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정년연장 이제 피할 수 없다

2024-09-10 13:00:02 게재

정부가 4일 별도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았다. 이번 정부안 가운데 중장년 직장인 시선을 끄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의무가입 연령이다. 정부 개혁안으로는 현행 59세에서 64세로 높아진다. 지금까지 59세까지로 돼 있던 의무가입 연령이 5년 연장되는 것이다.

한국의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니 일리있는 방안이다. 고령에 이르러서도 과거에 비해 비교적 활기차게 사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그렇기에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은 65세이므로 흐름이 이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64세까지 국민연금을 낼 수 있도록 소득이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용이 안정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득공백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는 기간만 길어질 뿐이다.

정년과 연금수급 연령 간격으로 인한 소득공백 심각

사실 현재 많은 국민이 소득공백의 고통을 겪고 있다. 정년퇴직으로 직장을 떠나고 소득이 없어지는데 국민연금은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60세였다. 현행 정년 나이와 같았다. 그런데 1998년 1차 연금개혁을 통해 수급개시 연령이 2013년부터 61세로 높아졌고 이후 5년마다 한살씩 늦춰졌다. 이에 따라 1961~1964년생은 63세, 1965~1968년생은 64세, 1969년생 이후는 65세로 돼있다.

수급개시 연령이 이렇게 늦어졌지만 정년은 60세로 고정돼 있다. 2017년 정년이 58세에서 60세로 조정된 것이 끝이다. 이 때문에 요즘 정년퇴직자들은 몇년 동안 소득공백을 피할 수 없다. 이 기간을 살아남는 것은 오로지 국민 개개인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니 이 기간은 그야말로 인생의 ‘보릿고개’나 다름없다. 한창 일할 나이에 부모 봉양과 자식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소득공백’이라는 차디찬 현실뿐이다. 참으로 잔인하면서도 애잔한 일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을 앞당겨 받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연금 조기연금 수급자는 2018년 58만여명에서 해마다 늘어나 지난해 85만여명을 헤아리게 됐다. 올해는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연금을 앞당겨 받으면 정해진 나이에 받들 수 있는 금액보다 최대 30% 삭감된다. 그래서 ‘손해연금’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므로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퇴직 후 소득이 없어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사람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나마 일부는 국내외 경쟁사로 자리를 옮겨 소득공백을 메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기술과 노하우가 유출되는 부작용도 생긴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소득공백 해소는 시급하다.

소득공백을 해소하려면 무엇보다도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 상향조정에 발맞춰 정년퇴직을 늦춰야 한다. 이미 지난해부터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년을 연장하라는 요구가 제기돼왔다. 대기업 직원이라도 정년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보릿고개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방안대로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이 높아진다면 정년연장 요구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임에 틀림없다. 다른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불가피한 일이다. 앞으로 정년연장 요구를 받아들이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일부 기업은 어떻게든 버티려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산업현장은 혼란스러워질 우려가 크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이 질서를 세울 필요가 있다. 과거 주5일근무제가 도입될 당시에도 기업이나 업종마다 도입 여부가 엇갈리고 노사 간 큰 쟁점이 됐었다. 결국 정부가 주5일근무제를 법제화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했다.

정년연장 법제화로 갈등 해결하는 방안 적극 검토를

정년연장 문제도 그런 전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다만 정년연장이 실현될 경우 청년고용이 위축될 가능성이 염려된다.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결과 그런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64세로 다시 연장되면 청년실업 해결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와 정치권, 노동계와 전문가들이 진지한 검토와 논의를 하면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득공백 문제를 해결해 정년퇴직한 국민들을 보릿고개로부터 구출하겠다는 의지다. 정년연장은 국민연금 개혁이 마무리될 때까지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당장 소득공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