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구조적 원인 아직도 안 밝혀졌다
"검찰·감사원 조사 겉핥기" … 청와대·국정원 등 '성역' 건드리지도 못해
세월호 참사 1년 동안 국회의 국정조사와 해양안전심판원, 검찰, 감사원 등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많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는 뜻이다.
박주민(42) 변호사는 지난 7일 대한변협 토론회에서 여전히 남은 세월호 진상규명 과제들을 정리해 발표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참사의 원인은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로 집중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세터는 정식 보고라인이 아닌 사고 당일 오전 9시 19분쯤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119상황실에 최초로 신고된 오전 8시 52분부터 27분이나 지난 9시 20분에야 해경상황실로 전화를 걸어 사고 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청와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사고발생 후 오전 10시에 서면으로 첫 보고를 받았다. 그 이후 8시간 동안 대면이 아닌 서면·유선보고만 이뤄졌다. 국회 기관보고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김규현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24번의 보고를 하면서 단 한번도 대통령을 대면하지 않고 그 당시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대통령은 10시 30분 해경청장에게 전화해 "해경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현장 인원구종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지시를 내린 이후 오후 5시 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할 때까지 추가 지시도, 회의 소집도 하지 않았다.
구조 골든타임에 사라진 대통령의 7시간은 중대본을 방문해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데 왜 발견이 안 되나"는 엉뚱한 질문으로 의혹이 부풀려졌다.
유병언 일가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더불어 청해진이 아닌 국정원이 세월호 실소유주라는 것도 논란거리다.
세월호에서 건져낸 노트북에서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파일이 발견됐다. 그 내용이 실제 소유주가 세월호에 대한 점검을 하고 지적을 한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에는 제주와 인천 국정원지부에 사고가 나면 먼저 보고하도록 돼 있다. 왜 선원이 국정원에 직접 보고했는지는 제대로 해명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빚은 구조적 원인도 밝혀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전봇대 뽑기'는 박근혜 정부에서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구호로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참사 하루 전날 선장의 휴식시간에 1등 항해사가 조종할 수 있게 하는 시행령(개정)을 공포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노후선박 사용연한은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당시 중대본의 실무를 담당하는 안전행정부 안전관리본부에는 재난 전문가를 찾기 어려웠다. 본부 소속 134명 공무원 중 재난안전 분야와 무관한 사람이 55명으로 재난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 14곳 가운데 해수부 출신이 기관장인 곳이 11곳이었다.
이처럼 한국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의 고위직은 해양수산부, 해경출신이 장악한 '해피아'의 그늘아래 있었다. 이러한 유착은 선박 안전과 관련한 감독과 규제를 무력화시켜 세월호 참사 2달전에 두차례에 실시한 검사에서 물에 닿으면 저절로 펼쳐지는 구명벌(구명정)의 오작동 가능성을 걸러내지 못했다. 결국 세월호 침몰 당시 구명벌 46척 중 제대로 작동한 것은 단 한 개뿐이었다.
이러한 부실검사는 세월호만이 아니라 일상화된 구조적인 문제다. 최근 5년간 한국선급에서 1만255척의 검사를 받았는데 100% 합격했다.
검찰수사와 감사원 감사가 있었지만 실무자만 일부 처벌받았을 뿐 고위 간부들의 유착 구조는 밝혀지지 않았다.
해양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수난구호법'이 2012년 개정되면서 해경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해난구조업무를 민간에 위탁했다.
참사 현장에 출동한 123정 김경일 정장은 재판에서 해경에서 일한 34년간 침몰사고 훈련을 받은 적 없다고 밝혀 체계적인 훈련이 부족했다. 해양에서 발생하는 각종 재난을 책임지고 수습해야 할 해경이 민영화라는 이유로 점차 재난대응력을 잃어갔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정확한 사고발생 시점도 불명확하다.
세월호 참사는 4월 16일 오전 8시 48분쯤 맹골수도 해역에서 급변침으로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사고발생시각이 오전 8시 정각으로 기록된 해운조합 해양사고보고서를 비롯해 8시 10분 단원고 상황판, 8시 25분 진도군청, 8시 30분 국립해양조사원 기록 등으로 사고발생시각이 오전 8시 48분보다 일찍 사고가 시작됐거나 사고 징후가 나타났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해경 등 정부기관의 부실대응도 밝혀야 할 과제다. 해경이 선장과 선원을 먼저 구조한 이유, 현장에 도착한 해경 123정이 퇴선명령을 하지않은 이유와 1시간여 동안 선내에 진입하지 않은 이유, 해경 지휘라인의 보고·지시 사항 등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의 잘못된 수사와 은폐시도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검·경 합동수사본부에 40여명의 해경을 투입해 논란이 일었는데도 한 달 넘게 합수부가 유지된 이유가 의문이다.
박 변호사는 "현재까지의 진행 과정을 볼 때 합동수사본부나 감사원 또한 청와대와 같은 최고 권력층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의지도, 능력도, 책임을 물을 의지도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성역 없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결국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나 이를 위해 설립되어야 할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도 정상적으로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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