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 지도를 다시 그린다 22│79일간 도심 시위,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시험대 홍콩

서비스주도형 경제로 '홍콩의 중국화' 위기감 돌파

2015-02-02 14:15:54 게재

홍콩의 날씨는 맑고 공기는 상쾌했다. 홍콩섬 최고도에 위치한 빅토리아 피크에서 쾌청한 하늘과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홍콩섬과 구룡반도 사이를 유람선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79일간 이어진 도심 점거 시위나 상징물인 노란 우산은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었다. 홍콩인들 마음에는 초고층 빌딩만큼이나 높은 불안감과 위기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시위는 홍콩의 단면을 정확히 보여 주었습니다. 홍콩인들 삶의 수준이 중국보다 훨씬 높아요. 하지만 중국의 통치를 강조하는 '일국(一國·한 국가)'이 자치권 보장을 의미하는 '양제(兩制·두 체제)'를 압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불안과 위기감이 표출됐습니다." 코트라 홍콩무역관 이주상 과장 설명이다.

◆위상 하락에 중국 홍콩경제 틀어쥐어 = 시위대는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입후보자의 자격을 제한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선거안 철회를 요구했지만 기저에는 반중정서가 깔려 있다. 시위 당시 일부 학생들은 중국인을 '메뚜기떼'에 비유하며 혐오 감정을 드러냈다.

중국과 장사로 돈을 번 거부들도 있지만 홍콩시민들은 몰려오는 중국인들로 주택난과 치솟는 물가에 시달려야만 했다. 게다가 중국인들의 원정출산, 조기유학 등으로 홍콩 서민들이 밀려났고 중국인들의 낮은 공중질서 의식은 혐오 감정을 더욱 부채질했다.

홍콩의 위상 하락은 서민, 지식인, 부유층 모두에게 위기의식을 주고 있다. 홍콩은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유일한 창구였으며, 개혁개방 이후에는 전점후창(前店後廠 홍콩은 판매, 중국은 제조)의 역할분담이 뚜렷했다.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홍콩은 과거에 비해 왜소해지고 있다. 지난 2013년 홍콩의 국내총생산(GDP)은 2742억달러로 중국의 9조1814억 달러의 3%에도 못 미친다.

중국은 12차 5개년 경제계획(2011∼2015년)에 홍콩을 중국 경제의 한 권역인 주장(珠江)삼각주 경제권으로 편입해 인접한 선전 광저우와 통합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홍콩과 주하이 지역을 연결하는 중심거리에 29.6㎞에 달하는 '강주아오대교'가 2016년 완공되면 홍콩·마카오와 광둥성간 경제 통합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또한 오는 3월 1일자로 상하이자유무역시험구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톈진, 푸젠성, 광둥성에 자유무역시험구를 새롭게 출범시킨다. 시간이 지나면서 홍콩의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수뇌부도 홍콩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집권 이후 처음 마카오와 주둔 부대를 찾아 일국양제를 강조하며 홍콩에 경고장을 보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은 "홍콩이 중국공산당에 대한 편견이라는 마귀를 쫓아내지 못한다면 더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전했다.

홍콩 최고 부호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그룹 회장이 지주 회사 이전을 선언한 것은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월 9일 리 회장은 지주회사를 홍콩에서 영국령 케이맨 제도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돈의 흐름에 민감한 리카싱의 행보는 중국 경제와 홍콩의 풍향계가 될 수 있다.
 

◆서비스업은 93%, 제조업은 1.5% = 이러한 위기론에도 불구하고 홍콩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2013년 1인당 GDP는 3만7955달러로 한국의 2만5975달러를 앞선다. 홍콩의 실업률은 지난 2013년 3.4%대로 사실상 완전고용을 실현하고 있다. 무역은 세계무역기구 회원국 중 8번째 무역대국(한국 9위)이다. 2013년 홍콩에 유입된 직접투자는 770달러로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홍콩의 해외 직접투자 규모 또한 세계 5위이다.

