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시장 ‘반쪽짜리 법규제’…당국, 2차 입법 논의 착수
현재 불공정거래 규제에 초점, 상장·공시 법적 강제 없어
거래소 경영·재무건전성 관리, 불건전 영업행위 제재도 못해
국내 가상자산(코인) 투자자가 15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지만 법규제는 불공정거래행위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는 1단계 입법에 머물고 있다. 금융당국은 2단계 입법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코인 상장·공시 등을 법적 규제로 끌어올리는 논의에 착수했다.
15일 금융위원회는 김소영 부위원장이 주재하는 2차 가상자산위원회 회의를 열고 관계부처·기관, 민간위원들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2단계 입법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김 부위원장은 “우리 가상자산 법제는 EU의 가상자산시장법안(MiCA)과 유사하게 △가상자산사업자 △가상자산 거래 △관련 인프라 등을 한 법률에서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통합법’ 체계를 지향하고 있다”며 “이런 맥락에서, 2단계 입법 논의는 ‘사업자-시장-이용자’를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단계 입법은 가상자산사업자(코인거래소 등) 측면에서 진입 및 영업규제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가상자산 매매·중개, 보관·관리, 자문, 평가 등 다양한 가상자산업 유형을 포괄하고 이용자 보호와 이해상충 방지 등을 위한 불건전 영업행위 규제 신설, 내부통제 기준 마련 등이 검토된다.
코인 거래와 관련해서는 현재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닥사)가 모범규준으로 규율하고 있는 거래지원(상장) 심사 공통 가이드라인 등을 공적 규제로 강화하고 자본시장 공시에 준하는 가상자산 ‘주요사항 공시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이날 위원들은 거래소 중심의 국내 시장을 고려할 때 투명한 상장·공시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이용자 보호를 위한 핵심 요소라는 점에 공감했다. 현재 자율규제인 모범규준으로 규율하고 있는 ‘거래지원(상장)’의 이행 효율성을 제고하고, 자본시장 공시와 같은 사업보고서 등의 정기공시, 주요사항 공시제도와 같은 수시공시 제도의 도입 필요성 등을 제기했다.
실제로 현재 불공정거래 규제가 시행 중이지만, 불공정거래의 주요 원인인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시제도 마련이 불가피하다.
◆“국민 5명 중 1명 가상자산시장 이용, 정책방향 적극 모색” = 당초 금융당국은 현재 모범규준을 통해 자율적으로 상장 심사 등이 이뤄지고 있어서 상장과 공시 문제를 시급하게 바라보지 않았지만, 시장이 급변하면서 논의에 포함시켜 2단계 입법을 서두르기로 했다.
또 1단계 입법에는 가상자산사업자의 진입과 경영·재무건전성, 영업행위와 관련한 규제도 없다. 현재 코인 거래를 하는 이용자들은 코인거래소의 갑작스런 거래 중단이나 전산 점검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12·3 내란사태 당시 국내 코인 시장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1억3000만원대에서 8000만원대로 급락했다. 당시 주문이 몰리면서 전산장애로 거래가 먹통이 되는 사건이 발생, 투자자들이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금융회사들과 달리 코인거래소의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법적 제재를 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일부 투자자들은 코인거래소들이 불공정거래행위에 가담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밖에도 2단계 입법에는 실효성 있는 자율규제를 위한 법정 협회 설립과 분산원장 개념 등을 포함한 가상자산의 법적 정의 명확화 등이 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김 부위원장은 “법정화폐 등과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금융시스템 안정 및 통화정책과 연계된 특성 등을 고려해 별도의 사업자·거래 규율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의 5명 중 1명이 가상자산시장을 이용하고 있으며, 보유한 가상자산 평가액은 100조원이 넘는다”며 “이제 민관이 지혜를 모아,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건전한 가상자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향후 관계기관 TF 및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2단계 입법 주요 과제별로 세부 내용 검토에 착수하기로 했다. 실무 검토가 완료된 과제는 순차적으로 가상자산위원회 논의를 거쳐 올해 하반기 중 구체적인 2단계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법인 투자도 단계적 허용, 거래소 경쟁 격화될 듯 = 한편 금융위는 최근 발표한 올해 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비영리법인부터 단계적인 코인거래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인 투자와 관련한 세부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가상자산위원회는 이르면 내달 별도 회의를 열고 관련 내용을 밝힐 예정이다.
개인투자자에 국한돼 있는 코인거래가 법인으로 확대될 경우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국내 1위 코인거래소인 업비트의 독주에 제동이 걸릴지도 주목된다. 업계 2위인 빗썸은 오는 3월 24일부터 실명확인입출금계정(실명계좌) 발급 제휴 및 원화 입출금 은행을 NH농협은행에서 KB국민은행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빗썸이 제출한 실명계좌 발급은행 변경 신고서를 최근 수리했다.
빗썸은 NH농협은행이 코인 투자 관련한 계좌 발급에 깐깐하고 2030세대 투자자 확대를 위해 지난해부터 제휴은행을 KB국민은행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또 법인 투자가 가시화되면서 법인 고객들을 확보하는데도 KB국민은행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점유율은 업비트가 78%로 가장 높고 빗썸(20%), 코인원(1.1%), 코빗(0.36%), 고팍스(0.07%) 순이다. 업비트의 독주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휴은행 변경에 따라 빗썸이 얼마나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