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전두환과 윤석열, 닮은꼴 권력의 비슷한 종말

2024-12-12 13:00:03 게재

인간이 앞날을 계획하면 신은 그저 웃는다고 했다. 전두환이 그랬다. 12.12쿠데타로 집권한 그가 1987년 4월 13일 ‘호헌’을 선언한다. 간선제로 대통령을 뽑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유지하겠다는 거다. 이를 거부하는 민심은 6월항쟁으로 맞섰고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6.29선언’을 이끌어낸다. 호헌선언에서 직선제 쟁취까지 딱 두달 반 걸렸다.

‘확정적 내란범’인 윤석열도 그랬다. 지난 11월 7일 대국민 담화에서 “2027년 5월 9일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모든 힘을 쏟아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현실은 12월 3일의 친위쿠데타가 시민과 국회의 저지로 실패했다. 내란의 수괴로 적시된 그는 구속과 탄핵의 길에 섰다. 임기 완주 선언에서 탄핵 발의까지 한달도 걸리지 않았다.

공통점은 둘 다 역사의 흐름을 거스른 당대의 권력이란 거다. 수레바퀴 앞 사마귀처럼 도도한 민심을 한줌 권력으로 막아보려 한 거다. 군사독재의 중심 전두환은 ‘지체된 정의’에 의해 내란 수괴로 구속돼 1997년 무기징역이 확정된다. 퇴임 후 10년만이다.

변형된 역사의 기시감이랄까. 검찰권력의 정점 윤석열은 지금 탄핵과 구속의 기로에 섰다. 쿠데타로 집권해 단죄된 전씨와 집권 후 쿠데타로 단죄될 윤씨는 45년의 시차를 두고 닮은꼴 경로를 밟고 있는 거다.

역사는 오만한 권력에 허무한 종말로 경고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은 두번 등장한다는 철학자 헤겔의 통찰에 마르크스는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라고 덧붙였다. 씁쓸한 혜안이다. 전씨의 쿠데타로 촉발된 ‘서울의 봄’은 5.18광주항쟁의 비극을 불렀다. 윤씨의 망상으로 촉발된 ‘서울의 밤’은 지금 한바탕 희극으로 종국을 향한다.

사실 그가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취지로 말했을 때 알아채야 했다. 어쩌면 전두환은 그의 롤모델일지도 모르겠다. “군에서 조직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일을) 맡겼다”고 했다. 여기서 전문가는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 출신이다. 이를 치환하면 “검찰에서 특수수사를 해봤기 때문에 (검사들에게 일을) 맡겼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포함해 특수부 검사 출신을 대거 정부요직에 등용하지 않았나.

그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왕(王)’자를 쓴 손바닥을 내밀었을 때 꿰뚫어봐야 했다.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진짜 왕 노릇을 하고 싶었다는 것을 말이다. 대통령이 되고서도 ‘바이든-날리면’ 소동으로 전국민이 청력테스트를 받았다. 이때 절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검찰권력 특유의 DNA를 간파해야 했다.

누구나 닮고 싶은 인물이 있다. ‘주홍글씨’의 작가 나다니엘 호손은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을 통해 성공한 인생을 모색한다. 언젠가 동네 뒷산의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인물이 출현한다는 전설과 네 명의 롤 모델을 소개한다. 엄청난 재산을 모은 상인,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 뛰어난 웅변으로 선출된 정치인, 멋진 작품으로 유명한 시인이다. 아쉽게도 이들 모두 인격적인 흠결이 있었다.

저자는 정직하다는 뜻의 이름의 주인공 어니스트의 삶을 조명한다. 평범한 농부에서 회중의 설교자로 성장한 그가 바로 전설로 내려온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거다. 요즘으로 보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장차 이웃들에게 존경받는 어른이겠다.

이번 내란에 특전사와 방첩사를 동원한 데서 전두환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는 무한권력자를 흠모했을까. 전자는 총칼로 권력을 잡아 검찰을 시녀처럼 부렸고 후자는 검찰로 권력을 잡아 총칼을 수하처럼 부렸다는 점에서 거꾸로 닮았지만.

역사는 오만한 권력의 비참하고 허무한 종말을 경고한다. 그래도 권력에 취한 자들은 스스로 깨어나지 못한다. 태릉 우물의 개구리가 그랬듯이 서초동 우물의 개구리도 마찬가지일 듯 싶다. 그러니 1979년의 쿠데타가 2024년에도 가능할 것으로 여긴 것 아니겠나.

시위는 로제의, 정치는 윤수일의 ‘아파트’

오히려 시민들이 우물을 벗어나 세계로 뻗어 나간다. 코리아의 K는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1980년 서울의 봄에 돌과 화염병으로 맞섰던 청년들은 1987년 6월항쟁에는 맨주먹 넥타이부대로 성장했다. 박근혜 탄핵 때는 장년이 돼 촛불을 들었고, 이번 ‘서울의 밤’은 그들의 자녀가 케이팝(K-pop) 아이돌 응원봉으로 밝혔다.

노래도 ‘아침이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이제는 빌보드 차트를 점령한 로제의 ‘아파트’로 업그레이드됐다. 질서 있는 집회와 축제 같은 시위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후진 정치만 아직도 1982년 윤수일의 ‘아파트’ 시절에 머물러 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끝은 늘 파국이다. 군사독재가 그랬다. 우리는 지금 브레이크 없는 검찰권력의 파멸적 결말을 목도하고 있다. 문민정부가 군민주화를 이뤘듯이 다음 정권은 필히 검찰에 제동장치를 장착해야 한다. 음주운전과 폭주가 불가능하도록 제어장치도 달고.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