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 지도를 다시 그린다│17 중국의 중심 허난성(河南省) 정저우(鄭州)

식량 창고에서 물류·전자상거래 중심지로 대변신

2014-09-22 13:42:46 게재

중국 허난성(河南省) 정저우(鄭州)는 지리와 역사적으로 중국의 중심이다. 시안(西安), 뤄양(洛陽) 등과 함께 황허(黃河)가 지나며 문명의 꽃을 피운 도시 중 하나이다. 후한 말 삼국시대 조조가 적은 병력으로 원소의 10만 대군을 격파하고 패권 장악의 기반을 닦은 관도대전(官渡大戰)의 무대이기도 하다.

영웅호걸들이 중원의 패권을 두고 다퉜던 이곳이 최근 꿈틀대고 있다. 인구 1억명의 허난성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세계적인 기업들이 정저우로 몰려들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애플 제품을 주로 위탁 생산하는 타이완 기업 팍스콘이 들어와 20만명의 근로자가 연일 애플 신제품 스마트폰을 찍어내고 있다. 닛산도 1억6000만달러를 투자해 연 18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신공장을 증축했다. 40여개의 금융기관과 글로벌기업도 뛰어들고 있다.


◆농업자원 바탕으로 식품산업 발전 = 허난성은 중국의 식량창고로 불리고 있다. 풍부한 농업자원을 바탕으로 식품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해 지난 2012년 전체 공업 비중의 14.3%를 차지했다.

중국 라면의 3분의 1, 인스턴트 물만두의 50%가 허난성에서 생산된다. 맥도날드, KFC의 주요 반가공품의 원재료 중 90%는 허난성에서 공급하고 있다. 중국 조미료의 45%가 허난성에서 생산된다. 특히 냉동식품은 중국 전체의 72%를 생산 공급하고 밀가루의 37%, 과자류의 31%를 생산하고 있다. 허난성 식품 기업 중 연 매출액 10억위안(한화 약 170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만 36개에 달한다.

허난성은 식품산업이 발전해 있지만 설비의 수준이 낮고 연구개발 능력과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지난 9월 1일 방문한 싼취안식품(三全食品) 공장은 전자회사나 의약품을 생산하는 라인처럼 청결하고 높은 수준의 자동화가 이루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수입한 100여대의 만두가공기계에서 전자제품 찍어내듯 냉동만두를 쏟아냈다. 이 회사 왕카이쉬 총경리는 "국가급 실험실과 연구소를 설립 운영하고 있으며, 허난성 정부의 지원을 통해 설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업대성' 허난성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은 인물이 리커창 국무원 총리이다. 당초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차세대 리더 1순위로 꼽혔던 리 총리는 1998년 43세에 허난성 성장에 발탁됐고, 그 다음해 1인자인 당서기직에 올랐다. 리 총리는 5년동안 중앙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특히 정저우 동쪽지역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2012년 말까지 이 지역에만 총 1500억위안(한화 약 25조원)의 고정자산 투자가 이뤄졌다. 그 결과 허난성 도시화율이 1998년 20.8%에서 2012년 42.6%로 높아졌고, 1인당 GDP는 2000년 5444위안에서 2012년 2만3398위안으로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중부굴기' 정책을 추진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중부굴기'는 2009년 9월 중국 국무원이 중부 내륙을 '내수시장 발전지역'으로 지정하며 내놓은 정책이다. 허난성이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장시(江西) 산시(山西) 안후이(安徽) 등과 함께 '중부굴기' 정책의 대상에 포함되면서 각종 지원이 이루어졌다.


◆대규모 투자, 구매력 상승으로 나타나 = 대규모 투자와 도시화는 허난성의 소득과 구매력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1년 초만해도 허난성에는 명품 등의 사치품 브랜드가 많지 않았고, 2011년말쯤 20개 정도의 브랜드가 들어선 것이 전부였다. 현재 허난성은 명품 매장의 사치품 소비액이 전국 5위 안에 드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데니스백화점에 있는 구찌와 루이비통 매장은 단일점포 기준으로 매장 매출액이 중국 내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커피 소비는 1인당 GDP가 1만5000달러를 넘어설 때 급속히 확산되는데 허난성은 지난 2012년부터 커피 문화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스타벅스가 중국에 들어온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허난성에는 2011년에 들어서야 입점했다. 당시 스타벅스는 정저우에 2개 매장을 만들 계획이었지만 입점 초기에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루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확인하고 1년 만에 7개점을 개설했다.

