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경제 고민 좀 합시다
한달 시차를 두고 군이 동원되는 ‘K-정치’ 시리즈가 생방송되며 주식·외환시장이 요동쳤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 군의 국회의사당 진입 장면이 CNN BBC 등 글로벌 뉴스채널 방송을 탔다. 1월 3일에는 윤석열 대통령 관저에서 대통령을 체포하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이를 막는 경호처의 대치상황이 생중계됐다.
지난해 12월 초 1402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계엄선포 직후 야간거래에서 1440원대로 치솟았다.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 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의 의사당 난입, 국회의 계엄 해제요구 결의안 가결 등 상황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환율이 출렁였다.
지난 3일 아침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서자 오전 9시 증시 개장과 함께 외국인 순매수가 늘며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 하지만 오후 1시30분 영장 집행 중단 소식과 함께 급락하며 상승폭 일부를 반납했다. 미국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체포 실패로 정치불안이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했다. 지난해 8월 말 국정브리핑에선 경제가 ‘블록버스터급’으로 좋아지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이어 “경제가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석달 만에 도약은커녕 후퇴시키는 불록버스터급 막장 정치드라마를 연출했다.
후진적 ‘K-정치’ 시리즈로 경제 후퇴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원화가치와 주가는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 부결이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거부 등 정치 불안이 커질 때마다 급락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윤석열은 국내총생산(GDP) 킬러”로 비유했을 정도다.
외국인과 기관은 물론 개인투자자들도 시장의 악재, 코리아 디스카운트 장본인이 국민 손으로 뽑은 윤 대통령이라는 점에 황당해한다. 더구나 그는 지난해 1월 2일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증시 개장식에 참석한 데 이어 보름 뒤 민생토론회 주재 차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를 연거푸 찾았다. ‘주가상승’을 의미하는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나와 과도한 세제가 증시 발전을 저해한다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공언했다.
1997년 외환위기 폭풍이 닥칠 때 블룸버그통신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들은 11월 초부터 한국의 단기외채 증가와 외환보유액 고갈 등을 집중 보도했다. 이에 대해 당시 김영삼정부와 한국은행은 “경제의 기초(펀더멘털)가 탄탄하고 외환보유액도 바닥나지 않았다”며 맞섰다. 국내 언론도 이를 받아쓰며 ‘경제 비관할 것 없다’ ‘외신들의 한국경제 흔들기’란 제목의 사설을 쓰기도 했다.
3일 대통령 관저 앞 경호처와 공수처의 대치 상황이 CNN BBC 알자지라 등 뉴스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등 유력 신문들이 온라인 속보로 다뤘다. ‘민주주의 모범국’인 줄 알았던 한국의 후진적 정치행태가 지구촌에 실시간으로 전파됐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일제히 낮췄다. 무디스는 12·3 비상계엄 직후 한국 신용등급을 유지하면서 “정치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후진적 K-정치 시리즈 생중계로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현실화하면 정말 큰일이다.
지난해 12월 연립정부 붕괴 등 정치 불안으로 프랑스 신용등급이 한단계 내려갔다. 유로존이란 방어막이 있는 프랑스보다 한국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기업과 금융기관의 외화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진다.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환율이 치솟는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해 마지막 날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중 2명을 임명했다. ‘경제와 민생 위기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라고 했다. 최 대행이 국무회의에서 사전 예고가 없었던 헌법재판관 임명을 알리자 몇몇 참석자가 반발했다.
이에 대해 이창용 한은 총재가 “국무위원들은 경제 고민 좀 하고 얘기하라”고 일갈했다. 환율이 1500원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정치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메시지를 대외에 내보내는 것이 절실하다고 판단했으리라.
연말특수·새해효과 실종시킨 계엄 후폭풍
최 대행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3년 후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하며 탄핵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목격했다. 최 대행의 행보에 윤 대통령 측근인 검사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경제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데 지지한다’고 거들었다.
우리 사회는 12.3 내란사태 이후 많은 것을 잃었다. 2024년 연말특수도, 2025년 초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새해효과’도 실종됐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가결 직후 우원식 국회의장이 말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삶으로 증명됩니다”라고. 윤 대통령은 이제라도 자신의 그릇된 행동에 책임지는 게 도리다. 여야 정치권과 정부 인사들도 제발 경제와 민생 걱정 좀 하자.
경제저널리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