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칼럼
국정공백기 안보위기 막을 대비책 강구해야 한다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문제가 큰 파문을 낳고 있다. 북한이 파병 댓가로 핵과 ICBM 등 군사기술을 이전받을 것이라는 둥,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참전하게 될 것이라는 둥 여러 가지 분석과 억측이 나오고 있다. 남북한 사이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24일 폴란드 대통령 환영행사가 열리던 용산 대통령실에 대통령 내외를 원색적으로 조롱하는 북한 전단지가 살포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무인기가 평양에 침투해 반체제 전단을 뿌렸다고 주장해온 북한이 장소와 시간을 특정해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북전단과 오물풍선 신경전이 여기까지 온 것은 ‘힘에 의한 평화’라는 대결노선이 초래한 측면이 크다. 전략도 정책도 없이 북한을 넘어뜨리겠다는 고식지계가 이제 부메랑이 되어 사태를 키워가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안일하고 무기력하다. 북이 도발해오면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응징하겠다며 ‘즉강끝’을 외치던 정부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와 무력대응 자제를 요구하는 유엔사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북한군 파병에 대해서도 동맹과 우방국들과 공조할 것이라는 원론 외에는 어떤 선제적 해결책도 내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제공도 검토할 수 있다는 말을 흘렸지만 전쟁을 부르는 위험한 도박이다. 따지고 보면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9.19 군사합의를 무력화하면서 북한문제를 풀어가겠다는 당초의 전제가 논리 모순이었다. 북한 책임도 크지만 우리 정책의 전제도 살필 때가 됐다. 국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정권이 안보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원식 안보실장에게 “우크라이나 협조를 구해 북괴군 부대를 포격하고 미사일 타격을 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는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의 경우가 그 예다. 사적 대화라고 발을 뺐지만 군사적 맹동주의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언제든 돌출할 수 있다는 경고처럼 귀를 때렸다.
대통령 오판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
역사는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고, 전쟁을 잊으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가르쳐 왔다. 신라나 고려가 화백이나 도병마사 같은 합의제 기구를 통해 주요한 국방정책을 협의하도록 한 것은 전쟁이 국가 명운을 가르는 엄중한 사안이라는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목해 볼 것은 궁지에 몰린 권력자가 전쟁의 길을 택할 위험이 있을 때 그를 정책결정 과정에서 배제했던 미국의 사례이다. 파멸적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집단지성이 빛을 발한 것이다.
1974년 대통령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리게 되자 국방장관 제임스 슐레진저(James R. Schlesinge)는 합동참모본부에 대통령의 군사적 명령을 따르기 전에 자신의 허락을 받을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냉정을 잃고 사고를 칠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2020년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했을 때도 비슷한 조치가 취해졌다. 합참의장 마크 밀리(Mark Milley)는 중국과의 대화통로를 열고 중국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분노와 좌절감에 빠진 트럼프가 중국과의 무력 충돌 등 비이성적 조치를 취할 것을 우려한 고뇌어린 조치들이었다.
2022년 정권교체후 한국은 극단적 분열 정치를 경험하고 있다. 정치가 퇴행을 거듭하면서 지난 반세기 한국의 경이로운 발전을 견인해온 법치와 민주주의, 사회적 포용제도가 뿌리부터 훼손되고 있다. 이렇게 국정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지만 집권세력은 국정방향의 전환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영부인 문제와 명태균 의혹 등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이를 업보로 생각하고 "돌을 던지면 맞고 가겠다”는, 대통령의 22일 범어사 발언은 이런 입장을 명백히 한 것이다. 최근에는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20%대에 턱걸이할 정도로 추락하면서 탄핵 여론도 힘을 받고 있다. 이런 혼미한 정국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행여 국정 공백상태가 오는 것은 아닐까, 풍문 속의 계엄설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를 착잡한 마음으로 가늠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념국정 내려놓고 실용국정으로 가야
다음 달 김건희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다. 명태균의 말대로 “한 달 안에 대통령을 탄핵”할 만한 핵포탄이 터질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은 이제라도 국민들에게 그간의 태정(怠政)을 사과하고 국정을 혁신해야 한다. 만기친람의 허영을 버리고 성난 민심을 들어야 한다. 그도 저도 싫다면 굳이 자리를 고집할 일이 있는가?
국회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국정의 공백을 수습해 갈 수 있는 민주적 절차를 마련하고, 군과 검찰, 감사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의 중립화 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 시민사회,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남북한 간의 긴장을 방조하거나 이용하려는 꼼수를 봉쇄해 나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북한과의 소통창구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수족같이 부리는 검찰로도, 굳게 뭉친 ‘충암파’로도 민심을 가둘 수는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실용국정의 길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