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산시상인과 '애늙은이' 한국기업

2014-09-29 13:49:28 게재
중국의 산시(山西)성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는 '산시상인'이다.

산시상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요즘에도 중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진상(晋商)이라고 불리는 산시상인은 명(明)·청(淸) 시대에 중국 상업계를 장악했다. 명나라 때는 독특한 장사수완으로 돈을 벌었고, 청나라 때는 중국 최고의 부자가 돼 금융업까지 좌지우지했다.

진상은 풍부한 건축유산(建築遺産)을 남겼는데 영화 '홍등'을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7일 산시성의 대표적인 저택 상가장원(常家庄園)을 방문했다. 많은 돈을 번 상(常)씨 가문은 3대에 거쳐 100여년 동안 커다란 저택(大院)을 만들어 일가가 함께 살았다. 상가장원은 청나라 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방만 5000개가 넘는다. 베이징에 자금성이 있다면 산시성에는 상인들이 세운 민간 자금성이 즐비했다.

동행한 신시성 소재 대학 탕광위에(唐光月) 교수는 "산시상인들이 중국의 상권을 장악하게 된 배경은 지리적으로 산이 많고 평야가 적고 땅이 척박해 생활이 빈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晋)나라와 당나라가 발흥한 지리적 요충지라는 점도 중요한 변수가 됐다.

토지가 척박하니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먼 곳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석탄 철 대추 등 경제성 있는 지역특산품을 갖고 객지로 나가 장사를 했다. 산시상인은 만리를 떠돌며 행상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참새가 날아다닐 수 있는 지역이면 어디든지 산시상인이 있었다고 한다.

산시상인은 명나라 초기 양곡과 소금의 유통에서 많은 부를 축적했다. 청나라 후기 산시상인들은 금융업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였다. 고객들이 원하는 만큼 지정된 날짜에 송금해주는 정확함과 신뢰를 높이 평가받아 정부의 공금 송금까지 담당할 정도였다. 산시상인의 덕목은 개척정신과 신용이었다.

최근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한국은 극도의 위기감에 빠져 있다. 시가총액에서 아시아 최고 IT기업으로 군림했던 삼성전자는 물론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를 모두 제쳤다.

상씨 집안은 창문 모양을 깨진 얼음과 같이 만들어 가족들에게 교훈으로 삼게 했다. 얼음이 어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점을 자손들에게 주지시키려 했다. 요즘 IT생태계는 성과에 만족하고 안주하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곳이 돼 버렸다.

알리바바의 굴기를 두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규모에서 성공 비결을 찾는 경우가 있다. 중국 IT 인구가 많고 환경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안일한 생각이다. 세계무대에서 잘 나가는 한국 기업은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도전 정신을 갖고 시장을 개척해 나갔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는가?

상씨 집안은 저택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노자 도덕경에 있는 知者不言 言者不知(지자불언 언자부지)라는 가훈을 돌에 새겨 두었다. '진정 아는 사람은 떠들어 대지 않고, 떠들어 대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실천을 강조했다.

상황과 조건을 탓하며 과감한 도전을 멀리하는 '애늙은이'가 된 한국기업이 있다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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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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