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리포트│투표, 꼭 집 근처에서만 해야 하나

어디서든 가능한 전자투표, 11년째 '창고에'

2017-04-06 11:15:18 게재

노무현정부때 로드맵 만들고 시스템 구축

젊은층 투표율 상승 우려한 보수진영 반대

사전투표로 검증 … 전국 확대 언제든 가능

언제 어디서든 투표할 수 있는 전자투표시스템이 11년째 잠을 자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언제든 법만 고쳐주면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왜 안 될까.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해킹 등 '보안문제', 속내는 '투표율 변화'다.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05년 내놓은 '전자투표 로드맵'에 따르면 2008년 총선부터는 전국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투표소를 선택해 투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다.

결국엔 '재택 선거' = 중앙선관위가 당시 내놓은 '전자투표 사업추진 계획'은 2005년중 전자투표 시스템 개발을 끝내고 2006년부터 터치스크린 방식 투표방식을 병행하는 1단계 적용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공직선거엔 투표소를 제한해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정당경선, 주민투표, 농·수·축협 조합장 등 위탁선거와 학생회장, 국·공립대 총장, 노조 임원 등 민간선거에 우선 적용키로 했다.

2단계인 2007년엔 선거구 내 투표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유권자의 선택권을 넓히면서 공직선거 중 재·보궐선거를 적용대상에 추가하기로 했다. 위탁선거에 한해 인터넷투표 시범사업도 병행할 예정이었다.

2008년, 3단계에서는 총선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전국 어느 곳에서나 유권자가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로 했다. 인터넷투표대상에 거소투표와 해외부재자투표를 포함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분주해진 대선 준비│ 제19대 대통령선거를 35일 앞둔 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 직원들이 투표관리용품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집에서 투표를 할 수 있는 전자투표의 완성 시점은 2012년으로 잡혔다. 유권자는 인터넷투표, 종이투표,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를 병행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보수 정치권의 제동 = 이 로드맵이 만들어진 이후 중앙선관위는 여야 국회의원, 정부부처 대표, 교수 등으로 구성된 전자선거추진협의회를 만들었다. 열린 정부, 전자 정부를 내세운 노무현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초반엔 일정대로 진행됐다. 2006년에 터치스크린 시범 투표기 1300대 개발사업이 완료됐고 마을회관, 노인정을 순회하는 대국민 홍보전도 이뤄졌다.

터치스크린 투표시스템은 투표기록 프린터를 포함한 터치스크린 전자투표기와 선거인명부 확인 전산시스템, 전자개표시스템 및 전자검표시스템 등이다. 선거인명부의 조회·확인, 투표권 카드 발급, 전자투표, 전자개표 및 검표로 이어지는 전자장비와 운영체계다.

이 시범투표기는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 지방선거 경선 등에 활용됐고 투표참여자의 90%내외가 편리성과 투표율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표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8년에 있을 총선 투표기의 50%인 2만대를 2007년에 사전 구축하기 위해 627억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예산확보에 실패, 좌초됐다. 여당은 해킹 등 보안문제, 과도한 예산, 계수 등에 대한 불신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속내는 '젊은층의 투표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였다는 지적이 많다.

사전투표로 검증 완료 = 그러나 '전자투표'가 7년만에 빛을 봤다. 세계최초로 전국 어디서든 투표할 수 있는 '사전선거제'를 도입한 것이다. 2013년에 시작해 2014년 선거부터 적용된 사전선거는 재·보궐선거뿐만 아니라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에 이어 올해 처음으로 대선에서도 실시된다.

통합선거인명부를 만들어 전국 어느 투표소에서나 신분증만 가지고 가면 투표할 수 있는 체계다. 지방선거와 총선 사전투표에서 각각 11~12%의 투표율이 나왔고 이중 4~6%p가 사전투표제가 없었다면 투표하기 어려운 유권자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여기엔 본투표 전 이틀간 추가적인 투표일을 준 효과와 함께 '전국 어느 투표소에든 할 수 있는' 전자투표의 효과도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본투표에서도 사전투표와 같이 '정해진 투표소'가 아닌 '원하는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한다면 투표 접근성이 크게 개선돼 투표율 상승효과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장애인 등이 투표하기 편한 투표소를 골라서 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전자투표가 이미 각종 위탁선거, 민간선거에서 일반화돼 있고 사전투표로 보안 등 우려되는 문제도 검증된 만큼 본 투표에도 도입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법만 개정한다면 언제든 도입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정치적 유불리에 얽매이지 말고 유권자 입장에서 투표접근성을 고려해 정치권과 국민적 합의를 봐야 할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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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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