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와 교육의 만남│한국교육개발원·내일신문 공동 기획
'산후조리부터 대학교육까지' 돌봄·교육 무상지원
강원도 화천군 출산율, 전국 지자체 중 5번째로 높아 … "다리 하나 놓는 것보다 교육 투자가 훨씬 중요"
2010년대 중반 79곳이었던 소멸 위험 지역이 올해 118곳으로 늘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에 이른다. 지역 인구이탈의 대표적인 원인은 교육이다. 인구와 교육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교육의 도시 독점이 지역소멸의 배경이 되고 있다.
교육은 중대한 사회기반시설이고 지역 공동체를 떠받치는 핵심이다. 교육개혁은 인구 대응의 선행조건으로 꼽힌다. 교육부가 대학 지원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라이즈)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교육을 살리지 못하면 지역이 살아날 수가 없다. 인구 대응의 첫발은 교육 혁신과 맞물려야 한다. 학교가 살아야 지역도 재건될 수 있다. 14일 돌봄·교육 지원으로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에 맞서는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을 찾았다.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산천어축제로 잘 알려진 강원도 화천군 진입로는 좁고 구불구불했다. 14일 춘천과 화천을 잇는 지방도 왕복 2차로를 달려 화천대교를 넘자 청소년 궁궐과 같은 화천 돌봄센터 건설 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맞벌이 부부의 고민 중 하나인 방과 후 돌봄을 위해 화천군이 223억원을 투자해 화천초등학교에 만든 복합커뮤니티센터이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도로를 넓히고 다리 하나 놓는 것보다 교육에 투자하는 게 더 낫다"며 "기초지자체에서 적지 않는 금액이지만 대형 SOC 사업비나 행사성 경비를 줄여 예산을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천군의 올해 전체 예산 4200억원 중 교육복지 관련 예산으로 250억원 넘게 투입된다. 최 군수는 2015년 전국 기초지자체 중 처음으로 교육복지과를 신설하고 2017년에는 '아이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2021년 아동 1인당 지원 예산은 83만1000원으로 서울 중구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많다. 돌봄센터, 공동육아 나눔터, 장난감 은행 등 아이들을 위해 투입한 예산이다.
◆초·중등생 방과 후 교육 완비 = 초등학생의 온종일 돌봄을 책임지는 복합커뮤니티센터는 화천초교 내 수영장 부지에 지상 4층, 연면적 5135㎡ 규모이다. 9월부터 운영되는 센터에는 지하 1층 공연장, 1층 키즈카페, 2∼3층 초등 돌봄교실과 실내체육관, 공동돌봄센터(유아), 장난감 대여소 등이 들어선다. 4층에는 청소년을 위한 스터디카페와 글로벌교육실이 들어설 예정이다.
초등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교 안에 있는 돌봄센터로 이동하고, 귀가 시에는 스마트폰으로 안심셔틀을 호출해서 집으로 귀가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등교부터 하교까지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며 아이들의 이동동선은 학부모에게 문자메시지로 발송된다.
돌봄센터의 강사와 돌봄인력으로는 지역 경력단절 여성이 채용돼 스포츠, 창의교육,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최근 양구 강릉 등 주변 지역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화천 복합커뮤니티센터 견학이 잇따르고 있다.
최수명 화천군 기획감사실장은 "이번 사업은 완전한 종일 돌봄이 가능한 것으로 맞벌이 부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초등 저학년 자녀의 보육문제 등에 대한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화천초교 운동장에서는 방과 후 체육활동이, 교실에서는 돌봄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화천초교는 오후 12시 30분부터 5시까지 방과 후 돌봄 프로그램을 개설해 독서 미술 컴퓨터 로봇 등 10여가지 체험학습을 진행한다.
