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칼럼
딥페이크 원천차단 의지는 있나
사진은 초상권이 달린 데이터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입학원서나 입사원서에서 사진을 요구하지 않는다. 입학이나 입사 후에 학생증이나 사원증을 만들 때 사진을 찍는다. 그것도 사진을 찍어 가져오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촬영한다. 초상권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사진에 대한 관리까지 하겠다는 의지가 듬뿍 담겨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온갖 신청서류에 사진을 요구하며 대개 사진관에 가서 찍도록 만든다. 초상권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관리가 안된 사진이 딥페이크를 만드는 데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게 국내 현실이다. 사진을 재산권이 달린 데이터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자동차를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지는 않는다.
이구동성으로 지금은 데이터 시대라고 한다. 어떤 데이터든 가장 처음 만들어질 때 데이터 출처를 표시하도록 강제하기만 하면 정품 데이터인지 아니면 허위 데이터인지 구분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해진다.
인공지능(AI)이 대두되면서 AI가 데이터를 먹이로 사용하기 때문에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관리라고 하면 데이터가 최초 생성될 때부터 세심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 다음 데이터가 가공되어 유통되는 과정에서도 데이터에 대한 관리는 마찬가지로 진행되어야 한다.
데이터 상품성만 관심, 관리 고민 없어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하지 않는 걸까. 의식이 시대를 전혀 못따라 가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다루는 태도가 그에 걸맞게 완전히 변해야 하는데 세상은 바뀔 생각을 않는다.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그저 무관심했다. 그냥 아무 것이나 데이터겠지 하면서 데이터를 소홀히 다뤄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데이터 시대라고 하면서 데이터를 상품으로 팔고 살 생각만 했지 무사안일주의로 대처해 왔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그렇다. 데이터 바우처 같은 예가 대표적이다. 데이터 시대에 데이터가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규명하고 대책을 준비하기 전에 데이터 상품성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데이터경제를 추구할 때도 상품성을 고려하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 영국의 경우를 보면 데이터를 산업 분야에서 서비스를 창의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원재료라는 관점에서 다룬다. 마치 의료개혁이나 연금개혁 같은 개혁 관점에서 데이터 개혁 없이는 데이터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우리와는 분명히 시작부터 다르다.
우리가 방법을 알면서도 안하는 게 실제로 많다. 항공기나 선박이 실종됐을 경우 잔해를 뒤져 블랙박스를 찾아내지 않으면 사건의 전말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 이건 말이 안된다. 교신내역을 인터넷 서버에 실시간으로 저장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 경우에도 블랙박스는 과연 필요할까. 기껏해야 보조자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규정 때문이다. 인터넷을 이용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없기 때문에 안해도 된다는 식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때도 이런 규정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이렇게 간단히 증명된다.
그렇다면 최근에 화제가 되는 딥페이크 문제는 어떤가. 두말할 것 없이 항공기나 선박의 경우와 같이 완전히 재판이다. 문제를 막을 방법이 기술적으로 있는데도 행정과 규정이 전혀 발빠르게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똑같은 일이다.
허망한 일이다. 과학기술이 사회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역할을 하는 데 기여할 바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행정이나 법조계에서 애써 외면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딥페이크에 관해 보도되는 바에 의하면 선제대응은 없고 모두 후속처리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기술로 완벽하게 사전 차단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딥페이크를 차단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사진의 최초 소유자 아이디와 유포자 아이디를 실명화해 아이디가 다를 경우 최초소유자로부터 사용 동의를 받았는지를 검증할 수 있도록 사진에 동의 티켓을 부착함으로써 가능하다. 이 경우 동의 티켓을 함부로 날조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술적 장치를 동원하면 된다.
이런 기술이 채택된다면 거짓 유포자는 유포에 대한 생각을 애초부터 접을 것이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범죄의 싹이트지 못하게 조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제일 중요하며 그게 기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책수립 과정에 과학자 참여시키자
이런 일들이 생기는 이유는 사실상 과학기술자들이 사회발전과 개혁을 위한 입법과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철저하리만큼 배제됐기 때문이다.
무슨 정부 위원회든지 법 전문가와 행정 전문가가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과학기술자도 일정 비율로 반드시 포함되도록 규정을 바꾸는 것이 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 자세가 아닐까.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