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칼럼

기초과학 대열에 진입한 전산학

2024-10-30 13:00:01 게재

전산학 분야 중에서 인공지능(AI)을 연구해온 대학교수와 기업연구소 연구자 5명이 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일을 놓고 기초과학계 충격이 크다. AI의 대부격인 2명을 비롯해 알파고를 만든 소장 연구자 3명이 그들이다. 전산학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전산학계 노장은 물론 소장까지도 노벨상을 함께 거머쥐었다고 하는 사실은 전산학의 위상을 생각하게 한다.

언론의 주요 논평은 이렇다. 기초과학의 혁신은 자체적으로 한계에 봉착했으며 과학계의 연구방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전산학에 의해서 가능해지기 시작했다는 의견, 과학 속에 숨어있는 비밀을 앞으로는 AI가 아니고는 풀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전산학 중심의 시각, 또는 의학계의 히포크라테스가 컴퓨터계의 영국 튜링과 만난 것이라고 보는 기초과학 중심의 견해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를 이용해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해내는 데 성공했고 단백질 구조를 신속하고 간편하게 파악하기 위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알파는 구글을 지칭)라는 이름의 AI 기반 검색엔진을 개발해 적용한 일은 기초과학 분야의 실험을 확장시키는 데 있어서 전산학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전산학이 향후 기초과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이런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은 슈퍼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기술의 결합이다. 이는 전통적 물리학이 계산물리학으로, 전통적 화학이 계산화학으로 변모되어 나가는 속도가 가속화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노벨 물리·화학상이 과학계에 던진 충격

전산학과가 대학에 생기기 시작한 1970년대 초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대부분의 대학에서 전산 분야는 공학으로 취급되지 않았고 문리대 내 이과대학에 소속돼 있었다. 카이스트에서도 1978년에 이르러서야 전산학과가 출범했다. 1979년이 돼서야 서울대 이화여대 등에서 컴퓨터공학과라는 이름으로 공과대학에 속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추세가 지금까지 유지됐다.

그런데 이제는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전산학 분야가 석권하면서 자연과학들이 즐비한 이과대학으로 다시 가야 할 판이다. 수상자 5명 중 자연과학박사는 1명뿐이고 나머지 4명은 모두 원래 학부부터 전산학과 출신으로서 종국에는 전산학박사까지 취득해 물리학 화학과는 관계없는 이들이다.

물리학계에서는 특히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힌턴 교수의 이력에 주목하면서 과학기술 연구의 주류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힌턴은 AI의 대부로 2018년엔 전산 분야의 노벨상에 해당하는 튜링상을 수상했다. 그는 물리학을 전공하거나 주력으로 연구한 경력은 전무하다. 기존 틀 안에서는 절대로 물리학자라고 불리기 어려운 인물이 물리학 최고봉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니 기초과학계에서 충격이 컸을 것이다.

어느 세계적 물리학 대가의 견해를 빌리면 물리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는 기존의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함은 물론 현장 연구자들의 기존 연구방향까지도 달라져야 한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순수과학 연구의 미래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러면 기초과학이 설 땅이 사라졌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전산학이 기초과학을 대체할 것이라는 예고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는지 살펴보려면 자연과학이란 분야를 시대에 맞게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돌이켜보면 전산학 역사는 올해로 80년이 됐다. 그보다 더 됐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말로만 듣던 공상과학급에 지나지 않던 계산하는 기계가 디지털 계산기의 형태로 1943년에 영국에서 제작되고 난 후로는 그만큼 됐다. 즉 100년을 향하는 길목에서 전산학의 타 분야 침투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됐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타 분야라 함은 경영학이나 기업경영뿐만 아니라 이제는 기초과학 영역까지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전산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날이 조만간 오리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런 오피니언 칼럼이 컴퓨터 전문가에 의해 한국에서 1996년에 등장(월간지 지방행정연구에 게재된 ‘제5의 기초과학으로서 전산학’)한 적이 있고, 미국에서는 2007년에 등장(미국컴퓨터학회 ACM 학술지에 게재)한 적이 있다.

전산학계에서는 오래 전 예측했던 일

이런 컴퓨터 학자들의 예견은 벌써 20년 지난 일이다. 이제 일반 대중들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다음 두가지다. 첫째, 전산학이 다른 학문과 융합해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하는 데 어느 다른 학문보다 더 크게 기여한다는 점이다. 둘째, 인류의 난제를 푸는 도전에 있어서 전산학만큼 기초과학급 역할을 하는 학문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80년 역사의 전산학은 오늘날에 이르러 가히 물리 화학 생물 수학이란 전통적 4대 기초과학의 계보를 잇는 제5의 기초과학으로서 기초과학 대열에 드디어 입성했다는 해석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