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지는 지구 … 커지는 '물 갈등' 우려

2023-09-04 11:31:28 게재

'수리권' 재정비 문제 시급해

이수·치수·생태 통합적 접근

#1. 2000년대 남강댐(진양호)을 둘러싼 경상남도와 부산시 간 물 분쟁이 극에 달했다. 안 그래도 부족한 남강댐 물을 경남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부산시에서 '남의 동네 물을 빼간다'며 크게 반발했다. 반면 부산 시민들은 낙동강 오염 문제가 심각한 데 깨끗한 물을 혼자만 쓰겠다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며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갔다.

#2. 강원도 춘천시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소양강댐 물값 지급을 둘러싸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갈등을 빚었다. 소양강댐 인근에 소양취수장이 건설되면서 춘천시는 물을 끌어다 썼다. 이후 물값 지급을 두고 춘천시와 한국수자원공사 간 법적 소송까지 벌어졌다. 댐 건설로 수몰 등 피해를 입은 춘천시민들이 소양강댐에서 나오는 물에 대해 돈을 내는 게 맞느냐며 물값을 지급하지 않겠다며 반발했다. 서울 지역의 맑은 물을 보내주기 위해 춘천에서 희생을 해야 하냐는 지역갈등으로까지 번졌다.

극한기상 발생이 빈번해질 수록 물을 둘러싼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과 멕시코 간에 리오그란데 강을 둘러싼 갈등이 재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물 갈등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진은 많은 비가 내린 7월 13일 수위 조절을 위해 강원 춘천시 춘천댐 수문이 열린 장면. 춘천=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불과 몇 십 년 전에 벌어진 대표적인 물 분쟁 사례들이다. 일단락됐지만 기후위기가 심화할수록 물 갈등이 다시금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상가뭄은 물론 전력 공급 등 물의 역할이 다양해질수록 갈등의 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크고 작은 물 분쟁들이 계속되고 있다. 달라진 기후로 인해 미국과 멕시코 간에 리오그란데 강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금 불거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시 물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수리권(물이용 권리)' 재정비가 시급한 이유다.

해외에서는 '환경생태수리권'까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환경생태수리권은 수량·수질·수생태 등으로 물 자원을 통합해 이용하는 방식이다. 인간 중심으로 한 물 사용에 대한 허가나 비용 부담 해결 등 각종 분쟁들을 해결하는, 협의의 의미가 아닌 보다 폭넓은 개념으로 재정비되는 분위기다.

극한 기상에 대응하기 위해 물 관리 전략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사진은 7월 15일 만수위를 넘어 월류 중인 충북 괴산댐.. 괴산=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하천유지용수 등 '물그릇'은 다양해 = 8월 30일 최계운 인천환경공단 이사장(전 인천대 명예교수)은 "극한강수 등의 상황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물 관리는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며 "이수 치수 생태 등을 함께 고려해서 다양한 종류의 물그릇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그릇=댐'이라고 단정 짓지 말고 하천유지용수를 활용한 물공급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5~7년 주기로 가뭄이 발생하고 강도도 심화하는 추세다. 집중호우(시간당 30mm 이상 등) 역시 1910년대 0.7일에서 2010년대 12.0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상가뭄과 강수는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토양이 머금은 수분이 낮을수록 폭우가 내릴 가능성이 커지는 등 토양 수분과 대기 사이의 '되먹임 고리(feedback loop)'에 따른 극한 기상 피해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와 많은 인구 등으로 상대적으로 물 스트레스가 높은 국가다. 환경부에 따르면 1인당 이용 가능한 수자원량 대비 물 이용량(취수량) 비율은 약 33%(2011~2015년)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6번째로 높은 수치다.

강수량의 계절별 지역별 연도별 편차도 크다. 국토의 63%가 산악지형으로 유역면적이 경사가 급해 비가 내린 뒤 짧은 시간 내에 바다로 유출된다. 게다가 유출량 대부분이 홍수기(6~9월)에 편중돼 물관리가 어려운 편이다.

◆농업용수 통계 등 첫 단추부터 제대로 = 관리가 어려울수록 갈등도 심해질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6월 정부(환경부 등 관계 부처 합동)는 '제1차 국가물관리 기본계획(2021~2030년)'을 발표했다. 3대 혁신 정책방향 제 1 중점과제들 중 하나로 '수리권체계 정비'를 삼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농업용수 사용량 등 기본적인 현황 파악도 마무리 하지 못한 상황이다. 수리권을 제대로 정비하기 위해서는 하천수 허가량이나 사용량을 정확히 파악해 조정해야 하는데 첫 단추부터 꿰지 못한 셈이다.

8월 30일 환경부 관계자는 "농업용수의 경우 얼마만큼 사용을 하는지 제대로 된 계측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있어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지난해부터 논의 중"이라며 "최근 가뭄 홍수 등으로 논의가 잠시 중단됐지만 올해 말까지는 마무리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수리권은 민감한 만큼 민법 하천법 등에 따라 개념(기득수리권 허가수리권 등)이 광범위 해질 수 있다. 워낙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법적으로 개념이 모호한 점 등 때문에 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물관리위원회의 성과 및 발전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통합물관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물 분야의 여러 이해관계자 간의 사회적 합의를 위한 국가물관리위원회의 '중재자'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가·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지자체와 지자체 간에 발생하는 물 분쟁은 다수의 지역주민에게 영향을 미치고 비용과 사용료 등 금액 규모가 크므로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결정이 소송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신뢰도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8월 31일 환경부 관계자는 "물관리기본법 하천법 환경분쟁조정법 등 관련 법 개정은 물론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국가물관리위원회가 분쟁조정을 위한 특화된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 등도 좀 더 고민을 해야 하므로 쉽게 결론을 내기 어렵고 폭넓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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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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