한 저렴한 방법으로 유학생 비자 프로그램을 사용해왔다는 것을 안다”면서 “앞으로는 캐나다에서 배운 기술을 고국으로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방정부가 유학생 수를 제한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실제 유학생 입학 승인건수는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는 보도도 있다. 일간지 ‘내셔널포스트’는 이민국 자료를 인용해 올해 첫 5개월간 21만6620건의 유학 허가증이 발급됐다고 전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소폭 늘어난 것이다.
캐나다정부의 이민정책 유턴
밀러 연방이민장관은 작년까지만 해도 “국내 주택문제를 임시노동자 등 이민자들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거나 “이민자 증가 목표치를 낮출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민자들은 캐나다의 자산이라고 수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그는 “이민 확대 필요성과 그에 따른 경제적 여파에 대해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나아가 연방정부는 캐나다에서 일하는 서류미비(undocumented) 이민자들, 즉 불법체류자들에게 광범위하고 합법적인 거주 신분을 부여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연방자유당정부가 2021년 말 “캐나다에 기여하고 있는 서류미비 노동자의 신분을 정규직화 하는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자유당정부는 “캐나다에 무제한으로 이민자들이 들어오던 시대는 빠르게 끝나가고 있다. 이것은 큰 변화”라고 밝혔다. 캐나다는 오랫동안 신규 이민자를 환영하는 국가라는 점을 큰 자부심으로 여겼으며, 현 자유당정부는 많은 고용주가 코로나 팬데믹 당시 부족한 일손 때문에 고심할 때 임시거주자 유입을 적극 확대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주택가격 상승과 주택공급 부족의 주요 원인으로 이민자와 유학생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정치비평가들은 연방정부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고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자유당에 대한 인기가 급락하고 내년 말로 예상되는 다음 총선에서 보수당의 집권이 유력한 것으로 드러나자 다급해진 연방정부는 이민확대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 것이다. 밀러 이민장관은 “반이민 정서의 물결이 휩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캐나다인들은 통제불능 상태가 아닌 시스템을 원한다”고 말했다. 밀러 장관은 최근 2027년까지 임시거주자의 인구 비율을 6.2%에서 5%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민자단체는 “최근 부진한 경제성장과 주택문제 위기를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발했다.
테러혐의자, 반이민 정서에 기름 붓나
이민자 급증에 대한 반대여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반이민 정서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캐나다 정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7월 연방경찰은 온타리오주 리치몬드힐에서 아흐메드 푸아드 모스타파 엘디디(62)와 모스타파 엘디디(26)를 체포했다. 이들은 토론토에서 ‘심각하고 폭력적인 테러공격을 계획한 혐의’로 기소했다.
부자지간인 둘은 이슬람국가(IS)의 이익 실현을 위해 IS의 지시를 받고, 또는 IS와 연계해 살인을 저지르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캐나다언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아버지 에디디씨가 해외에서 ISIS 폭력집단에 가담하는 장면이 노출된 후 캐나다로 이민을 왔으며 아들은 캐나다 시민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보수당과 신민당 등 야당은 물론 여당인 자유당 안에서도 테러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어떤 경로로 시민권까지 얻게 됐는지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방하원의원들은 토론토 테러 시도와 관련해 체포된 부자가 캐나다에 거주하게 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청문회를 요구했다. 보수당은 이민심사 과정에 허점이 있는 것 아니냐며 공격하지만, 여당인 자유당은 보수당정부 시절 국경안보 관련 예산을 줄여 공백이 생긴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