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벌과 꽃의 ‘화학적 소통’ 방해
더듬이 인지 능력 손상
식량 생산에도 악영향
폭염(열파)으로 인해 벌들의 꽃 냄새를 맡는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폭염이 심화될수록 꽃이 열매를 맺도록 돕는 벌들의 기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벌의 개체군 감소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우리 인류의 식량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9일 국제 학술지 ‘영국 왕립학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실린 논문 ‘폭염이 온다: 뒤영벌의 폭염 이후 꽃향기 감지 능력 저하’에 따르면, 폭염은 벌 더듬이가 꽃향기를 인지하는 능력을 감소시켰다. 이러한 경향은 수컷벌보다 일벌에게 더 강하게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는 뒤영벌 두 종(서양뒤영벌 : Bombus terrestrism, 진뒤영벌 : Bombus pascuorum flavobarbatus)을 대상으로 모의 폭염 실험을 진행했다. 40℃에서 2.75시간 동안 4가지 다른 열처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폭염으로 인해 두 종 모두에서 꽃향기에 대한 더듬이 반응이 감소했다. 특히 일벌의 경우 최대 80%까지 줄었다.
식물과 벌의 상호작용은 꽃의 크기나 모양 색상과 같은 시각적인 측면과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을 통한 후각 신호에 의해 일어난다. 벌은 다양한 꽃향기를 화학적 신호로 사용하여 식량자원을 찾고 꽃의 상태를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화학적 소통이 기후변화로 인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일벌은 집단을 위해 음식을 찾고 모으는 일을 담당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도로 발달된 후각이 필수다. 일벌은 꽃에서 방출되는 휘발성 물질에 맞춰진 후각 수용체가 더 많아 냄새 신호에 더 민감할 수 있다. 따라서 일벌의 후각 수용체가 손상되면 수컷에 비해 해당 군집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열 스트레스로 인해 벌의 꽃 방문율이 줄어들면 식물 번식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벌은 대표적인 수분매개자다. 벌이 꽃가루를 묻혀 다른 개체에게 옮기는 과정을 통해 열매가 맺을 수 있다.
만약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연쇄적으로 생태계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생물다양성은 물론 인간을 위한 식량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벌은 세계 주요 100대 농작물 중 71개 작물의 수분을 돕는다. 영국 왕립학회보 B에 실린 논문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세계 농작물에 대한 화분매개자의 중요성’에서도 57가지 주요 작물 중 약 42%가 적어도 한 종류의 야생벌에 의해 수분이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또한 전세계 농작물 107가지에 대해 벌 등 57종이 화분매개자 역할을 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