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

노벨상 한국, 국가는 실패로 가나

2024-12-16 13:00:13 게재

한 강 작가가 10일 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수상작이다. 그가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현지에 머물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비상계엄이 발동됐다. 두 작품 모두 비상계엄과 유사한 국가 공권력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공교롭다. 마치 소설이 현실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때맞춘 듯이 내려진 계엄이다. 격동의 시간이다. 세계의 정상을 향한 민족 대장정이 여기서 멈추게 되는가?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다루었다. 그는 12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서재에서 우연히 ‘5.18 광주 사진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쿠데타 군부에 저항하다 총칼로 살해된 시민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책이다. 한 강은 “나는 어려서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총칼로)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새겨졌다.”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의문이다.

한편 같은 책 속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찍혀 있었다.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다. 작가는 양립할 수 없는 정반대의 모습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계속되는 전쟁과 폭력,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세계는 왜 이렇게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글쓰기를 이끈다고 했다.

국가를 실패로 끌고 가려 한 윤석열

한 강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진행된 12.3 내란사태와 그것을 규탄하는 시민, 그리고 국회 탄핵 후 환호하는 시민들을 지켜봤다. 그가 한국사의 가장 비극적인 두 사건에 대한 깊은 통증으로 그렸던 그 시간과 공간이 다시 재연됐다. 그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인간성의 잔인성은 윤석열의 계엄 포고령의 내용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윤석열은 포고령을 발표하면서 “척결한다”를 1회 “처단(處斷)한다”를 2회 반복했다.

‘척결’ ‘처단’이라는 단어가 주는 메시지는 생명에 대한 위협이다. 윤석열, 계엄으로 이루고자 했던 국가는 무엇일까? 아니 위정자들이 궁극적으로 가져야 할 책무는 무엇일까? 이번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MIT의 경제학 교수 다론 아제모을루와 시카고대 정치학 교수 제임스 A. 로빈슨이 답한다. 두 교수가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가 그것이다. 그들은 국가의 번영과 빈곤, 불평등의 근원을 증거에 바탕해 풀었다.

그 사례로 주목한 것이 바로 남한과 북한이다. “한반도의 남과 북의 정치와 경제의 제도적 차이가 성공과 실패, 부국과 빈국을 갈랐다”고 했다. 이 사례는 “세계 모든 나라가 부국과 빈국으로 나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인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는 지리적 역사적 인종적 조건이 아니라 제도”라는 것이다.

“남한은 포용적 경제 제도로 사유재산을 보장한다.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자유로운 교류와 계약이 가능한 경쟁 환경을 조성해 준다. 포용적 경제 제도에서는 왕성한 경제활동과 높은 생산성으로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포용적 정치제도가 포용적 경제 제도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선순환 구조가 된다는 설명이다.

“북한은 소수의 개인과 집단이 이익을 차지하는 착취적 경제 제도다. 국가의 실패에도 착취적 제도가 유지되는 이유는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지탱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계속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착취적 제도는 착취할 만큼의 부는 창출한다. 하지만 제도적 특성상 창조적 파괴를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부는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계엄이 창조적 파괴일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와 경제 제도하에서 살 것인지를 국민이 결정한다. 이를 대리해 수행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한 나라의 성패를 결정하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윤석열에 포용적 정치는 없었다. 포용적 경제 제도를 만드는 것도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국민에 총구를 겨누었다.

권력의 총구 향해 ‘사랑’을 물은 한 강

노벨상을 수상한 한 강의 표정에는 기쁨이 안 보인다. 어둡다. 그는 소설 속의 수많은 주검의 한(恨)과 깊이 교유하며 글을 썼다. 노벨상 앞에서 비로소 말했다.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확신이 바뀌었다고…. 이 의문에 대해 “내 모든 질문의 가장 깊은 층위는 결국 사랑을 향하고 있었다” “내 삶을 관통하는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울림도 사랑”이라고 했다. 그는 동시에 권력의 총구를 향해 ‘사랑’을 아느냐고 묻는다.

한 강은 말한다. “우리의 역사와 말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가졌지만 반복되는 것 같다. 살인을 멈춰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것의 명료한 결론이다.” 대한민국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꼽은 성공한 국가다. 더이상 권력의 총으로 국가와 국민을 실패로 내몰아서는 안된다.

칼럼니스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