김용태 효성국제(홍콩)유한공사 총경리는 "홍콩이 기존 중국의 유일한 창구로서 위상이 변화하고 중국 도시가 홍콩의 장점을 따라해도 서비스산업에 대한 격차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김 총경리는 2007년부터 8년째 홍콩에 근무 중인 지역전문가이다. 그는 "몇 년 전 세계적인 유통·섬유 업체가 상하이로 이전했지만 다시 돌아온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홍콩은 이미 서비스산업 주도의 경제로 변신했다. 홍콩의 서비스산업은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돼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 67.5%에서 2012년 93%로 크게 상승했다. 반면 제조업의 GDP 비중은 같은 기간 23.7%에서 1.5%로 하락해 현재 홍콩 경제에서 역할은 미미하다.

1980년부터 2012년까지 고용이 170만명 가량 증가했는데, 이 기간 동안 서비스산업에서 235만명이 증가했고 제조업에서 73만명이 감소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효율적 서비스산업이라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주홍콩총영사관 박대규 상무관은 "홍콩은 지금까지 세 번의 경제구조 전환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1950년대와 1970년대 중개무역에서 수출 주도 공업화로 전환 했고, 1970년대말~1990년대 서비스 중심 경제로의 전환 했으며, 2000년대 이후 고부가치형 서비스경제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20일 홍콩섬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아시아파이낸셜포럼(AFF) 행사에는 영어, 중국어, 광둥어, 일본어까지 통역지원이 됐지만 한국어는 없었다.


◆한류에 대해 편견 없는 수용 = 조용천 주홍콩총영사는 "한국은 홍콩을 통해 중국이나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콩에는 100대 은행 중 73개가 진출해 있고, 외국계 기업이 7585개나 된다. 이중 일본은 1389개, 미국 1338개, 중국 901개이지만 한국은 고작 141개에 불과하다. 대만(448개)보다 작은 규모이다.

지난달 20일 홍콩섬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아시아파이낸셜포럼(AFF) 행사에는 영어, 중국어, 광둥어, 일본어까지 통역지원이 됐지만 한국어는 없었다.

조 총영사는 "유통업체가 중국 쇼핑객들에게 제품을 소개할 수 있는 전시장으로 홍콩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은 연간 4100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최소 1회 이상 쇼핑몰을 방문하고 1인당 평균 1100달러를 지출한다. 중국 인이 제품을 구매한 다음 본국으로 돌아가서 주변에 그 제품을 보여주면 중국 내에서 해당 브랜드의 인지도가 형성, 확산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중국에서 자리를 잡은 이랜드가 최근 홍콩에 복합관을 오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랜드그룹은 홍콩 디-파크(Discovery Park) 쇼핑몰에 총면적 5500㎡ 규모의 복합관을 열고 지난 1월 16일 개장식을 가졌다. 이날 진행된 팬사인회장에는 한류 스타를 보기 위해 2000여명의 팬들이 몰려 홍콩에서의 한류 열기를 재확인시켰다.

홍콩에서 한류는 대만과 일본과 다른 특징이 있다. 개방적인 사회답게 한류를 편견 없이 수용한다는 것이다. 2012년 이후 3년 연속 개최된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가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홍콩은 매년 30회 가량 열리는 한류스타의 공연을 대부분 소화할 만큼 한류에 대한 소비력이 있다. 최근 한국어를 배우는 인구가 급증하고 10여개 대학이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강의하고 있다.

최태식 코트라 홍콩무역관장은 "홍콩에서 일본 문화와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한국 화장품이 일본을 추월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말 한국 화장품은 일본을 제치고 2위에 올라섰다.

◆화장품 일본 추월 2위로 올라서 = 선은균 홍콩한인상공회장(코차이나 총경리)은 "베이징 상하이 중심의 사고방식 때문에 거대한 남중국 시장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코차이나는 홍콩에 본사를 둔 물류회사로 18개국에 41개 법인을 갖고 있다. 중국 18개 지역에 지점을 두고 있어 전국적인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선 총경리는 "홍콩은 '법의 지배' 원칙을 일찍이 확립해 계약을 준수하는 관행이 일반화돼 있다"며 "홍콩과 오랫동안 거래를 해온 광둥성 등 남중국은 계약을 지키고 합작과 협업을 중시하는 상업문화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의 거미줄 인맥은 광둥성 저장성 상하이 등 연해지역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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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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