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 지도를 다시 그린다│18 신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샨시(陝西)성 시안(西安)

"삼성에 의존 말고, 삼성이 일군 한류에 올라타라"

2014-09-29 13:46:58 게재

중국 당(唐)나라 때 설치됐던 신라인의 집단거주지역인 신라방(新羅坊)이 옛 장안(長安) 중심지에 '코리안 타운(韓國城)'으로 다시 세워지고 있다.

기자는 지난 2012년 12월 중국 외교부 초청으로 샨시(陝西)성 시안(西安)을 방문 취재했다. 삼성이 그해 9월 시안시 가오신(高新)기술산업개발구 140만㎡ 부지에 반도체공장 건설공사를 시작하면서 시안이 들썩이고 있었다.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호텔, 식당, 부동산 투자 등을 목적으로 시안을 방문했다. 1000여명 수준이던 교민이 5~6년 동안 5000~6000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2년도 안 돼 교민수가 5000여명으로 늘었다. 몇 개 안되던 한인 식당은 뤼디쓰지청(錄地世紀城) 등에 한식당 밀집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샨시성을 변화시킨 삼성의 속도전 = "2년전 시안에 왔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감개무량합니다." 신재호 삼성(중국)반도체 상무는 시안 삼성전자단지 건설의 산 증인이다. 기공식에서 건물 짓는 데 15개월, 설비를 넣어서 가동하기까지 20개월이 걸렸다.

이러한 성과는 삼성과 시안시 정부의 공동작품이다. 우선 반도체 공장 건설 경험이 풍부한 삼성물산의 역량이 기반이 됐다. 여기에 투자 애로 해소를 위해 발로 뛴 시안시 정부의 역할도 큰 역할을 했다. 시안시는 '삼성프로젝트' 전담반을 구성해 애로사항을 즉시 해결해줬다. 초기에는 가오신(高新)기술산업개발구 주임이 매주 두 번씩 회의에 참석해 독려했다.
 

삼성의 시안 전자단지 건설은 지금까지는 '신의 한수'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중국은 단순히 최대의 IT 생산기지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세계 최대 IT 제품 소비지역으로 부상했다. 시장 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반도체의 48%가 중국에서 소비되고 있다.

현재 시안에는 마이크론 인텔 도시바 화웨이 ZTE(中興) 등 거대기업이 진출해 있다. 시안은 대규모 제조업을 운영하기에 적합한 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고, 우수한 인재 또한 풍부하다. 40여개의 국가급 연구기관, 600여개의 독립 연구기관이 있고, 대학 교육수준도 전국 3위로 재학생만 98만명에 달해 우수인력 확보에 유리하다.

시안공장은 사상 최대의 해외투자(70억달러)를 통해 최첨단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승부수'이다. 시안공장은 현재 세계에서 삼성전자만이 생산하고 있는 3차원 V낸드(3D V-NAND) 플래시메모리 라인이다. 신재호 상무는 "V낸드는 기존의 저장량이 한계에 직면한 낸드플래시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으로, 과거 정보를 저장하는 집들을 1층집(평면)으로 빼곡하게 모아놨던 것과 달리 24층, 32층의 주상복합 아파트처럼 지어 보다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만든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이를 상용화했으며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일하게 상용화에 성공한 업체이다. 서버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대체하며 급성장하고 있는 소비자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다양한 제품에 탑재되고 있다. 성능뿐만 아니라 신뢰성과 안정성 측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삼성은 시안시 가오신(高新)기술산업개발구 140만㎡ 부지에 반도체공장 건설공사 기공식 이후 건물을 짓는 데 15개월, 설비를 넣어서 가동하기까지 20개월이 걸렸다.


◆삼성효과 확산 추세 = 시안공장은 현재 13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60여개 삼성전자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고용효과는 60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재원 주시안총영사는 "시안시 정부가 '삼성프로젝트' 전담반을 구성해 함께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기업문화, 관리기법 등 많은 것을 배워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게 됐다"고 평가했다.

샨시성은 안휘성으로 가려던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시안에 유치했다. 삼성화재도 당초보다 2~3년 앞당겨 시안에 지점을 개설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이어 R&D 센터, 삼성SDI, 삼성화재 등이 속속 진출하면서 시안에 삼성타운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에는 시안시뿐만 아니라 주변 도시에도 협력업체가 들어서고 있다. 주시안총영사관 김용덕 선임연구원은 "반도체 폐기물 처리공장, 2차전지 및 반도체 장비 제작업체 등이 시안에서 1시간 거리에 입주하는 등 삼성효과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현대자동차 4공장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샨시성 정부는 기아자동차 4공장 유치 의사도 밝히는 등 집념을 드러내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경제성장과 고용유발효과가 큰 산업인 만큼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전 총영사에 따르면 한식당 밀집지역이 현지 방송에 소개되면서 중국 소비자들이 대거 몰려드는 등 한류 바람도 거세게 일고 있다.
 

중국 샨시성 시안시 두취(杜曲)진에 설치된 '광복군 제2지대 표지석'의 모습.

◆서북 5성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상 = 코트라 황재원 시안무역관장은 "한류 붐에 올라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관장은 다롄, 칭다오, 샤먼, 베이징에 이어 시안이 다섯 번째 근무지이다. 중국 권역별 시장의 특징을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중국통'으로 평가받고 있다.

황 관장은 "동해 연해지역에 비해 기반은 취약하지만 샨시성 공무원들이 한국 기업과 함께하겠다는 열의가 대단하다"고 전했다. 특히 "우리 기업이 삼성과 관련된 사업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삼성이 만든 한류 붐에 편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은 전 세계 다국적 기업의 전장이다. 자본력, 기술력, 브랜드 경쟁력 등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 기업이 경쟁하기에는 벅찬 시장이다. 서북부 지역은 청두, 충칭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공백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들 지역은 아직까지 시장을 선도하는 리딩 브랜드가 많지 않다. 샨시성, 간수정, 닝샤후이족자치구 등 서북3성이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다. 여기에 칭하이성과 신장위구르족자치구를 포함한 서북5성은 한국 기업에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곳이 시안이다. 중국 정부는 시안을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신(新)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만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도로·철도를 건설해 무역과 화폐가 유통되는 유라시아 경제벨트를 만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시안을 비롯한 서북3성에 거점을 마련할 경우 유라시아(유럽+아시아) 공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유라시아는 세계 육지 면적의 36%를 차지하고, 세계 인구의 71%가 살고 있는 거대 경제권이다.

황 관장은 "휴렛패커드(HP)나 델(Dell) 등이 쓰촨성의 충칭이나 청두 등에 생산기지를 두고 제품을 EU에 판매하고 있다"며 "서부지역이 이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시장을 공략하는 거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EU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기업은 중국의 동부연해지방에 공장을 세울게 아니라 서부지역에 자리를 잡는 것이 유리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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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안 = 글·사진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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