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새 화두 생물다양성 | 인터뷰 - 서민환 국립생물자원관장

"생물다양성은 기업 경쟁력 확보에 필수"

2023-10-16 11:40:30 게재

환경·사회·투명경영 핵심 과제로 … 세계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국가 대응 전략 마련해야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기후 관련 ESG공시에 이어 다음 공시기준 제정 작업에 들어갔다. △생물다양성 △생태계와 생태계서비스 △인적자본 △인권 등을 염두에 두는 상황이다. 연구 과제로 어떤 주제를 택하느냐에 따라 다음 공시 주제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촉각이 곤두선 가운데 유럽 기관들은 생물다양성에 더 비중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민환 국립생물자원관장 | 서울대 산림자원학과(학·석·박사)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한 뒤 한평생을 환경을 위해 일해 왔다. 1995년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생물 관련 연구를 하면서 연구직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생물 관련 연구 인원은 한 자릿수에 불과했지만 약 30년이 흐른 요즘은 생물다양성이 주류가 되는 분위기다. 서 관장은 부부 '숲·나무 박사'로도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전 국립수목원장)과 책 '우린 숲으로 간다' '쉽게 찾는 우리나무' '우리풀·나무 백과사전' 등을 펴냈다. 사진 이의종

"최근 한 토론회에서 A 기업체가 기업 활동에 의한 생물다양성 영향을 평가하고 관련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해외 사업이 어렵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해서 놀랐어요. A 기업은 국내 업체들 중에서는 환경·사회·투명경영(ESG)을 선도해왔는데도 해외에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니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일 서민환 국립생물자원관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국제지속성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지난 6월 ESG 첫 번째 공시기준(△일반적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공시(S1)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시(S2))을 확정 발표했다. ISSB는 다음 공시 주제로 △생물다양성 △생태계와 생태계서비스 등을 고려중이다. 이에 따라 '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NFD)'의 기준안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서 관장은 "TNFD는 상대적으로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에 비해 좀 더 넓은 영역의 목표 달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며 "어려워도 향후 기업 경영에 생물다양성과 TNFD의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으므로 국가 차원에서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관장과의 인터뷰는 4일 인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이뤄졌다.

세계는 생물소재 정보 확보 경쟁 치열

"생물소재 정보 확보를 위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한 시대입니다. 생물자원이 가진 효능을 얼마나 많이 발굴하고 제대로 활용하는지가 기업 경쟁력이 된지 오래죠. 국립생물자원관은 생물소재 약 2만6000종을 보유 중입니다. 구축된 많은 정보들을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국립생물자원관이 보유한 소재 활용 특허기술은 국유특허로서 통상실시(특허 권리를 독점하는 전용실시의 상대 개념)를 원칙으로 한다. 특허권자가 아닌 제3자들도 사용할 수 있다 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들 간의 해당 기술에 대한 수요가 다르다는 게 서 관장의 설명이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독점권을 가질 수 없다 보니 해당 정보들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면이 있어요. 반면 중소기업들은 국립생물자원관이 보유한 기본적인 생물소재 정보를 기업 상황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죠. 어떻게 하면 이러한 간극을 좁혀서 최대한 많은 기업들이 소재 정보를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2014년 나고야의정서 발효 이후 자국의 생물자원을 보호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등 생물다양성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국내·외 생물소재 이용을 위한 유용성 연구를 2015년부터 시작했다. 원재료 공급원 다변화를 위해 해외 7개국의 야생생물 소재를 대상으로 천연물을 추출해 분석하는 연구도 한다.

찾아가는 서비스 등 맞춤 전략 강화

"기업들이 야생에 있는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일이 현장을 다 나갈 수 없어요. 게다가 만약 운 좋게 특별한 성분을 발견해도 어떻게 증식을 해야 하는지 등 한 기업이 관련 투자를 실시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죠. 국립생물자원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상남도 밀양에 '생물자원증식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야생생물소재 증식법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으로 개발한 증식법을 생산자에게 제공하고 이 결과를 수요자인 기업들과 매칭을 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논이나 주변 수로의 물에서 자라는 매화마름은 태안지역 등에 서식하는 습지식물이다. 자생지 개발 및 경작방식 변화로 서식지가 급격히 감소했다. 사진 이의종


국립생물자원관은 생물소재 정보 등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설명회를 열어왔다. 이 설명회에서 관심을 보이는 기업들이 있을 경우 국립생물자원관 직원들이 해당 사업장과 일대일로 연락하거나 찾아가 관련 정보들을 알려 준다.