정성화 코트라 정저우무역관장은 "정저우 시내가 넘쳐나는 차량 때문에 아침, 저녁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 집권 이후 정저우는 물류에 기반한 전자상거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월 10일 정저우의 해외무역 전자상거래 서비스시범구를 방문했다. 인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화물배송, 포장, 통관 등을 자세히 살펴보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중국 정부는 낙후된 허난성을 과거 동남부연해지역과 전혀 다른 방식을 통해 개발하고 있다. 전자상거래와 같은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 발전을 선도하고 촉진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은 정저우가 교통과 물류 중심지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지난해 9월부터 베이징에서 광저우까지 대륙을 종단하는 고속철도가 정저우를 관통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정저우에서 유럽대륙까지 연결되는 정저우-유럽간 국제철도화물 운반열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정저우에서 독일 함부르크까지의 철도 수송은 비용 측면에서 항공기의 20% 수준에 불과하고, 운송 시간은 5주 정도 걸리는 해상운송의 절반까지 단축할 수 있다. 이처럼 정저우는 중국 동서남북 전역을 종횡하는 철도망과 밀도 높은 고속도로를 갖추고 있다.

정저우 공항에는 모두 23개의 화물항공노선이 개통됐고 정저우 항공은 1시간 반의 비행으로 중국 3분의 2의 주요 도시와 5분의 3 인구에 다다를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월 10일 정저우의 해외무역 전자상거래 서비스시범구를 방문했다. 인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화물배송, 포장, 통관 등을 자세히 살펴보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동남부연해지역과 전혀 다른 발전 모델 = 중국 정부는 정저우에 각종 물류기지를 건설하고 온라인 거래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UPS, DHL 등 세계적인 물류기업과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가세했다. 허난성에서 4분의 3 이상의 대기업이 전자무역을 이용하고 있다. 최근 3~5년간 전자무역을 이용하는 기업이 매년 50%씩 늘어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허난성 정저우 보세물류센터에서 중국내 최초로 e무역을 시범 운영(B2C)하고 있다. 지난 2012년 9월 23개 보세물류센터 중 5개 도시(정저우, 항저우, 닝보, 상하이, 충칭)가 e무역 시범지로 선정 됐다. 지난해 7월 정저우 e무역이 국가발전계획위원회와 관세청 비준 하에 시범 운영에 돌입했다.

정저우 보세물류센터는 해외상품 샘플 전시구역, e무역 종합서비스구역, e무역 기업구역, 물류배송구역 등을 갖춘 중국내 유일한 종합 e무역센터이다.

중국 소비자가 해외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이용해 주문한 상품을 보세물류센터에서 직접 출하해 3~4일이면 받을 수 있다. 원스톱 통관으로 통관 절차도 간단해졌다.

지난 9월 2일 방문한 체험센터(해외상품 전시구역)에는 보세물류센터를 통해 수입되는 물건을 전시해 놓고 있는데 화장품과 식품, 그리고 전기밥솥 등 제품 대부분이 한국산이었다. 온라인 시장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화장품이고 최근 옷과 밥솥 주문도 크게 늘고 있다.

허난성 보세물류센터 쉬핑(徐平) 집행이사 겸 총경리는 "한국 기업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중국 소비자들도 하루 500~600명이 체험관을 참관하는 등 반응 역시 뜨겁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중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26%로 가장 높지만 소비재 수출은 3%에 불과해 온라인 시장이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복잡한 통관절차나 각종 검사에 중국 수출은 엄두도 내지 못한 중소기업에 활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과거 해외에서 상품을 주문해 중국 내로 들여올 때 관세가 부과됐으나 보세물류센터에 보관된 상품에는 관세와 증치세(부가세)가 붙지 않고 대신 간단한 행요세(行郵)가 붙는다. 장기간을 요하는 검사나 각종 등록 절차도 생략된다. 온라인을 통해 중국 소비자들의 반응도 떠볼 수 있어 시행착오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규모보다 선점 전략 필요 = 정저우에서 만난 한국인 기업가들은 지역적 특징을 이해하고 현지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성화 코트라 무역관장은 "중국을 문화적으로 접근할 때 비밀을 풀 수 있는 패스워드가 허난성에 모여 있다"고 말했다.

허난성은 지방색이 강하고 배타적인 성향을 띤다. 허난성 사람들은 타지역 사람에게 비교적 배타적이며 때로는 사람을 속인다는 평가를 듣기도 해 친해지는 데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한번 친분을 쌓으면 의리가 매우 강한 특징이 있다.

정저우에서 10여년 동안 미용업을 계속하고 있는 김춘락 총경리는 "서양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중간 단계로 한국 문화, 한류에 대한 호응이 크다"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또한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정저우와 같은 중부 내륙지방에 향후 3~5년 동안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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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허난성 정저우=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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