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는 '미투' … 칼 빼든 경찰

2018-02-27 10:26:08 게재

공소시효 등 따져 수십여건 내사

3건 수사착수, 1건 곧 영장 신청

성폭력전담 동원 사법처리 주력

경찰이 성폭력 수사 '칼날'을 바짝 세우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탓이다. 최근 한달새 유명인들의 과거 성폭력 전모가 거의 매일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물론 학계와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멀쩡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경찰이 전국의 성폭력 전담팀을 모두 가동시킬 채비를 서두르는 이유다.

경찰이 현재 내사 중인 유명인만 어림잡아 20여명에 달한다. 건건이 공소시효 완료여부, 친고죄 시점 등을 따지고 있다. 이 가운데 범행 정도가 심한 일부 인사는 26일 오후 전격 체포되기도 했다. 곪아 터진 상처에 이제 막 칼을 댔다는 의미다.

앞서 이철성 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 위주로 현재 19명을 들여다보고 있다"며 "처음에 9명이었다가 인원이 늘었고 정식 수사 착수가 3건, 조만간 영장을 검토하는 사안이 1건"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고소·고발이 들어온 사안은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성폭력 피해 폭로 글, 언론보도, 관련 제보 등을 살펴본 뒤 공소시효 완료 여부, 법 개정에 따른 친고죄 해당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지금도 미투관련 폭로와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의 미투사건 내사 대상자는 '26일 오전 10시 현재 19명'을 훨씬 웃돌 수 밖에 없다. 봇물 터지듯 미투운동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성폭력 수사의 칼날을 벼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 청장은 "실질적으로 처벌 가능성이 다소 떨어지는 사안이라도 추후 이같은 행위 발생을 제어한다는 측면 등을 고려해 피해자 진술을 들어본 뒤 사법처리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의자가 어떤 형벌을 받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만 성추행(강제추행)과 성폭력 경우 공소시효는 10년이다. 단, 피해자가 사건 당시 미성년자라면 성년에 달하는 날로부터 시효가 시작된다. 유전자(DNA) 등 성범죄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공소시효는 10년 더 연장된다.

또 2013년 6월 19일부터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이 폐지된 점을 고려 2013년 6월 18일까지 발생한 범죄는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한다.

◆미투사건 수사 상황은 = 우선 26일 오후 미성년자 단원들을 성폭행한 의혹을 받는 경남 김해 극단 번작이 대표가 미투운동 발생 이후 처음으로 경찰에 체포됐다. 경남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는 이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번작이 대표 조모(50)씨를 체포했다.

조씨는 2007~2012년 당시 16세·18세이던 여자 단원 2명을 극단 사무실과 차량 등지에서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주 피해자들로부터 신빙성 있는 진술을 확보한 데다 피해자 진술을 뒷받침할 주변 인물들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명 배우인 조민기씨 역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충북의 한 대학 조교수로 있으면서 제자들을 수차례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조씨는 곧 경찰 조사를 받을 처지다. 충북지방경찰청은 조씨의 제자와 졸업생 등 5명과 접촉해 피해 사실을 진술받는 등 내사 단계를 지나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또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도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수사를 받을 처지다. 경찰은 2014년 지역의 한 여성활동가 A씨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김 국장의 강제추행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최근 내사에 착수했다.

앞서 A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자신이 2014년 김 국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그가 자신에게 사과한 뒤에도 지인들에게 성추행 행위가 합의로 이뤄진 양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녀 추가 피해를 줬다고 밝혔다.

이밖에 고은(83)시인, 이윤택(66)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배우 겸 교수인 한명구(58)씨, 배우 조재현(52)씨, 배우 최일화(59)씨, 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67)씨, 연출가 오태석(78)씨 등이 미투 폭로에 뒤늦게 성추행 사실을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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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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