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시험구에 등록한 은행 '한국은 없다'

2014-10-28 13:05:09 게재

"시행세칙 없다"며 뒷짐지고 수수방관 … 86개 금융기관 이미 등록 마쳐

상하이자유무역시험구(시험구) 설립 1주년이 지났지만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이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 기업은 무역·물류 회사를 중심으로 45개사가 시험구에 등록했지만 은행은 한 곳도 없는 상황이다. 중국의 2차 개혁개방에 합류할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정부는 10월 27일부터 외국인도 상하이 A시장 주식을 살 수 있도록 개방하는 등 금융시장 개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 23일에 상하이자유무역시험구를 둘러보고 '창신'(혁신) 중심지로서의 역할 제고를 당부했다.

상하이자유무역구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9월 15일 현재 신규 등록 기업이 1만2266개사에 이르고 외자기업도 1677개를 돌파했다.

중국은행을 필두로 공상은행, 농업은행, 건설은행 등 15개 주요 중국계 은행들이 분행 형태로, 4개는 지행 행태로 진출했다. 홍콩계 은행과 미국, 유럽, 일본 등 외국 은행들도 적지 않게 진출했다. 특히 86개 금융 기관 중 외자은행이 23개나 되지만 한국 은행은 단 한 곳도 등록한 곳이 없다. 일본 은행은 3개가 등록했으며 세계적인 종합금융그룹인 HSBC그룹의 HSBC은행도 영업을 개시했다.

주상하이총영사관 이강국 부총영사는 "우리의 최대 교역, 투자 대상 국가인 중국의 신정책을 직접 체험하고 새로운 제도 이점을 활용해 나간다는 차원에서 적극적인 관심과 진출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최소한 한 개 은행이라도 진출해 시험구의 핵심인 금융 정책 변화를 따라잡아 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계 은행들은 단기적으로는 영업이익이 많이 나지 않지만 중국 금융기관의 정책본부는 베이징에, 실제 집행본부는 상하이에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과 중국 금융시장 실무 학습과 함께 시험구에서 다양한 금융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측면을 고려해 진출하고 있다.

한국 금융기관이 진출에 소극적인 이유는 중국 정부가 시장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우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정책을 실시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금융뿐만 아니라 서비스업, 통관 등 모든 개방 산업과 시스템 도입을 위한 시행세칙이 미비하다는 점이 애로 사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100% 독자 외자병원 설립이 가능해짐에 따라 한국 성형외과 병원 설립과 문의가 많았지만 등록자본금이나 설립요건을 충족시켜도 실제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세칙이 계속 발표되고 있다. 지난해 9월 29일 현판식 후 개최된 주요부서 국장급 브리핑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한 정부 당국자는 "세부적인 내용이 다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 발표된 시험구 헌법에 해당하는 '총체방안' 발표 이후 분야별로 시행세칙 제정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 지도부의 각별한 관심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5월 23일에 시험구를 둘러보고 '창신'(혁신) 중심지로서의 역할 제고를 당부했다. 리커창 총리는 9월 18일 방문해 시험구는 우대를 주는 곳이 아니라 혁신과 개혁의 장이며, 이곳에서 내자(內資) 기업과 외자(外資) 기업간의 구별은 의미가 없음을 강조하였다.

시 주석과 리 총리가 시험구를 방문한 것 자체가 제2의 개혁개방의 시험무대로서 중앙 정부의 관심과 지지를 보여준 것이다. 중국 정부는 정책은 반드시 실행에 옮긴다(說到做到)는 관례를 지켜왔다. 주중한국대사관 박은하 경제공사도 "다소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최고 지도층의 관심 하에 추진되는 시험구는 향후 중국의 정책 방향으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험구를 우대 혜택의 관점에서만 보면 관망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우대 혜택보다 중국 31개 성시에 개방의 범위와 개선 정책을 적용하려는 목적이 크다. 시험구에서 실시된 정책이 벌써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300만달러 외화 예금 이자율에 대해서 시장자율 시스템을 구축해 지난 3월 시험구에서 실시한 뒤 6월 상하이로 확대했다.

시험구에서 개혁 정책을 체험한 기업이나 금융기관은 향후 전 중국의 개혁 방향을 선행 학습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단기간의 이익 때문에 관망하거나 방치할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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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베이징=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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