심은우 어린이는 로봇과학 시간에 만든 곤충로봇 맨티스(사마귀)를 만들어 선보였다. 돌봄 전담사는 "초등돌봄교실에서는 1, 2학년 학생들의 방과후 활동 참여와 자유선택활동 그리고 급·간식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이후 귀가시간까지 돌봄교실 운영이 학부모의 사회활동 참여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화천군은 아이들이 학교를 오갈 때 '초등학생 전용 안심셔틀'을 운영한다. 안심셔틀은 아이들을 학교, 도서관 등 자주 이용하는 시설까지 무료로 데려다준다. 앱으로 호출하면 차량이 온다. 지난해 하루 평균 150여명이 이용한다. 안심셔틀이 생기기 전에는 부모 차를 타고 가거나 버스 시간에 맞춰야 했지만 이제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호출하면 10분 안에 버스가 도착한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아이들에게 필요한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과 체육활동이 다양하게 갖춰져 만족도를 높인다. 어린이도서관에서는 10여명의 유아들이 키즈영어 아카데미에 참여해 보조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영어수업을 받는다.
화천평생학습센터에 개설된 키즈문화 아카데미에는 힐링아트 창의가베 발레 요리 놀이체육 과정이 진행된다. 키즈영어 아카데미, 초·중등 영어 아카데미, 중국어 아카데미 등 수준 높은 외국어 교육 시스템도 운영 중이다.
◆공공학습관 운영에 대학생 무상교육 = 화천학습관에서 만난 고교 1학년 박영욱(17)군은 의대 진학을 꿈꾼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화천학습관으로 가서 전문 강사진의 수업을 듣고 입시 전문가의 지도를 받는다. 박군은 "교과 과정을 따라잡는 것뿐만 아니라 진로 진학 상담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화천군은 2009년부터 화천학습관을 운영해 중3부터 고3까지 한해 66명을 선발해 집중지도하고 있다. 서울 유명강사 출신 교사가 공부와 진학을 지도한다. 소그룹 학습이나 자습을 위한 공간도 마련됐다. 졸업생 221명 중 154명이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 또는 해외 유명 대학에 진학했다. 지난해엔 첫 의대생을 배출했다.
화천학습관에서 공부하면서 원하는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룬 박서정(23)씨는 서울대 재학 중 학비 걱정이 없었다. 화천군이 대학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월세까지 지원받았다.
화천군은 인재육성재단을 설립해 부모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대학생 자녀에게 등록금 전액은 물론 월세(학기당 최대 250만원)까지 파격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세계 100대 대학에 진학하면 유학비까지 지원한다. 부모가 3년 이상 화천에 거주 중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지원액도 한도가 없다. 매년 소요되는 30억원 안팎의 장학금은 인재육성재단 출연금과 주민이 낸 기부금 등으로 마련한다.
화천으로 귀농한 박기윤씨는 "자녀 교육비 중 가장 큰 부담은 대학 학비와 생활비인데 화천군의 지원이 없었다면 교육을 엄두도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박씨의 딸은 3년 동안 전액 장학금에 월세까지 지원받았다. 중학생인 둘째 딸의 대학 진학도 걱정 없다.
인구 2만3000명에 불과한 화천군은 주민보다 군인이 많은 접경지역이다. 각종 규제에 산업기반이 없어 일자리도 부족한 소멸 위기 지역이지만 합계출산율은 전국 지자체 중 5번째인 1.4명을 기록했다.
◆합계 출산율 전국 평균의 2배 = 이는 인접한 춘천(0.9), 원주(0.94)를 웃돌고, 전국 평균(0.78)의 2배에 육박한다. 평균 출산연령(30.3세)은 전국에서 가장 낮다. 기적 같은 화천군의 출산율은 '함께 키우는 공동체 보육'이 핵심 비결이다.
화천에 정착해 최근 첫째 아이를 출산한 민혜림(36)씨는 임신과 출산부터 대도시 민간시설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 민씨는 "출산 직후 3일 동안 춘천의 산후조리원을 이용했는데 화천의 공공 산후조리원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화천군이 개원한 공공 산후조리원은 이용자 만족도가 98%에 달한다. 100명 넘게 예약이 몰리면서 연말까지 빈자리가 없다. 퇴원 후에도 산모 가사 지원을 신청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세탁 취사 등 가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리 하나 놓는 것보다 미래 인재에 투자하는 게 더 낫다'는 화천군의 실험은 기적 같은 출산율로 나타나고 있다. 교육복지에 대한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지역소멸 위기를 지역발전의 기회로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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