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에너지 물 순환
바닷물 온도 상승으로 강해지는 '가을 태풍'
온난화 심화할수록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커져 … 최대 강수량 증가, 미래형 재난 대응 정책으로 전환
지구 해수면 평균 온도 상승이 심상치 않다. 4일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국립환경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7월 해수면 온도는 NOAA의 174년 기록 중 가장 높은 수치(+0.99℃)였다.
세계기상기구(WMO) 역시 지난 7월 해수면 평균 온도가 20.95℃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고 밝힌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4개월 연속 전세계 해수면 온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1일 예상욱 한양대학교 해양융합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인근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은 상황"이라며 "열대 대서양과 북대서양 전체 온도 상승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바닥의 온도가 높으면 대기가 열을 받으면서 팽창하고 파동을 일으킨다"며 "이 파동이 동아시아 지역까지 전파되면서 우리나라의 고기압성 순환이 강해지고 해수 온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와 해수는 상호 작용을 한다. 통상 육지는 7~8월에 온도가 가장 높다. 해수 온도는 비열(어떤 물질 1g의 온도를 1℃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이 큰 바닷물 특성상 때문에 8~9월에 더 뜨겁다. 바닷물의 비열은 대기보다 약 4배 높다. 열용량(어떤 물질의 온도를 1℃ 높이는 데 필요한 열량) 역시 바닷물이 대기보다 약 1000배 크다.
'탄소저장고' 바다가 지구온난화의 완충 지대로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종합보고서(AR6)에 따르면 해양 온난화가 기후시스템 온난화의 91%를 차지한다(신뢰도 높음).
◆수증기 등 온난화로 에너지원 풍부 = 이처럼 지구 온난화로 급격히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수증기가 증가하고 대기가 불안정해져 태풍 발생 빈도가 많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1일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목욕탕의 뜨거운 탕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다가 응결되면서 잠열(물체에 있어서 온도를 바꾸지 않고 상(相) 변화만으로 소비되는 열)이 방출되는 것처럼 태풍은 잠열을 근본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며 "이런 특성 때문에 수증기가 많아야 태풍이 잘 발달할 수 있고 결국 해수면 온도와 태풍 강도는 비례 관계에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태풍은 바다로부터 증발한 수증기를 에너지원 삼아 고위도로 이동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지구 남북 간(저위도와 고위도 사이)의 에너지 불균형을 해소하는 역할도 한다.
물론 수증기가 상층을 덮으면 강한 고기압이 생기면서 에너지를 억제해 태풍 발생 자체가 안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쌓인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할 때다. 억눌려 있던 에너지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가 한 번에 터지게 되면 더 큰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게 된다.
IPCC의 AR6에 따르면, 전지구적으로 열대저기압(Tropical Cyclone, TC)의 발생빈도는 감소하지만 강도는 강해졌다. 덩달아 열대저기압으로 인한 평균 강수량은 물론 최대 강수량도 증가했다. 이는 1℃ 상승할 때마다 7%씩 늘어나는 해양의 평균 수증기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IPCC는 과거 4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강한 열대저기압(3~5등급)의 발생 비율이 증가했고, 북태평양 서쪽 해상 열대 저기압의 세력이 최고에 달하는 위도가 북상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지속시간 증가 등 태풍 특성 달라져 = 우리나라에 피해를 주는 태풍은 대부분 8~9월에 발생한다. 국가태풍센터의 '태풍백서(1904~2010)'에 따르면 과거 107년 동안 우리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태풍 중 9~10월에 91개가 발생했다. 이는 전체 327개의 27.8% 수준으로, 태풍 4개 중 1개가 가을에 한국에 영향을 준 셈이다.
가을 태풍의 위력이 큰 이유는 높은 해수온도와 북태평양 고기압의 약화 등을 들 수 있다. 뜨거운 바다로부터 더욱 많은 수증기를 공급받은 대기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태풍을 만들어 내기 쉬운 조건이다. 여기에 북태평양 고기압의 약화로 한반도 대기가 불안정해지면서 태풍 또한 우리나라 쪽으로 보다 쉽게 상륙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태풍은 북서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의 특성도 달라지는 추세다. 한국환경연구원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적응 및 감축 중장기 연구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중위도로 북상하는 태풍의 지속시간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한다. 이는 아열대에서 생성된 태풍이 중위도로 북상할 때 그 강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중위도 해안지역으로 상륙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또한 태풍과 동반한 강수량이 최근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태풍으로 인한 폭풍해일, 강풍 피해뿐만 아니라 호우로 인한 피해도 늘어난다는 의미다.
행정안전부의 '2021년 재해연보'에 따르면 2012~2021년 태풍과 호우로 인한 피해액은 전체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 규모의 92.8%에 달한다. 이러한 피해 규모는 앞으로 더 커질 수도 있다. 태풍의 강도 강화에 따른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철저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적응 및 감축 중장기 연구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태풍 진로 밀도는 1979~2014년 대비 2015~2100년 최대 85%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탄소 시나리오 SSP5-8.5).
또한 태풍 활동과 연관된 태풍 진로 밀도 함수의 미래 변화를 분석한 결과, 북위 25° 이하의 저위도 지역에서 태풍 활동은 현저히 감소하지만 그 이상의 중위도 지역의 활동은 증가했다. 이러한 경향은 온실가스 저배출 시나리오 보다 고배출 시나리오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이는 온난화가 심화될수록 우리나라가 태풍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더 커 피해가 증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SSP 배출 시나리오(공통사회경제경로)를 기반으로 한 5개 지역기후모델의 동아시아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다. △2031~2060년 평균 △2071~2100년 평균 △1985~2014년 평균의 발생밀도 차이를 분석해 미래 태풍 발생 변화를 확인했다.
용어 설명
■태풍 = 열대저기압의 한 종류인 태풍은 전향력 효과가 미미한 남북위 5˚이내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열대저기압 중 중심 부근의 최대풍속이 33㎧ 이상인 것을 태풍(TY), 25~32㎧인 것을 강한 열대폭풍(STS), 17~24㎧인 것을 열대폭풍(TS), 그리고 17㎧ 미만인 것을 열대저압부(TD)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최대풍속이 17㎧ 이상인 열대저기압 모두를 태풍이라고 부른다.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북서태평양에서는 태풍(Typhoon), 북중미에서는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과 남반구에서는 사이클론(Cyclone)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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