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미국 인플레이션이 쉽게 잡히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

2024-11-06 13:00:03 게재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10월 11일 기준금리를 0.25%p 내린데 대해 한국은행 총재는 “향후 3개월간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금통위원은 5명이었고, 나머지 1명은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견해를 냈다”고 상황을 전했다. 경기침체의 위험보다 금융안정을 중시하겠다는 뉘앙스였다.

금통위의 관점은 3분기 경제성장률이 한은이 예상한 0.5%에 크게 못 미치는 전분기 대비 0.1%에 그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3분기 수출이 0.4% 감소하고 수출의 성장기여도가 마이너스(–) 0.2%p로 떨어진 점이 주목받았다. 기획재정부와 국무총리를 필두로 정부는 수출을 중심으로 한 경기회복을 낙관해 왔기 때문이다. 급기야 대통령마저 8월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다”고 단언하기에 이르렀다.

비판의 화살이 한국은행에 돌려진 것이 ‘금리인하 실기론’이다. 한은이 8월에 금리를 동결하지 말고 먼저 인하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거듭 내수침체에 우려감을 더했던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관점이 소환됐다. 이를 두고 한국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드는 것 아닌가 하는 시장의 우려와 불안감이 갑자기 커졌다. 지난 반년간 경제성장이 사실상 멈췄다고 해석할 수 있어서 그렇다.

그러나 왜 금통위원 다수가 추가 금리인하를 망설이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한은총재가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이 미국 중앙은행의 결정에서 독립적일 수 없다고 했으니 미국경제의 상황을 되짚어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

연준의 의도 따르지 않는 시장

미국 연준(Fed)은 지난 9월에 기준금리를 0.5%p 인하했다. 이른바 ‘빅컷’이다. 11월에도 기준금리를 추가로 0.25%p 인하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2022년 3월 이후 연준의 금리정책은 기대하는 효과를 내지 못한 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는 나홀로 호황이다. 최근에는 연착륙(소프트랜딩)마저 없는 ‘노랜딩’ 시나리오가 나올 정도다.

미중갈등과 코로나19, 그리고 우크라이나전쟁이 계기가 된 공급망 붕괴로 물가가 치솟았을 때 수요측면의 정책수단밖에 없는 연준으로서는 공급망 문제에 직접 대처할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경기를 죽여 물가를 잡자는 것이 연준의 기획이었다.

이 기획은 미국경제의 호조가 지속되면서 실패했다. 9월 소비자 물가상승률도 8월의 2.3%보다 소폭이나마 높게 나왔다. 금리인상에 따른 물가안정이라는 연준의 자화자찬을 믿을 수 없는 이유다. 논리적으로는 유가 등 공급망 문제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데 따른 물가안정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거꾸로 빅컷의 큰 폭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를 대변하는 국채금리가 치솟았다. 시장은 연준의 의도에 따르지 않고 있다. 따져볼 만한 문제다.

우선, 기준금리를 급하게 올리기 이전보다 지표상 경기가 더 좋은데 여기다 대고 금리인하의 금융완화정책을 편다는 것인데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호황에 기름을 붓는 셈이다. 지난달 30일 미 상무부는 미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GDP증가율) 속보치를 연율 기준 2.8%로 집계해 발표했다. 대다수 연구가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1% 후반대로 추정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 인플레이션 압력이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린 유동성을 채 걷어 들이기 전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추가로 풀린 유동성 누적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각각 4조달러와 그 이상 연준의 유동성 공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으로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다. 연준이 금리인상으로 유동성 환수에 나서는 사이 제조업 재건을 내세워 투자 유치에 나선 바이든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칩스법) 등을 내세워 돈을 풀었다. 전형적인 긴축적 통화정책과 완화적 재정정책 간의 엇박자를 보였다. 이 또한 연준의 통화정책이 무력화된 요인의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누가 당선돼도 미국 재정적자 크게 늘 것

미국의 기존 재정적자 문제야 새삼스럽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트럼프와 해리스 두 대선 후보의 공약에 반영된 향후 재정적자다. 미국의 비영리 재정연구단체인 CRFB의 분석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늘어날 재정적자 규모는 트럼프의 경우 7조5000억달러, 해리스의 경우는 3조5000억달러로 추산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풀린 금액에 육박하거나 훌쩍 뛰어넘는다. 금리인상기에 엇박자 났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동시에 완화로 돌아서는 것이다.

기준금리인하에 국채금리 상승으로 답한 시장은 다시 닥쳐 올 인플레이션을 선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아마 유럽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과 같은 정책 딜레마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