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은 해부용, 신생아는 해외입양

2024-09-09 13:00:12 게재

진실화해위, 성인부랑인 수용시설 인권침해 확인

서울갱생원 대구희망원 충남천성원 경기성혜원 등

서울시립갱생원과 대구시립희망원, 충남천성원(대전성지원, 연기군 양지원), 경기성혜원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에서 각종 인권침해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일부 수용시설에서는 사망한 수용자 시신을 해부용으로 대학병원에 넘긴 사실도 처음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서울갱생원 등에서 발생한 강제수용, 강제노역, 감금, 폭행 등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이상훈 진실위 상임위원은 “집단수용시설의 총체적 피해회복이 필요하다”며 “국가차원의 추가 피해 조사 및 보상·재활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정부에 권고했다.

조사 결과 정부는 사회정화를 내세워 경찰과 공무원 합동단속을 통해 강제수용을 지속했고, 민간법인에 수용시설을 위탁한 후 각종 인권침해 발생을 방치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대표적 인권침해 수용시설인 부산 형제복지원의 경우 1987년 실상이 폭로되면서 수사를 받기도 했지만 이번에 인권침해가 드러난 수용시설에 대한 공적 조사는 처음이다.

◆사망자 연고 파악도 안해 = 수용시설에서 숨진 사망자는 연고자를 찾아 시신 인계 등을 했어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무시됐다.

1982년 대전성지원의 경우 사망자 전원을 인근 의과대학에 모두 해부실습용으로 넘긴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진실위는 대전성지원에서 사망한 수용자 시신수백구가 의과대학으로 넘어간 기록을 찾아냈다.

그동안 수용시설에서 사망한 시체를 대학병원에 해부실습용으로 제공됐다는 주장은 제기됐지만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진실위 관계자는 “관련 기록을 확인한 결과 사망 당일 또는 다음날 시신이 병원으로 넘겨졌다”며 “이 과정에서 연고 확인 등 절차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한 13명의 사건을 진실위가 조사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대구희망원은 규칙 위반자를 독방에 감금하고, 충남천성원은 시설 간부 등의 구타로 인한 폭행치사 사건이 발생한 사실도 드러났다. 수용시설은 어떤 조사도 받지 않은 채 부랑인 수용 업무를 계속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신생아 친권포기 강요도 = 임신상태로 대구희망원과 충남천성원에 입소한 여성의 경우 수용시설에서 친모의 친권포기를 강요한 정황도 확인됐다. 산모가 정신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친권을 포기하도록 했고, 수용시설이 친권 포기를 강요했다.

진실위가 관련 기록을 추적한 결과 출산 당일 또는 하루 만에 해외 입양을 목적으로 동방아동복지회나 홀트아동복지원 등 입양기관으로 신생아가 넘겨졌다.

진실위 관계자는 “신속한 조치는 출산 이전에 이미 해외입양을 목적으로 한 전원이 결정돼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헤이그국제입양아동협약은 해외입양의 경우 ‘아동 최선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고 ‘모친 동의가 필요한 경우 아동의 출생후에 부여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용시설 ‘뺑뺑이’ 전전 = 진실규명을 신청한 13명 중 10명은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들로 이들은 각종 수용시설에 강제 입소된 뒤 다른 수용시설로 강제전원되기도 했다.

특히 서울갱생원 수용자들이 도시재건사업 투입 목적으로 ‘새서울건설단’에 동원되거나 ‘서산개척단’ 등에 이송된 사례도 확인됐다.

이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 특히 18세 미만은 성인들과 함께 수용되면서 인권침해가 두드러졌다.

경기성혜원에 수용된 박 모씨는 진실위 조사에서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폭행을 당한 사람들이 성혜원에 한달 있다가 대구희망원으로 가고, 희망원에서 폭행당한 뒤 또 다른 수용시설로 보내지는 식으로 ‘뺑뺑이’를 돌렸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15세 나이로 서울시립갱생원에 수용됐던 이 모씨는 진실위 조사관에게 “작업 불량이 나오거나 식사 중 음식을 남기면 방장이 주먹으로 쳤다”며 “맞으면 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진실위는 “수용인원 조정, 노동력 동원 목적으로 시설간 수용자 돌려막기가 이뤄졌다”며 “18세 미만 아동에 대해 규칙 위반을 이유로 성인시설로 강제전원한 사실 등 회전문 입소 과정의 인권침해를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24년간 헤어진 가족이 상봉한 사례도 공개됐다. 1998년 강제로 대구희망원에 수용됐던 전 모씨는 2022년 7월 한 장애인단체가 운영하는 자립주택에서 생활해 왔다. 전씨는 고향 마을 가족 관계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고, 진실위와 장애인단체, 행정기관, 경찰 등의 도움을 통해 누나와 상봉할 수 있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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