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 기업경영을 바꾼다│① 첫발 뗀 경영감시

제도 시행 8개월, 참여 기관투자자 4곳뿐

2017-08-29 12:27:08 게재

정부 주도에서 민간 중심 전환 … 사회책임투자 요구 커지면서 참여 늘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자 경제개혁연대는 "우리나라의 (기업) 지배구조가 얼마나 낙후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과 같은 중요한 그룹 재편작업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라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미래전략실이라는 법적권한과 책임이 모호한 조직에 의해 불법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은 기업의 의사결정에 기관투자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국민연금은 '캐스팅보트'를 쥐었지만 판단 기준 자체가 외압에 흔들릴 수 있는 취약한 구조였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기업의 경영을 감시하기 위한 기관투자자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가 필요한 이유다.


자본시장에서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은 기업의 주주로서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동안 주주활동은 전무했다. 고객의 자금을 맡아 수익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9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나온 것처럼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고 사회책임투자 원칙에 입각한 주주권행사 강화가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44곳 참여 예정, 점차 확대 추세 =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난해 12월 19일 공표·시행됐다. 제도가 도입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참여하겠다고 공표한 기관투자자는 29일 현재 자산운용사 4곳뿐이다. 자산소유자인 연기금과 보험사는 아직 한곳도 없다. 국민연금은 관련 연구용역이 연말에 마무리되면 공청회 등을 거친 뒤 내년 초 도입이 유력하다.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의 참여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중장기 수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대규모 장기투자자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한 기업의 주식을 매각하는 방식의 '월스트리트 룰'을 연기금에 적용하면 손실이 확대된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연기금의 경우 매각 대신 주주활동을 통해 회사가치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대응전략이다.

또한 연기금이 수탁사를 선정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여부와 이행범위, 수준 등을 고려해 수탁자 책임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운용사를 고르면 제도가 빠른 속도로 정착할 수 있다. 현재 자산운용사 44곳의 참여가 예정돼 있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연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면 자산운용사들이 대거 들어올 것"이라며 "그 중에서 국민연금의 참여는 다른 연기금들이 참여를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와 연기금 등 자산소유자들의 참여가 제도의 성공적 정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그 중심에 국민연금이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강조 =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주주로서 기관투자자의 경영감시 기능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책임투자는 확산되고 있다. 특히 기관투자자들은 기업의 이사회 또는 경영진과 활발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지난해 세계적인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미국 기관투자자들의 주주활동에 관한 조사를 벌인 결과 상장사 100곳(S&P500) 중 64개사가 주주와의 대화를 공시했다. 64개사 중 이사가 대화에 참석했음을 명시한 회사가 38%, 대화의 쟁점을 설명·공시한 회사가 95%, 대화 이후 어떤 조치를 취한 사실을 공개한 회사가 64%였다.

2016년말 기준 전 세계 15개 국가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영국이 2010년 가장 먼저 도입했고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네덜란드, 스위스, 일본 등의 순이다. 미국은 올해 1월 '스튜어드십 원칙'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2015년 3월 금융위원회 중심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가 구성됐다. 기업과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주주가치가 하락했고 투자한 연기금·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의 손실이 곧 이들에게 자산을 맡긴 고객과 수익자 등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결권 행사율이 낮고 투자대상회사와의 대화나 주주제안 등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이다. 특히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와 불투명한 경영, 투자자와의 소통 부족 등은 세계적으로 국내 시장의 신뢰도 하락과 위상 저하로 연결되고 있다.

민간 중심 추진, 정부 간접 지원 = 정부 주도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지난해 8월 민간중심으로 개편됐다. 2차 제정위원회는 학계와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 운용업계, 해외기관투자자, 기업지배구조원 등의 인사로 구성됐다. 이들은 4차례 간담회를 열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민간 주도로 바뀌었지만 실효성 확보를 위해 정부가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다. 지난 2월 금융위는 기업지배구조원과 공동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예정기관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은 "현대 자본시장에서 기관투자자는 주주와 경영진간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면서 충실한 자산관리자로서 역할이 요구된다"며 "기업 측면에서 보면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관투자자가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고객인 최종 투자자의 이익을 적극 반영하는 장치를 만들고 그 결과를 고객에게 충실히 설명한다면 고객은 본인의 자산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은 지난달 '2017년 사모투자펀드(PE)·벤처캐피탈(VC) 펀드 출자사업'과 관련해 지원한 50개 운용사 중 11개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여부를 평가했다. 산은은 5월 위탁운용사 선정시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기업에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6월 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법령해석집을 내면서 "기관투자자들이 코드 이행 과정에서 당면할 수 있는 법규 위반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주주활동과 관련한 법령해석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참여를 강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이 자금운용을 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운용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했다"며 "혹시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정부가 정리하는 것은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운동장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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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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