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훈 칼럼

태양광발전 확대와 축소의 방정식

2024-09-12 13:00:02 게재

올 여름은 정말로 심하게 더웠다. 8월의 폭염일수는 16일로 1973년 통계 집계 이후 두번째로 많았고 열대야 일수는 11.3일로 두자릿수를 처음으로 기록했다. 특히 놀랍게도 8월 5일(93.8GW), 12일(94.5GW), 13일(94.6GW), 19일(95.6GW), 20일(97.1GW) 이렇게 무려 다섯차례나 최대 전력수요 기록이 경신되었다.

그래도 발전소의 적기 건설과 안정적 운영을 위해 많은 이들이 고생했기에 정전의 위험없이 올 여름을 잘 넘기고 있는 중이다. 전력과 관련해서는 섬과 다를 바 없고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전력수급이 안정적이라는 점은 수출주도형 제조업 경제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자 우리의 자랑거리다.

밤기온이 내려가 이슬이 맺히는 완연한 가을을 나타내는 백로(白露)가 지난 7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급기야 지난 10일에는 서울에 사상 첫 9월 폭염경보까지 발령되었다. 그날 정부, 한전 및 전력거래소 등의 유관기관,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회의를 열었다.

주제는 2024년 가을철 전력 수요 경부하기 계통안정화 대책으로 폭염경보가 발령된 날이었지만 곧 다가올 가을철 정전 위험을 피할 방안들이 심도있게 논의되었다. 추석까지도 무더위가 이어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추석 이후 닥칠 전력수요의 급감이 가져올 위기에 대한 대책들이 검토되었다.

전력수요가 공급보다 많아도 정전

전력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당연히 정전이 발생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도 정전이 발생한다. 물이 가득찬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물이 넘쳐 주변이 젖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을철에는 난방 및 냉방이 필요 없어서 1년 중 전력수요가 가장 낮기에 통상 발전소들이 겨울을 맞이하기 위한 정비에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비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력은 24시간 내내 필요하므로 가을철에도 필수적으로 가동되어야 하는 발전소들이 제법 있다.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소와 석탄발전소는 한번 끄면 다시 켜는 데 각각 3일 및 1일이 걸리므로 전부 끌 수는 없다. 따라서 일부 발전소들은 가을철 내내 필수적으로 가동되어야 한다.

이것들을 필수운전 발전기라고 한다. 과거에는 가을철 전력 수요가 낮아도 필수운전 발전기를 24시간 가동하면서 전력수요가 높을 때만 일부 천연가스 발전소를 가동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지금은 태양광 발전이 대폭 증가해 필수운전 발전기의 용량과 이를 합하면 올해 예상되는 가을철 최저 전력수요인 39.0GW를 초과한다. 가을철 정전 발생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된 원인은 2018년 8.6GW에 불과했던 태양광 발전 용량이 6년이 지난 올해 30.9GW로 원자력발전소 22기에 해당하는 22.3GW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중 상당한 비중이 자가소비용 또는 소비자와 직접 공급계약을 맺은 것이라 한전이 집계하는 판매용 전력수요를 대폭 줄이는 역할을 한다.

해마다 최저전력 수요가 실질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 와중에 발전소 출력 조절이 용이하지 않은 원자력발전소는 늘고 있다. 지난 봄에 비해 가을에는 경직성 전원인 원자력발전소와 태양광발전소가 3.6GW나 늘어난다. 정전위험이 더 커진 셈이다.

오죽하면 정전을 막기 위해 가을철 휴일을 맞이하여 기우제(?)를 지내자는 말까지 나온다. 비가 오면 태양광발전의 출력이 급감해 한전 전기를 더 사용하게 됨으로써 최저 전력수요를 증가시켜 정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우제는 말이 안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전력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시간대에는 태양광 발전의 출력을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것은 선진국들도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태양광발전이 불가능한 심야시간대에도 필요한 산업체의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필수운전 발전기를 꺼서는 안된다. 따라서 정전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출력을 제한하게 되는 태양광발전에 대해 사업자들과 국민들의 이해 및 협조가 필요하다.

가을철 정전위기를 잘 넘기려면

사실 태양광발전의 출력을 제한하는 시간대에는 기본적으로 모든 천연가스발전소를 멈춰 세운다. 게다가 필수운전 발전기를 제외한 원자력발전소와 석탄발전소도 모두 세운다.

그렇게 해도 수요량을 초과하는 공급량에 대해서만 불가피하게 태양광발전의 출력을 제한하게 된다. 따라서 태양광발전은 부당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제일 마지막 단계에서 최소한으로 출력을 제한하는 혜택을 부여받고 있는 셈이다.

요컨대 우리는 작년 봄부터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전력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결국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태양광발전을 늘려야 하는 당위성과 가을철 정전을 막기 위해 일정 시기 태양광발전을 줄여야 하는 불가피성의 공존을 꾀해야 한다. 그래야 탄소중립 실현과 전력공급 안정성 확보의 양립이 가능하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미래에너지융합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