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칼럼

패권전쟁의 한 축에 있는 지도자

2024-09-25 13:00:01 게재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의 시민이었던 플라톤은 그의 저서 ‘공화국’에서 전쟁의 기원이 사람들이 소박한 생활을 넘어 사치스런 생활을 하기 위해 이웃의 땅을 원하는 탐욕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적 동기만이 전쟁의 원인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권력자의 영역확대를 향한 욕망이 전쟁의 원인이 된다. 역사 속의 숱한 정복자들이 좋은 예다. 원인이 무엇이든 전쟁 없는 세상은 없는 게 인류가 경험하는 현실이다.

목하 세계에는 두 개의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과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및 레바논 간의 전쟁이 그것이다. 둘 다 크게보면 국제정치 상 패권국가들 간의 세력다툼의 일환이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은 미국과 그 동맹국인 서유럽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서방세력의 지원이 없다면 두 나라는 벌써 지도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서방세력을 적대세력으로부터 방어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 간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은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이 확대시키고 있는 분쟁에 끌려들어가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온건개혁주의자인 페제시키안이 전쟁보다는 지역의 평화와 자국의 경제재건의 길로 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냉소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기기 힘든 싸움을 피하려는 술수로 볼 수 있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발언의 진실은

강경파인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현시점에서 전쟁의 지속과 확대를 원하는 것은 맞다. 그러면 페제시키안이 평화주의자이고 네타냐후가 전쟁광인가. 전쟁의 시작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가자지구 통치세력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이 예기치 못했던 공격을 감행해 1000명 이상의 무고한 민간인을 살육한 사건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이란의 대리자였고, 공격에 대해 자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이다.

페제시키안은 최고의사결정자가 아니다. 그가 대통령일지라도 그의 말은 참고사항일뿐 이란의 국가적 입장이라고 보기 힘들다. 1979년 이란에 이슬람공화국이 들어선 이래로 이란은 반서방세력의 한 축을 형성해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에 속한 국가로 지목했던 이란은 최근에도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이란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도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페제시키안은 2015년에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등 6개국이 이란과 체결했다가 무효화된 ‘포괄적공동행동계획’이라 불리는 핵개발제한 협약을 복원하려는 의지를 표명한다. 이 또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란이 정말 핵무기개발을 포기할 거라고 믿기는 힘들다.

필자는 2005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한국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갔었다. 거기서 핵비확산 세션에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카말 카라지 이란 외무장관, 미국의 상원의원 색스비 챔블리스 등과 함께 패널로 참여했다. 어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세션사회자가 이란 외무장관에게는 북한 핵프로그램에 대해 묻고 필자에게는 이란 핵프로그램에 대해 물었던 기억이 난다.

2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제재대상임에도 실질적 핵보유국이 되었고, 이란은 아직도 제재대상이면서 핵보유에는 이르지 못했다. 북한이나 이란이나 제재로 인해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 제재를 푸는 것이 국가적 선결과제임은 말할 것도 없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보유가 체제유지의 유일한 수단이라 믿고 남한과 국제사회를 속이면서 핵무기를 개발했다. 김정일은 수십만 아사자가 발생해도 꿈쩍 않는 잔혹한 독재자였다.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인민생활에 신경쓰면 안된다는 게 김일성 주석 이래 김씨일가의 좌우명이다. 그래도 나름 교활했던 김정일과는 달리 그의 아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무기개발 밖에는 보이는 게 없고 보여줄 게 없는 외골수로 보인다.

지도자 덕목 갖춘 정치인이 그리운 시대

이슬람 공화국의 대통령인 페제시키안에게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동안 이란의 지도자들과는 다른 얘기를 하는 그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는 심장외과의사로서 보건부장관 그리고 의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긍정적 영향력으로 이란의 정책성향이 바뀌어 경제를 재건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쪽으로 갈 수 있을까.

플라톤은 좋은 전쟁이든 해로운 전쟁이든 나가서 싸울 수 있는 군인들, 그리고 음악과 체육을 통해 균형잡히게 키워진 지도자들이 국가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군인처럼 지도자집단을 양성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막가는 정치인들이 판치는 요즘에는 지도자 덕목을 갖춘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 그저 당연한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채수찬 카이스트 교수 경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