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030년 세계 에너지시장을 가다 ② 세계 열강의 대립

가스관 밸브로 유럽 주무르는 푸틴

2014-03-19 10:57:14 게재

크림반도 갈등 … 우크라이나 통해 EU로 가는 러시아 가스가 복병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각) 크림반도 주민투표 결과 러시아 편입 찬성이 97%에 달함에 따라 크림반도를 독립주권국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이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곧바로 러시아에 대한 2차 제재에 들어갔다. 우선 러시아와 크림공화국 고위 인사 21명의 자산을 동결하고 여행을 금지한데 이어 추가 제재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앞서 존 베이너 미국 연방 하원의장은 지난 4일 "우리는 푸틴이 지정학적 목적에서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푸틴은 미국과 EU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재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압박해 왔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둘러싼 세계열강의 갈등 이면에도 에너지 문제가 내재돼 있다.

미국·EU 경고에도 러시아 고자세 이유있어 =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폴란드, 프랑스, 노르웨이에 이어 4번째로 셰일가스 매장량이 많은 국가다. 우크라이나는 2020년부터 셰일가스 생산을 목표로 지난해 로열더치셸 등 서구기업과 대규모 개발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EU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비중이 35%에 달한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절반은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2개의 가스관으로 운송된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오스트리아는 가스의 60~70%를 러시아에 의존하며, 독일과 이탈리아도 각각 40%, 25%에 달한다.

러시아는 2006년과 2009년 우크라이나를 관통하는 가스관을 봉쇄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의 가스요금 체납이 명분이었지만 구소련 국가들과 중앙아시아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밑바탕이었다.

이로 인해 정작 피해를 본 것은 가스공급이 중단된 유럽국가들 이었다.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지난 7일 "2009년초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과 EU의 경고에도 고자세를 취하는 러시아의 속내가 여기에 있디.

이에 미국 내에서는 EU에 천연가스 수출을 허용해 러시아의 힘을 꺾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테드 포 하원의원은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은 러시아의 에너지 독점력을 파괴할 것"이라며 이달 초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수출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현행법에 따르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나 국익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국가에만 가스를 수출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법 개정이 선결과제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미국 갈등 = 중국과 미국도 최근 동중국해, 남중국해에 대한 자국의 권리를 주장하며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2월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국무장관이 △중국의 남중국해 9단선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에 대해 국제법상 합치하지 않으며 수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중국정부는 발끈했다.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미국이 어떤 자격으로 중국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리행사에 이래라저래라 하는가"라고 반박했다. 아시아 맹주자리를 차지해 세계 중심에 서려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고 G1자리를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이해와 요구가 대립하는 상황이다.

남중국해는 남북길이 2900km, 동서길이 950km의 폭을 지닌 동남아시아 해상으로, 5대양을 빼곤 가장 넓은 바다다.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대만 등에 둘러싸여있다.

사실 중국과 베트남·필리핀 등 주변국들은 수십년 전부터 남중국해 영유권 다툼을 벌여왔다.

그러나 주변국들은 힘이 부치자 미국을 끌어 들였다. 때마침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던 미국은 명분이 생겼다.

국가들의 이러한 정치적·군사적 갈등 이면에는 에너지 문제가 깔려 있다. 남중국해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석유 1680억~2200억배럴(1배럴=158.9리터)과 가스 565Tcf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베트남은 남중국해 185개의 크고 작은 유전을 보유하고 있으며,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는 각각 37개, 18개 유전에서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중국 운남성 쿤밍에서 미얀마의 서부 항구도시인 짝퓨까지 2508km(중국 쿤밍~중국·미얀마 국경 1726km+국경~짝퓨 782km)에 이르는 송유관 건설 현장. '송유관·가스관 만리장성'으로도 불린다. 중국은 이 송유관 건설로 미국이 실질 지배하고 있는 말래카해협을 거치지 않고도 원유 및 가스를 직수입하게 됐다. 사진은 2012년말 공사 당시 모습으로, 현재는 흙으로 덮여있다. 사진 대우인터내셔널 제공>

'송유관 만리장성'의 의미 = 중국은 2013년 운남성 쿤밍에서부터 미얀마의 서부 항구도시인 짝퓨까지 '송유관 만리장성'을 건설했다.

2508km(중국 쿤밍~중국·미얀마 국경 1726km+국경~짝퓨 782km)에 이르는 구간 지하에 송유관과 가스관을 완성한 것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미국이 실질 지배하고 있는 말래카해협을 거치지 않고도 원유 및 가스를 직수입하게 됐다.

말래카해협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사이에 있으며 인도양과 남중국해, 태평양을 연결한다. 1일 수송량은 1520만배럴로, 호르무즈해협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이용되는 항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중동에서 원유를 들여오려면 이곳을 거쳐야 할 만큼 주요 관문이다. 특히 세계 석유소비 2위인 중국은 원유수입물량의 80% 이상이 말래카해협을 거쳐 왔다.

중국의 송유관 만리장성 건립은 최악의 상황에 미국이 이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조치다.

나아가 중국은 미국의 앞마당인 중남미에서도 에너지 수송로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올 1월 니카라과 정부는 중국기업과 함께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400억달러(42조원) 규모의 니카라과운하 공사를 연내 착공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중남미와 자원외교를 강화한 이후 그곳에서 원자재를 싹쓸이하다시피 할 정도로 가져오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중국은 운영권도 100년 동안 갖는다. 인근 파나마운하보다 3배 이상 큰 니카라과운하는 2020년 완공을 목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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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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