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창간 22주년 기획 | 위기의 한국경제, 더 큰 도전을(상)

낡은 공식 깨고 '인본경제'로 가자

2015-10-08 11:22:55 게재

재벌의존·정부주도·성장만능으로는 미래 불투명 … 인적자본투자·스마트정부·질적성장 패러다임으로

한국경제가 갈림길에 섰다. 내수·수출 부진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와 경제주체들이 낡은 공식의 함정에 갇혀 있다는 점이 위기의 뿌리다.

40여년간 우리 경제를 이끈 '성공 방정식'이었던 △재벌의존체제 △정부주도경제 △양적 성장주의 △모방추격형 산업모델에 대한 집착을 끊지 않으면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갈 수 있다.


한국경제가 빠져 있는 대표적 낡은 공식은 재벌의존체제다. 재벌 중심 수출주도 성장 전략은 70년대 이후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끈 가장 핵심적인 전략 중 하나였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 한국경제를 글로벌 경제규모 10위권으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안겼다.

그러나 이 전략의 유효기한은 이미 지났다. 이명박정부의 법인세 인하 및 고환율정책은 전형적으로 재벌기업의 수익성을 높여 낙수효과를 기대한 정책이었지만 먹히지 않았다.

재벌기업들은 투자보다는 돈을 쌓아두는 쪽을 택했다. 지난해 10대 그룹 96개 상장사의 사내유보금은 504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이들이 투자에 나선다고 해도 일자리나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해외생산 트렌드와 ICT혁명 및 기계화로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제한적이다.

오히려 재벌의존체제의 부작용인 양극화 확대는 인구구조변화라는 구조적 문제와 겹치며 내수 침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정부주도 경제전략도 바닥을 드러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민간 부문의 변화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게 1990년대부터다. 특히 디지털혁명시대에 들어선 이상 정부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도 우리 정부는 양적 성장에 집착하며 단기부양책에 여념이 없다.

박근혜정부는 성장률 숫자에 연연해 부동산 부양책, 사상 최대 추경 등을 시행했지만 소비심리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가계부채만 키워 지난해 6월 이후 은행 가계대출은 1년간 65조7000억원이 증가했다.

국내총생산의 5%를 넘는 정책금융은 좀비기업을 양산해 혁신적인 기업을 몰아내는 부작용만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진 KDI 대학원 교수는 "한국 정부의 문제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너무 많이 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만 과거의 공식에 목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방추격형 성장모델이 한계에 다다르며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주력산업인 반도체·조선·자동차·철강 등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의 설계내용을 모방, 개량하면서 생산하는 방식이 효과적이었다. 삼성·LG·현대차·포스코 등의 제조업 핵심기업들이 소니·노키아·신일본제철을 따라잡았던 과정이 바로 그런 방식이었다.

이제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 선도자)'로서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이 필요한 지점에 왔지만 여전히 추격 단계의 전략과 관행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희망을 찾기 위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화 시대에 성장의 주체를 대기업·재벌로 봤다면 디지털혁명시대에는 인적자본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창의적 사람을 길러내고 이들을 중심으로 혁신적인 중소기업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한다.

선진적인 인적자본 중심의 '인본경제'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재벌투자에 의지한 성장, 정부가 펌프질하는 방식은 이제 끝났다"면서 "인적자본에 투자하고 노동친화적 성장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 성장주체로서 인적자본을 지목했다.

단기 부양책에 대한 유혹을 부추기는 양적 성장주의도 넘어서야 할 낡은 공식이다.

김종인 전 경제수석은 "환경의 변화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세계 모든 나라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자꾸 저성장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2%대 성장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경제민주화 등으로 사회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역할변화도 시급하다. 이주호 전 교육부장관은 "큰 정부니 작은 정부니 논란은 더이상 필요 없다"면서 "민간과 수평적으로 일할 수 있는 혁신조직으로서의 정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었지만 이제는 낡아버린 과거의 성공방정식을 과감히 버리고 우리만의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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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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