"올해부터는 기업들을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도 시작했습니다. 인력이나 예산이 추가로 확보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직원들이 추가로 업무가 늘어난 셈이니 힘들긴 하죠. 그래도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하는 사회 요구에 맞춰 조직 혁신

"생물다양성의 중요도가 점점 커지고, 이와 관련한 사회적 니즈도 다양해지고 있어요. 국립생물자원관도 이러한 시류에 발맞춰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관은 국내에서 분류학자들이 제일 많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거예요. 분류학 생태학 등 각각의 고유한 영역이 있고 하는 일이 확연히 나뉘죠. 국립생물자원관은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직원들이 달라지는 업무 내용에 대해 겁을 내기도 하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서 관장은 국가 생물다양성의 체계적인 보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국가생물다양성센터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개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환경부에서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2024~2028년)을 올해 안에 수립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에요. 관련 목표와 지표들을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 등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은 생물다양성의 체계적인 보전과 생물자원의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국가 최상위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의 목표를 바탕으로 국내 상황에 맞게 마련될 전망이다.

"하나의 멸종위기종을 살리기 위해서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2000년대 초반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의 넓은 논을 뒤덮은 매화마름(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을 만났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해요. 대학시절 매화마름을 발견한 학생에게는 A+를 준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을 정도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종입니다. 다행히 매화마름은 그 후 많은 조사를 통해 추가로 서식지가 발견됐지만 아직도 많은 생물종들이 보전 혹은 복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지를 못할 뿐 생태계는 가만히 있는 경우가 없어요. 조용히 조금씩 계속 변해가는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국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용어설명]
■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 = 2021년 탄생한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는 자연에 부정적인 결과를 미칠 수 있는 요인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금융 흐름 전환을 지원하는 게 목표다. TNFD는 지난 2015년 발족한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와 함께 환경·사회·투명 경영(ESG) 정보 공시 표준화 작업을 하는 중이다.

TNFD는 기후변화 리스크를 정량적으로 수치화하고 이를 재무적으로 통합하는 TCFD보다 좀 더 큰 영역에서 위험요인과 기회를 분석한다. TNFD가 중요시 여기는 자연 변화 요소는 △기후변화 △자원 착취 △육지와 바다의 이용 변화 △오염 △침입 외래종 등이다.

■생물소재 = 유전자원 천연물 종자 배양체 등이 해당한다. 유전자원은 자연 상태에 자생하는 △동물 △식물 △균류 △원생생물 및 원핵생물 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유전정보를 담은 유전체 DNA를 추출할 수 있는 조직 일부와 DNA다. 천연물은 생물산업의 핵심 소재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식물 동물 등의 대사산물 추출을 위한 건조시료와 추출물로 부가가치가 높은 신약개발 화장품 등에 활용된다. 배양체는 원핵생물 균류 등 배양 가능한 생물자원을 순수 분리해 배양한 것이다.

■나고야의정서 = 생물자원을 활용하며 생기는 이익을 공유하는 지침을 담은 국제협약이다.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국가는 그 자원을 제공하는 국가에 사전 통보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유전자원 이용으로 발생한 금전적 혹은 비금전적 이익을 상호 합의된 계약 조건에 따라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 전지구적인 생물다양성 전략계획이다. 2030년까지 △최소 30% 이상의 보호지역 확대 △최소 30% 이상의 훼손 생태계 복원 △기업의 생물다양성을 고려한 경영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행경과를 정량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체계도 마련했다.

[관련기사]
[향후 주목해야 할 과제는] 생태계 변화 관측에도 기후영향방향 평가 미미
"위기영향 분석, 이사회 감독 등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취약 우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김아영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