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은 동상이몽, 의료계 불참 예고…협의체 ‘먹구름’

2024-09-10 13:00:01 게재

대통령실 “2025년 유예 불가능” … 협의체 통한 책임 분산 속내

의료계 “2027년 정원부터 논의” 윤 정부 이후로 이슈 미룰 계산

야당 “들러리 될라” … 친한 “대통령실 진정성 갖고 있는지 의문”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이 띄운 여·야·의·정 협의체가 의료 사태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의료계가 불참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여·야·정도 제각각 속내가 달라 협의체가 성과를 내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비관론이 벌써부터 나온다.

국회의장-양당 원내대표 회동 ‘여야의정 협의체’ 논의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오른쪽)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 등을 논의한 뒤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9일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만나 협의체 구성을 논의했다. 이들은 의료계의 협의체 참여를 촉구하는데 뜻을 모았다. 추석 연휴 전에는 어떻게든 의료계가 포함된 협의체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의료계가 대화의 장에 나오는 것 자체가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하지만 의료계의 협의체 참여는 불투명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협의체 참여의 선결 조건으로 2025년과 2026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했다. 의협은 9일 정부에게 “2025년을 포함해 모든 증원을 취소하고 현실적으로 논의가 가능한 2027년 의대 정원부터 투명하고 과학적 추계방식으로 양자가 공정하게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2025년·2026년 의대 증원은 없던 일로 하고 2027년 증원부터 논의하자는 것이다. 윤석열정부가 수용할 가능성이 낮은 조건인 만큼 협의체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2027년 증원부터논의하자는 건 의대 증원 이슈를 사실상 다음 정권으로 넘기려는 포석으로 읽혀, 윤석열정부의 반감만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이날 의협이 제시한 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고 재확인했다. 대통령실은 “2025년 의대 정원 유예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불가능하다” “2026년 이후 의대 정원 규모는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를 갖춘 합리적 의견을 내놓는다면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열린 마음으로 논의하겠단 입장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협의체에서 의대 증원 백지화를 논의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협의체에 참여하는 건 정부로 쏠리는 책임을 여야와 의료계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관측된다. 야권과 의료계가 “윤 대통령이 대화와 설득 없이 의대 증원을 밀어붙인다”며 불통 이미지를 덧씌우는데 대한 반격인 셈이다. 대통령실은 9일 “여·야·의·정 협의체 주체는 여당”이라며 한동훈 대표에게도 책임을 분산시키고 싶은 속내를 비쳤다. 대통령실이 협의체를 책임 분산의 수단으로 삼는 것으로 읽히면서 협의체가 해법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야당에서는 협의체가 성과를 내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에서 “정부·여당의 들러리가 될 필요가 있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감지된다. 야당도 협의체에 기대를 걸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협의체 구성에 앞장선 한 대표는 협의체를 통해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이견을 좁히고 싶지만,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실과 의료계는 협의체 논의를 통해 자신의 뜻을 꺾을 생각이 없다. 대통령실은 협의체를 통해 한 대표와 의료계에 책임을 분산시킬 생각만 굴뚝같다. 한 대표가 “협의체의 주체”라고 책임을 미루면서 정작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와의 8일 만찬에는 한 대표를 부르지도 않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한 대표가 협의체를 통한 사태 해결에 승부수를 던졌지만 대통령실은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 장면이다.

결국 여·야·정이 의료계의 불참 속에 협의체를 ‘개문발차’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반쪽 협의체’를 띄우기는 하겠지만, 그나마 협의체를 향한 여·야·의·정의 속내가 제각각이어서 협의체의 앞날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다. 친한(한동훈) 인사는 9일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의 건강권인 만큼 협의체를 통해 어떻게든 해법을 만들어야하는데, 대통령실이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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