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불법적 명령에 거부할 권리

2025-01-15 13:00:02 게재

“만약 같은 사태가 또 다시 일어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불법적이라도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2.3 내란사태 이후 만난 한 공무원이 털어놓은 말이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우리는 수많은 공무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국회 정문을 막았던 경찰, 국회 본관의 창문을 깨고 진입했던 군인,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던 중앙·지방공무원 등등. 우리는 또 보았다. 그날 밤 국회 안과 밖에서 쭈뼛거리던 군인들, 국회 출입을 막는 척만 했던 경찰들,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했던 공무원 등등.

‘불법적인 상관의 명령은 거부해야 한다’는 원칙이 상식이라고 믿었던 생각은 어쩌면 착각인지 모른다. 대법원이 일관되게 판시하고 불법에 대항한 공무원들이 구제받고 있지만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라는 44년 만의 비상식적 사태 앞에서 ‘위헌·불법적인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무용지물이 됐다. 앞의 공무원은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사건에 직면했다면 아마도 명령에 따랐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공무원이 이렇게 판단한 것은 무엇보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맹목성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가공무원법 등은 여전히 복종의무만을 두고 있다. ‘불법적인 상관의 명령을 거부할 권리’는 ‘위헌이나 불법성을 누가 어떻게 따질 것이냐’라는 질문 앞에 작아진다. 더구나 44년 만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이다. 지난해 12월 3일 그날 텔레비전 생중계를 보면서 먼지 쌓였던 비상계엄법을 들춰본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상관 명령에 대한 맹목성은 이 같은 갑작스러움조차 뛰어넘는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사실상 막고 있는 대통령실 경호처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법치주의가 무너지는 현장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법보다 명령이 우선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고 자신을 다그치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충성심을 보인 사람이 잘 되더라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신화를 믿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있었다. “저는 개인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했다. 박근혜정부 시절 윤석열 검사다.

맞는 말이다. 여기에 답이 있다. 공무원은 개인인 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에 충성하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주체인 ‘대한국민’에 충성하는 사람이다. 상관의 명령이 위헌·위법하다면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불법적인 상관의 명령을 거부할 권리는 오랜 기간 국회에서 맴돌기만 했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권리로 인정받아야 한다. 더 이상 공무원을 희생양으로 만들어선 안된다.

윤여운 자치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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